故 박동지 이등상사 등 합동안장식 엄수…육군 "끝까지 찾아 모실 것"
6·25 호국영웅 12명, 70여년만에 서울·대전현충원 영면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며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웅 12명이 70여 년 만에 현충원에서 영면한다.

육군은 2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유해 각각 8위와 4위의 합동 안장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박정환 육군총장 주관으로 거행된 서울현충원 합동안장식에는 전사자 유가족,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관계자, 군 장병 등이 참석했다.

서울현충원에는 박동지 이등상사(현계급 중사), 김일수·노재균·이우서·홍인섭 하사(현계급 상병), 안승원·김종술·김학수 일병 등이 영면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여운태 육군차장 주관으로 유족, 육군본부 부·실장 등이 참석해 김재규 이등중사(현계급 병장), 박기성·조응성 하사(현계급 상병), 김진욱 일병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이번에 합동안장식이 거행된 호국영웅들은 작년 말부터 지난달 사이 유해가 수습되거나 신원이 확인된 6·25 전사자들이다.

박동지 이등상사와 안승원 일병은 6·25전쟁 당시 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수원 북방전투 중 전사했다.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된 박 이등상사는 1948년 결혼 1년 만에 입대했다가 1950년 7월 23세로 전사했다.

고인의 아내는 평생 남편이 군복 입고 찍은 사진을 방에서 걸어두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지난 2019년 눈을 감았다.

안 일병은 1949년 입대해 개전 초 1950년 6월에 전사했다.

박 이등상사와 같은 전투에서 25세에 산화했다.

김일수·조응성 하사는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유해는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에서 발굴됐다.

1932년생인 김 하사는 1952년 10월 백마고지에서 진지를 사수하고자 사투를 벌이다 적 포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 하사는 1928년 출생으로 1952년 아내와 5·3살 배기 두 딸을 뒤로한 채 입대했다가 그해 25세로 생을 마감했다.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김재규 이등중사와 이우서 하사는 7사단 8연대 소속으로, 박기성 하사는 8사단 10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백석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김 이등중사와 이 하사는 각각 23세와 27세에 생을 마감했다.

박 하사는 1951년 23세의 나이로 전사했으며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노재균 하사와 김진욱 일병은 7사단 3연대 소속과 8사단 소속으로 각각 참전해 춘천 부근 전투에서 23세와 21세로 전사했다.

김학수 일병은 1951년 3월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을 두고 5사단 35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같은 해 6월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1950년 9월 8사단 16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김종술 일병은 한 달 후 영천지구 전투에서 24세에 전사했다.

아내와 두 젖먹이, 태중의 막내가 남겨졌다.

홍인섭 하사는 1사단 11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격전지 칠곡군 유학산에서 22세로 전사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며 매 끼니 밥을 따로 떠서 솥 안에 따뜻하게 보관하기를 30년 넘게 하다가 1999년에 작고했다.

박정환 육군총장은 조사에서 "선배들께서 이루신 승리의 발자취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번영에 든든한 토대가 됐다"며 "육군은 이 땅 어디에선가 기다리고 계실 또 다른 호국영웅을 끝까지 찾아서 단 한 분도 홀로 남겨두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