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커스, 끝나지 않은 6·25]무공훈장 받는 지역원로 송좌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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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정계 원로인 죽천 송좌빈(84) 선생이 한국전쟁이 끝난지 반세기가 넘어 전쟁터에서 받지 못했던 무공훈장을 받는다.

전쟁의 포화가 그친지 54년, 육군 제32사단은 급박한 전장환경에서 공훈을 세우고도 훈장이 없어 구두나 증서로 통보만 받았던 대전·충남 참전용사 중 송 선생을 비롯한 16명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자신의 젊음을 바쳐 싸웠던 송 선생은 백발 노인이 되어 그동안 잊고 있었던 훈장 소식을 접하자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 7사단 작전처, 제1훈련소, 육군 5사단, 육본 정훈감실 등에서 많은 공적을 세워 한 번의 을지무공훈장과 두 번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송 선생은 "당시 훈장이라는 것은 대상자를 일렬로 세워 놓고 '너는 오늘 00무공훈장을 탔다'고 말로만 수여하는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그 명단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1950년 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송 선생은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취업 준비를 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았다.

전쟁 소식을 접한 선생은 나라의 운명이 자신과 같은 청년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고 자원입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무작정 서울에 올라간 선생은 전봇대에 붙어있는 모병공고를 보고 찾아가 입대, 기본 교육을 마치고 그해 11월 소위로 임관해 전선으로 향했다.

"7사단으로 배속명령을 받았는데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부대 주둔지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동하던 시절이라 대충 근처로 가는 군용트럭을 잡아타고 물어물어 갔어요."

힘들게 차를 갈아타며 강원도 양구까지 찾아간 송 선생은 '배웠다'는 이유로 사단 정보처로 배속받아 적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곧 그의 부대는 남하한 중공군에 포위돼 버렸다.

지휘체계가 무너져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상황에서 선생은 주변 장병을 수습해 적의 추격을 뿌리치고 탈출에 성공했다.

송 선생은 부대가 재편되면서 제1훈련소로 배속돼 신병을 교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반 이상이 문맹인 신병들에게 우리 글을 가르치고 공산당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와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결의를 갖도록 정신교육을 했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많은 신병과 부모들은 덜 위험한 운전이나 헌병같은 보직을 받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당시 신병이란 게 먼저 죽은 전사자의 자리를 보충해 싸우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송 선생은 "논산 제2훈련소는 '돈산'훈련소라고 부를 정도로 신병의 부모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일이 많았다"면서 "보직 결정이 생명의 위험을 좌우하니 비전투보직을 받으려고 다들 애썼다"고 회상했다.

이런 기억과 요즘 젊은이들이 병역을 기피하려는 모습이 겹쳐지며 선생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는 "국가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군대 기피가 요즘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 돼 버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편 송 선생을 비롯 대전·충남 참전용사 16명에 대한 무공훈장 수여식은 오는 27일 육국32사단에서 열린다.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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