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우리 국민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초·중·고생 절반이 6·25전쟁 발발 연도도 모른다. 60년 전 포성이 멎었지만,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연평도 포격도발로 북한의 음흉한 남침야욕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휴전 그리고 60년, 대한민국은 교육의 힘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 땅에서 우리 국민이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유엔 21개국 해외참전용사들의 목숨과 바꾼 것이다.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해외참전용사 후손 장학사업 등 참전 노병들의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는 데 맹활약하며 대한민국을 빛낸 사람들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옛말에 1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내다보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면 인재를 양성한다고 했다. 인재 양성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의 발전은 교육의 발전을 능가할 수 없다, 교육은 국운을 좌우한다’고 역설했다. 교육이 한 나라의 최후의 보루라는 얘기다. 이에 강원 화천군이 세계 최빈국 에티오피아를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야심에 찬 장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은 단지 화천지역에서 첫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이유 하나로 에티오피아에 ‘교육이 희망이다’라는 장학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역시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육군칠성부대 장병이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장학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문순(57·사진) 화천군 기획감사실장을 만나 추진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화천군과 에티오피아가 인연을 맺은 동기는 무엇인가요?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엔 16개국 중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전투병을 파병한 에티오피아가 화천 지역에서 첫 전투를 했고, 첫 전사자(자동소총 사수 피가르 일병)도 그해 8월 14일 마현리와 사방거리 사이인 봉당덕리 부근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6·25전쟁 기간 에티오피아는 6개 대대 6037명이 참전, 전사자 121명을 비롯해 총 65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을 구하고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지긋지긋한 악몽에 시달리는 노병들이 많습니다. 우리 군이 추진하는 장학사업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의 후손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입니다.”
- 지자체로서는 유일하게 6·25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 돕기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하는지요? “2009년 5월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방문,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회’와 참전용사 가족이 모여 사는 코리안 빌리지를 찾아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코리안 빌리지는 지구촌 최빈국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입니다. 참전용사 후손들의 반응을 꼼꼼히 체크하고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장래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분야가 ‘교육’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후 그해 12월 1차로 61명의 장학생을 선발, 매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듬해 8월 2차 장학생 54명을 추가 선정해 총 115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매월 참전용사 회관에서 초등생 44명에게 3만 원을, 중고생 41명에겐 4만 원, 대학생 30명에게 5만 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경찰 월급이 6만 원, 택시기사가 4만 원, 노동자는 하루 1500원 정도입니다. 이 돈이면 참전용사 후손들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우수 장학생의 국내 대학 유학이 추진됩니다.”
-장학생 선발은 어떻게 했는지요? “학교 성적 우수자를 대상으로 직접 발로 뛰었습니다. 2009·2010년 2회에 걸쳐 115명의 참전용사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학부모 면담을 통해 참전용사촌뿐만 아니라 아디스아바바 외곽 구석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4개조로 나눠 1주일 동안 하루 10가구 이상 방문해서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한 학생 등 공부는 기본이고 어렵고 힘든 학생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 장학사업 3년, 참전용사 후손들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먼저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실력도 부쩍 늘었어요. 특히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결실이죠. 장학금을 받고 인생이 180도 달라진 경우도 있습니다. 하옥선 화천군 에티오피아 장학재단 지사장이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3시 참전용사회관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주관하고, 자금 관리는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맡고 있습니다. 매월 장학금을 수여하면서 신풍속도가 생겼습니다. 매주 토요일 2시부터 방과 후 학습풍토가 조성되면서 어린이들의 성적도 쑥쑥 올랐습니다. 화천군 장학금을 받는 현지 대학생들이 초·중·고생 학습지도를 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리코더ㆍ아리랑ㆍ태권도 등을 배우며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한국을 알고 화천에 대한 고마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 한국 대학 유학은 언제부터 준비하고 기획했는지요? “장학사업을 진행하면서 뭔가 2% 부족함을 느꼈고 이것을 채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6월 한국 대학 유학을 통한 지원확대 필요성을 찾았습니다. 첫 결실이 곧 맺어집니다. 2012학년부터 레디엣 버거쇼 씨가 서울대학교의 지원으로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에, 알레마예후 세보카 씨는 한림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이 유학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 교육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재 양성이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최고의 교육열 덕분에 단기간 내에 OECD에 가입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빈국 에티오피아에 대한 가장 좋은 보은이 인재양성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참전용사 후손들이 공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어떤 역할을 해 주길 바라는지요? “유학생 개인적으로는 에티오피아를 성장·발전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며, 더불어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현지의 다른 장학생들에게 유학생이 롤모델이 돼 큰 도전을 주게 될 것이며, 학업에 더욱 정진하는 동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이들이 한국 대학 유학 과정을 거쳐 고급인재와 전문인력으로 성장해 나락에 떨어진 국가 경제를 구원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향후 장학사업을 확대할 계획은 없는지요? “장학생 총인원 증가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장학금을 상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화천군 장학금’은 학업정진을 유도하기 위해서 B 학점 이상 학생에게만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매 학기 성적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혜자는 115명으로 성적 미달 및 학업종료 등으로 대상자가 발생하면 추가 선정할 예정입니다. 학년이 끝나는 올 10월 B 학점 이하는 탈락시킬 계획입니다.”
- 해외 장학사업을 반대하는 분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요? “우리 군 내에도 어려운 이웃이 많은데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까지 도와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보다 적게는 월 2000원부터 많게는 월 10만 원까지 후원의 손길을 보내주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현재 장학사업 후원자는 총 700여 명입니다. 그중 670여 명이 육군 칠성부대 장병이고 이들이 매월 약 140만∼15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같은 지역을 수호하고 있다는 동지의식으로 에티오피아 참전군의 후손을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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