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선배 전우 : 강성언, 이만조, 정상태 일등병, 김자근 이등병
칠성은

자랑스런 선배 전우 : 강성언, 이만조, 정상태 일등병, 김자근 이등병

칠성관리자 1 10,745 2007.03.01 07:34
● 한문 : 康成彦
● 생몰연대 :
● 출신지역 :
● 최종계급 : 육군 일등병
● 상훈내용 : 화랑무공훈장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 제6권, 호국용사 100선

1. 생애

  강성언(康成彦) 육군 일등병은 육군에 입대하여 제7사단 5연대 3대대 11중대 소총수로 6·25전쟁에 참여하였다. 전쟁이 교착상태로 접어들 무렵인 1951년 8월 20일 강원도 양구의 백석산지구 양갈래고지 탈환작전에 참여한 그는 중대 선공대로 편성되어 수류탄전과 백병전을 거듭한 끝에 고지를 탈취하고 수많은 전과를 획득하는 수훈을 세웠다.

2. 공적

  1951년 6월 중순, 양구 북쪽의 배저선(Badger line)에서 수색거점을 확보한 김용배(金容培) 준장의 국군 제7사단은 휴전회담과 장마로 인해 일시 교착되어 있던 전선을 돌파하고 동년 8월 중순에 다시 북진을 시작해 이 전투를 전개, 북한군 제5군단과의 교전 끝에 1142고지인 백석산(白石山) 동남록의 554고지-901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6월말에 공식 거론된 휴전문제가 7월에 들어서면서 개성에서 회담이 개최되어 이의 타결 가능성을 바라게 된 유엔군사령관은 아군의 과도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7월 한달 동안에 걸쳐 전선 각 부대로 하여금 적과의 충돌을 억제토록 하였다. 적은 이를 기화로 하여 공지 양면의 전력보강에 주력함으로써 전 전선은 표면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게 되었다.
  7월 중순 공산측의 트집으로 휴전회담이 결렬되자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Van Fleet) 대장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21일에 국군 제1군단과 미 제10군단으로 하여금 펀치볼을 공격토록 하였으나, 큰 장마로 인해 미 제2사단 38연대가 펀치볼 서벽의 감제고지인 대우산을 점령한 것만으로 일단 작전을 중지하여 전선은 다시 현상대로 고착되었다.
  밴플리트 대장은 전기의 포착을 엿보고 있던 중 8월 중순 날씨가 회복되자 곧 공세를 재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동해안의 남강 남안을 따라 북한강 동안에 이르는 동부전선의 만곡부(灣曲部)를 수정함으로써 방어정면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한편 적의 공격 책원지인 펀치볼의 포위태세를 강화하여 이에 대한 차기 공략을 용이하게 한다는 작전개념 아래 제1군단은 펀치볼 동북의 J자 능선을, 미 제10군단은 대우산 서쪽 사태리-문등리간의 H자 능선상의 983고지를 각각 점령토록 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에 미 제10군단장 바이어스(Byers) 소장이 국군의 사기앙양을 염두에 둔 밴플리트 대장의 배려에 따라 제5사단 36연대를 미 제2사단에 배속시켜 이 연대로 983고지를 공격하게 하고, 군단 좌익 제7사단으로써 983고지 좌측 문등리 도로를 감제하는 554고지-901고지를 병행 공격하게 함으로써 송현리-송정동 부근 전투가 야기되었다.
  당시 적의 상황은 6월 중순에 북한군 제2군단과 제5군단이 미 제10군단에 의해 새로운 캔사스(New Kansas)선 북쪽으로 밀려나자 북한군은 후방에서 급편한 새로운 1개 군단을 동해안 방어에 투입함으로써 전선군단의 전투지경선을 축소, 동부지역의 방어밀도를 증가시키고 포병화력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국군 제7사단 정면에서 방어진지를 강화한 북한군 제5군단은 1951년 7월 24일을 전후해 예하 제12사단과 제32사단을 각각 일선으로 하여 배저선 북쪽의 892고지-621고지-883고지-901고지-554고지에서 방어선을 점령하게 하였다.
  반면에 7월 중순 전선교대로 미 제10군단은 국군 제7사단과 제8사단, 미 제2사단으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었다. 이때 제7사단은 정진(鄭震) 대령의 제3연대를 화천저수지 북쪽의 캔사스선을, 채명신(蔡命新) 중령의 제5연대로 화천저수지 남쪽 캔사스선을, 그리고 최주종(崔周鍾) 대령의 제8연대로 배저선을 각각 담당하게 하여 진지를 강화하면서 적정을 수집하고 있었다.
  8월에 들면서부터 진격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함에 따라 사단장 김용배 준장은 배저선의 수색거점이 장차 전진진지로 변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제2선에서 전력을 보강한 제3연대로 하여 이를 담당토록 하였다. 사단은 공격준비를 위한 포석으로 제3, 제8 양 연대의 임무를 서로 교대토록 하였다.
  8월 14일 사단은 군단으로부터 554고지-901고지에 대한 공격명령이 하달됨으로써 15일에 지휘소를 내평리에서 양구 남쪽 3㎞지점의 죽리로 추진하는 동시에 제5연대 일부병력으로 제일선인 제3연대의 지원태세를 갖추었다.
  사단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개시한 국군 제7사단 3연대는 백석산 남쪽 2.5㎞ 지점에서 가로막고 있는 속칭 양갈래 고지 일대에서 의외의 장벽에 부닥쳐 공격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곳에 설치된 적의 진지 전면에는 지뢰와 장애물이 가득했고, 적의 진내에는 지상포격과 공중폭격을 능히 견뎌낼 수 있는 엄폐물이 구축되어 있어서 적은 이 진지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집요하게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아군의 진격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군은 이 고지를 점령하지 못할 경우 백석산을 공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양갈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종일토록 공격을 반복했으나 끝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격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1951년 8월 19일 제7사단장 김용배 준장은 아군의 공격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을 세밀히 분석 검토한 후, 이날 18시에 채명신 중령이 지휘하는 제5연대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수정작전지시 제37호를 하달하였다.
  '제5연대는 제3연대에 배속되었던 제3대대의 원복과 동시에 동 대대의 전투지역을 제3연대로부터 인수하여 양갈래 고지를 공격 점령하라.' 이러한 명령에 따라 제5연대장 채명신 중령은 제3연대에서 원복되는 제3대대로 하여금 양갈래 고지에 대한 야간공격을 명령하였다.
  이에 제3대대장 노심근(盧沈根) 대위는 제9중대를 917고지로, 제10중대를 917고지와 616고지 사이의 능선을 따라 양갈래 고지로, 그리고 제11중대를 좌측의 917고지와 752고지 사이의 능선을 공격토록 하였다.
  제3대대의 야간 기습공격은 일몰 직후인 20시에 개시되어 제10중대는 917고지의 동북능선을 따라 양갈래 고지를 목표로 공격해 나갔다. 제10중대는 20시 30분 경에 917고지와 양갈래 고지 중간의 능선 안부로 진출한 다음, 1개소대로 하여금 양갈래 고지 좌측으로 우회하여 양갈래 고지 북쪽 1㎞ 지점에 위치한 항령(項嶺)으로부터 목표의 배후를 급습하여 적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한편, 적의 병력증원을 차단하도록 한 뒤에 중대 주력으로 적진에 돌입하도록 하였다.
  중대는 다음날인 0시 30분에 양갈래 고지 서남쪽의 적 진지까지 포복으로 육박한 다음, 01시에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적진 속으로 돌격을 감행하였다. 이때 제1소대 2분대장인 이영남(李榮南) 이등중사는 대의 선두에 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러나 적의 저항은 완강하였다.
  중대장 김종행(金鍾行) 중위는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전 중대원들과 함께 날이 밝을 때까지 수류탄전을 펼치면서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돌격을 감행했으나 고지를 끝내 탈환하지 못하였다.
제5연대장 채명신 중령은 적이 밤새 아군의 반복적인 공격을 받아 전투능력이 상당히 소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의도 상당히 저하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또한 883고지의 적이 제3대대와의 격돌로 그 전진진지인 양갈래 고지를 돌볼 겨를이 없게 되었으므로 제10중대로 하여금 결정적인 최후 돌격을 감행토록 명령하였다.
  연대장의 명령에 따라 재공격에 임하게 된 제10중대는 양갈래 고지 북록의 일부 병력으로는 계속 적 후방을 차단하게 하고 이영남 이등중사 등 선공대를 따라 정상을 공격하였다. 이때 제1소대 2분대장 이영남 이등중사는 분대원들을 향해 결연한 어조로 말을 시작하였다. '저 고지는 우리가 탈환해야 할 고지다. 그러므로 저 고지를 탈환하는데 대의 선두에서 나와 함께 돌진할 용사가 있으면 앞으로 나와라!' 그러나 분대장 앞으로 나서는 용사는 한 명도 없었다. '우리가 어제 밤의 공격전투에 이어 저 고지를 다시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저 고지를 또다시 탈환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저 고지를 탈환할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공격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 피와 희생을 강요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한 몸을 기꺼이 바쳐 저 고지를 일격에 탈환할 것을 결심한 용사가 있다면 앞으로 나서기 바란다. 나는 이번 공격에서 저 고지를 기필코 탈환할 것을 굳게 결심하였다.'
  이영남 분대장의 말이 끝나자 열 중에 서있던 강성언(姜成彦) 일등병, 이만조(李萬祖) 일등병, 정상태(鄭相泰) 일등병, 그리고 김자근(金子根) 이등병이 차례로 분대장 앞으로 나서며, '분대장님과 사생(死生)을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분대장 이영남 이등중사는 자기와 사생을 함께 하겠다고 나선 대원들의 손을 힘있게 잡고 '국토방위의 사명을 지고 전선에 나선 군인이라면 조국이 요구하는 곳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군인이다. 바로 너희들이 진정한 군인이다'라고 말한 후 작전행동에 대해 지시하였다.
'공격이 개시된 후 우리가 취할 행동은 대의 선두에서 중대의 공격로를 개척해 주는 일이다. 우리는 육탄공격으로 양갈래 고지 정상까지 중대의 공격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죽음이 뒤따르는 위험한 임무다. 만일 내가 전사할 경우, 강 일등병이 앞장을 선다. 강 일등병이 전사할 경우에는 이 일등병이, 이 일등병이 전사할 경우는 정 일등병이, 그리고 정 일등병이 전사하면 김 이등병이 앞장을 서서라도 오늘 저 고지를 탈환하야만 한다!'
  잠시 후, 양갈래 고지에 대한 제3대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제10중대장 김종행 중위는 일부 병력으로 하여금 양갈래 고지 북쪽 기슭에서 계속 적의 후방을 차단시키면서 나머지 병력을 지휘하여 고지 정상으로 공격해 올라갔다. 이때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영남 이등중사를 비롯한 강성언, 이만조, 정상태 일등병과 김자근 이등병은 주력부대의 선두에 서서 진격해 나갔다.
  그러나 적은 아군의 선공대가 7부 능선에 다다르자 다시 완강한 저항을 해오기 시작하였다. 죽음을 각오한 선공대원들은 수류탄전을 벌이면서 적진을 향해 거리를 좁혀 나갔고, 그 뒤를 주력부대가 따랐다. 적진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공방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포탄과 수류탄, 기관총탄이 사방에서 작렬하였다.
  선공대원들은 필사의 공격으로 적진까지 육박하는데 성공하였다. 수류탄 투척거리까지 육박한 이영남 이등중사는 돌격을 외치면서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수류탄으로 공격을 끝낸 선공대원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뒤따르던 주력부대도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을 감행했다. 호마다 처절한 백병전이 펼쳐졌고, 약 30분이 경과한 뒤 제10중대는 적을 모조리 격멸하고 난공불락이던 양갈래 고지를 완전히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에서 이영남 이등중사를 비롯한 강성언, 이만조, 정상태 일등병과 김자근 이등병의 희생과 용전분투가 있었기에 제5연대는 난공의 양갈래 고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이로 인해 제5연대는 최종목표인 백석산 일대의 적을 소탕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제10중대는 이날 전투에서 적 사살 156명, 포로 7명, 그리고 경기관총 1정, 따발총 3정, 쏘식 소총 13정, 수류탄 700발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 참고문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2003
국방부,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제1집, 1955
육군본부, 한국의 전쟁영웅들, 1992
이원복, 호국용사100선, 명성출판사, 1976
국방부, 호국의 별 제3집, 1979
포병학교, 포병의 발자취, 1963
병학사, 내 젊음 조국에, 1987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38도선 초기전투: 중동부전선 편, 1982
국방일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2002. 11. 9
국방부, 한국전쟁사 제8집, 1975
공군본부, 공군사 제1집
육탄 10용사 현충회, 육탄 10용사, 도서출판 法政, 1986
국방부, 호국의 별, 제6집, 국방부 정훈국, 1982
국방일보, 한국의 전쟁영웅들 (1) 육탄 10용사, 1992. 6. 4
국방부, 호국전몰용사공훈록 제3집,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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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서 퍼왔습니다.

Comments

칠성관리자 2007.03.01 07:36
  채명신 장군도 5연대장을 역임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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