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선배 전우 : 7사단 8연대 최득수 이등상사(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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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선배 전우 : 7사단 8연대 최득수 이등상사(추가)

칠성관리자 2 14,816 2006.11.2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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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 崔得洙
● 생몰연대 : 1927.5.15-
● 출신지역 : 경기 부천
● 최종계급 : 육군 이등상사
● 상훈내용 : 태극무공훈장
● 참고문헌 :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약력

*생년월일: 1926. 5. 15
*본적: 경기 부천군 영종면 운서리
*소속: 보병 제 7사단 8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직책: 소대장 대리
*군번: 0234392
*계급: 육군이등상사
*주요전투: 양구 비석고지전투
*상훈내용: 태극무공훈장(1954. 6. 25)

1. 생애

1927년 5월 15일 경기도 부천군 영종면에서 출생한 최득수(崔得洙) 이등상사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다. 해방 이후 대한청년단에 가입하여 인천지구 훈련대장과 감찰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및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후 지원병 모집에 자원, 1950년 11월 미군 화물선 3척에 나뉘어 인천항을 떠났다. 며칠간의 항해 후 부산항에 도착하여 다소간의 식량과 모포 2장을 배급받고 구포훈련소에 입소하여 그곳에서 제식훈련과 총기조작법, 사격 등의 훈련을 받았다.
1951년 1월 2일 구포훈련소를 출발하여 대구에 도착한 뒤 다시 군용차량을 이용해 제7사단 집결지인 강원도 간성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게 된 최득수 이등상사는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전선이 안정된 1955년 4월 8일 육군 이등상사를 마지막으로 전역하였다.
그는 “지휘관의 명령은 설령 그것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따라야 하는 것이 군인이며, 그래야만 기강이 바로 서게 되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지론을 견지했던 엄격하고 용맹스러우며 군인정신이 충만한 군인이었다.

2. 공적

6.25전쟁의 휴전협정 체결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던 1953년 6월 하순 제7사단 8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장 대리로 근무하던 최득수 이등상사는 특공대에 선발되어 938고지(선우고지) 남사면의 적 전진진지인 일명 비석고지에 있는 3중의 중기관총 및 경기관총진지를 격파하고 고지정상을 점령함으로써 피탈되었던 선우고지를 재탈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러한 전공으로 최득수 이등상사는 1954년 6월 25일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177호)을 수여받았다.
1953년 6월 26일 중공군 제60군 189사단은 1개 연대 병력으로 미 제10군단 예하 국군 제7사단 8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938고지를 공격하였다. 중공군은 야포와 박격포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하여 압력을 가한 끝에 결국 938고지를 차지하였다. 적은 938고지를 점령함으로써 아군 방어진지인 1090고지로부터 1220고지에 이르는 아군 주저항선을 측방으로부터 위협하고 나아가 차기공세의 근거로 삼으려 하였다.
6월 공세 때인 6월 16일 제7사단이 제20사단으로부터 인수하여 확보해 온 938고지는 이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1220고지에 이르는 발판으로서 사단 좌일선인 제8연대의 방어중심이었다. 공격과 방어가 가능한 유리한 지형으로 관측과 사계가 양호한 938고지 일대는 증원부대의 집결지었으며, 고지 후방을 연하는 능선 등은 엄폐와 음폐에 대단히 양호한 전략적 요충이었다.
국군 제8연대 2대대는 6월 26일 21시 45분부터 집중포화에 이어 공격해 온 적에게 탄막사격을 가하고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유선통신이 두절되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대대장은 대대지휘소 방향으로 몰려오는 전방 중대 병력에게 현 전선 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러나 대대지휘소에 들이닥친 적과 교전을 하던 대대장이 수류탄에 의해 전사하자 대대는 파상적인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자정 무렵 938고지에서 철수하였다.
제8연대는 다음날 3회에 걸쳐 자체적으로 역습을 실시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단은 이 무렵 군단예비로 있다가 복귀한 제3연대를 역습에 참가시켰으나 실패하자 제8연대와 임무를 교대시켜가며 번갈아 역습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938고지를 탈환하기도 하였지만 또다시 적의 집중적인 포격과 파상공격에 고지를 상실하였다. 이렇듯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은 많은 희생자를 불러왔다. 이 공방전에서 아군의 인명손실이 1,300여 명에 달하자 미 제10군단장 화이트 중장은 7월 1일 더 이상의 인명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탈환작전을 중지하도록 지시하였다.
결국 적은 제5사단이 확보하고 있던 지형을 점령함으로써 제7사단 전면을 완전 감제할 수 있는 지역을 차지한 데 이어, 6월 26일 제7사단 8연대가 확보하고 있던 938고지마저 점령함으로써 한층 사단 전면에 접근하기 용이한 요지를 획득하게 되었다.
1953년 6월 27일 02시 30분 제7사단 8연대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탈취당한 938고지를 재탈환하기 위해 제1대대를 투입하여 반격을 감행하였다. 9부 능선까지 진출한 대대는 강력한 화력으로 맞서고 있는 적과 육박전까지 전개하였으나, 적의 증원부대와 좌우 측방에서 맹렬하게 집중하고 있는 적의 화력으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05시 30분에 철수하였다. 이에 사단은 예비대인 제3연대를 투입하여 수류탄전을 전개하면서 고지탈환을 시도하였으나 아군의 공격저지를 위해 10,000여 발의 포격을 가하는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희생이 늘어가자 부득이 철수를 단행하였다.
6월 30일 02시 사단장이 938고지에 대한 공격명령을 제8연대에 하달하자 제2대대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고지를 탈환하기로 결정하고 30명의 대대원을 3개조로 편성하였다. 특공대는 연대가 지금까지 실시한 3회의 역습 때마다 938고지 남서면의 전진진지인 일명 비석고지에 설치된 적의 자동화기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이를 기습.파괴하여 역습부대의 기동을 저해하는 요인을 미리 제거하는데 주안을 두었다. 제1조는 938고지 전방 능선상에 배치되어 있는 3중의 중기와 경기관총진지를 격파하며, 제2조와 제3조는 938고지 좌측방에 위치한 적의 자동화기진지를 파괴하고 고지를 탈환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03시 30분경 특공대 제1조장인 최득수 이등상사는 조원들과 함께 철모 대신 작업모를 쓰고 소총 대신 수류탄 6개씩을 분배하여 아군의 연막탄이 적의 시계를 완전히 차단한 가운데 938고지 능선을 따라 돌진해 나갔다. 이때 적은 다시 포격을 집중하기 시작하였지만 최 이등상사는 선두에서 대원들을 이끌었다. 쏟아지는 적탄을 헤치며 적의 엄폐호에 돌진한 최 이등상사는 수류탄 한 발을 적의 기관총 진지 안에 집어넣어 파괴한 후, 능선 중간지점에서 불을 뿜어대고 있는 또 다른 기관총진지로 다가가 수류탄을 총 안에 집어넣어 격파하였다.
이렇게 두 개의 기관총 진지를 격파하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대원의 선두에서 고지 정상으로 돌진해 나갔다. 적진 속으로 무사히 돌진한 최 이등상사는 수류탄을 투척하여 적의 기관총진지를 모두 격파하고 정상까지 무사히 진격했음을 3발의 신호탄으로 연대지휘소에 알렸다. 신호탄이 발사되자 대기하고 있던 제9중대와 제10중대가 돌격을 감행하여 04시 30분에 목표를 완전 점령하였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했던 30명의 특공대원 중 끝까지 살아남은 대원은 최득수 이등상사를 비롯한 5명뿐이었고 나머지 대원은 모두 전사하였다.

* 참고문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2003
국방부,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제1집, 1955
육군본부, 한국의 전쟁영웅들, 1992
이원복, 호국용사100선, 명성출판사, 1976
국방부, 호국의 별 제3집, 1979
포병학교, 포병의 발자취, 1963
병학사, 내 젊음 조국에, 1987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38도선 초기전투: 중동부전선 편, 1982
국방일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2002. 11. 9
국방부, 한국전쟁사 제8집, 1975
공군본부, 공군사 제1집
육탄 10용사 현충회, 육탄 10용사, 도서출판 法政, 1986
국방부, 호국의 별, 제6집, 국방부 정훈국, 1982
국방일보, 한국의 전쟁영웅들 (1) 육탄 10용사, 1992. 6. 4
국방부, 호국전몰용사공훈록 제3집, 1997

***********
그때는 부천이 "군"이었네요. 전사하지 않으신 영웅이십니다. 그리고 이 자료도 역시 전쟁기념관에서 땡겼습니다.

Comments

이득수 2006.12.31 12:39
  흠 저랑 이름이 같네요 한자도 똑같고
자랑스럽습니다 ^^
칠성관리자 2007.01.23 18:06
  아. 그러게요. 아직 이 선배님께서 살아 계신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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