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고지 전적비
칠성은

425고지 전적비

칠성관리자 2 10,055 2006.11.2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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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개요

위치 : 철원군 원남면
관리기관 : 육군 제7사단

ㅇ건립취지 및 유래

김일성은 화천발전소를 절대 넘겨줄 수 없다고 하여 전 역량을 집중, 화천발전소 탈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남한내 중요한 전력자원이었던 화천발전소의 절대 사수를 명령하여 적을 종심깊이 유인하여 화력으로 격멸하고 백병전을 불사한 용전분투로 이를 격퇴함으로써 화천댐 및 화천지역 사수는 물론 38선이북, 35km 전방까지 확보함으로써 유리한 지형에서 휴전을 맞이하였다. 특히 이 전투는 7사단이 익년 화천으로 이동한 후, 부여받은 현 책임지역 내에서 한국전쟁시 유일하게 수행한 마지막 전투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건립하였다.

ㅇ철원군 인문지리

강원도 북서부와 영서지방 북부에 위치한 군으로, 지금은 휴전선이 지나가면서 둘로 나뉘었다. 휴전선 부근은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으로 지정되어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다. 남한에 속해 있는 철원군은 동쪽으로는 양구군, 서쪽은 경기도 연천군, 남쪽은 화천군과 경기도 포천시가 접하고 있다. 민통선 북부의 5개면을 포함하여 4읍 7면 74개 동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갈말읍 신철원리이다. 2000년 현재 면적은 899.82㎢, 인구는 5만 4040명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인 경원선이 지나가던 이곳은 강원도의 중심지였으며, 금강산 구경을 가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으로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의 폭격으로 항상 사람들이 붐비던 철원은 폐허가 되어 구철원으로 남고 새로운 중심지인 신철원이 만들어졌다. 철원군의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까지만 해도 철원지방에서는 농사가 활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철원 평야의 경우 넓은 들판 가운데로 흐르는 한탄강 물의 양은 적지 않으나 들의 높이보다 30미터 쯤이나 더 낮게 패인 골을 따라 물이 흐르기 때문에 논에 물을 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곳 땅의 대부분이 곡식이 자라기 어려운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가까운 평강군에 봉래 저수지와 보양 저수지 같은 큰 저수지가 생겨나면서 물을 끌어다 댈 수 있게 되었고, 흙에 모래를 섞어 땅의 성질을 바꿔줌에 따라 곡식이 잘 자라는 기름진 땅으로 바뀌게 되어 이제는 철원군에서 생산하는 쌀이 강원도에서 생산하는 쌀의 6분의 1을 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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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쟁기념관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Comments

조남철 2006.11.22 09:34
  잘읽었습니다 수고많으세요 ^^
칠성관리자 2006.11.23 07:27
  별말씀을. 저도 저기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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