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6·25전쟁 때 육탄 공격으로 적 자주포를 격파한 춘천지구 전투의 영웅 심일(1923년 6월 5일~1951년 1월 26일) 육군소령을 ‘6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심 소령은 5명의 특공대를 지휘해 육탄 공격을 감행, 적 탱크형(SU-76) 자주포를 격파하며 개전 초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고 국군의 한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의 참전 시간 확보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이후 전 전선에서 아군이 북한군의 전차와 자주포에 육탄공격을 감행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심일 소령은 192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1949년 5월 육사 8기로 임관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심일 소위가 소속된 6사단 정면에는 춘천 점령의 임무를 부여받은 북한군 2군단 예하 2사단이 배치돼 있었다. 화천~춘천 축선을 허물기 위해 적은 모진교 남쪽 강변 일대의 고지를 점령해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고탄리 부근의 아군에 맹렬한 포격을 가했다. 이때 6사단 7연대 1대대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으로 북한강을 따라 춘천에 이르는 길목인 곰나루터에 57㎜ 대전차포 2문을 배치하고 있던 심 소위는 적의 자주포에 사격을 가했으나 격파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심 소위는 측면을 통한 육탄공격을 감행하기로 하고 5명의 특공조를 선발·지휘해 수류탄과 화염병을 지닌 채 길목에 매복했다. 마침내 적 자주포가 접근하자 자주포의 포탑으로 올라가 수류탄과 화염병을 투척, 3대의 자주포를 파괴했다. 순식간에 자주포가 화염에 휩싸이자 당황한 적은 자주포에서 내려 도주하기 시작했으나, 매복 중인 대원들에 의해 모두 사살됐다.
이후 심일 소령은 충북 음성지구 전투, 경북 영천 304고지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근무하던 1951년 1월 26일 강원도 영월지역 전투에서 정찰 도중 총격을 받아 28세의 나이로 산화했다. 정부는 그해 10월 심 소령(당시 대위)에게 위관급 장교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