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養殖)을 했다고 하니 서양식(洋式)을 하는 줄 알고 취사병으로 분류됐지만, 이제 저의 꿈은 대한민국의 최고 요리왕이 되는 것입니다.”
육군7사단 포병연대 본부포대 김남규(22ㆍ사진) 일병은 부대원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취사병이다.
당초 김 일병은 취사병과는 거리가 먼 주특기 소유자로 생뚱맞게 군 생활이 풀린 경우다.
지난해 4월,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적성검사를 받을 때 고등학교 재학시절 취득한 ‘수산양식기능사’ 자격증을 확인한 병역담당관이 취사병으로 분류했다. 양식을 물고기 양식이 아닌 요리 양식으로 착각해 빚어진 일.
당시 요리라곤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던 터라 덜컥 겁이 났지만 군에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익힌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더 앞섰다.
“기왕 그렇게 된 거 군에서 최고의 요리사가 돼 보자고 작정했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최선을 다해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김 일병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인문계를 포기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경북 포항해양과학고 자영수산과에 들어갔다. 그때 넙치나 철갑상어 등을 사육했고, 미역같이 손쉽게 양식할 수 있는 해양상품들에 대해 배웠다. 군 입대 전 아르바이트로 상어를 해체하는 작업에서 배운 칼질이 전부였던 김 일병.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취사병 업무를 배우기 위해 종합군수학교에 입교했다. 처음 배운 것은 당연히 칼질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자대 배치 후에도 식단을 만들기는커녕, 매일 썰기 연습만 한 김 일병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 부대 내에 “야채도 못 써는 취사병이 왔다”라는 소문으로 번졌다.
소문의 진실을 밝힐 수도 없는 입장에서 냉가슴만 앓던 김 일병은 실력을 능력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하고 일과시간 이후 매일 저녁 늦게까지 취사반에서 주방기구와 씨름했다.
오기로 잡은 칼에 손이 베이기 일쑤고, 음식 재료의 신선도를 위해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가며 손을 담그는 일도 다반사. 그래서 김 일병의 손은 유난히 빨갛고 영광의 상처들로 가득하다.
그런 김 일병을 지켜보던 전우가 스승을 자처하며 나섰다.
호텔과 식당에서 조리 경력을 쌓은 취사병 동기 박규현(22) 일병.
박 일병은 “밖에서 배운 조리 방법이 군 식단과 달라 나도 배우는 입장이었다”면서 “처음에 김 일병이 국 간을 맞추는 조미료 선택을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선임 취사병 최지훈(23) 상병도 “대량요리는 누구나 어렵다”며 “김 일병에게 스킬을 빨리 익히기보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참맛이 나올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현재 조리뿐만 아니라 부식 수령 및 손질과 식사 전 재료 손질, 보관, 설거지 등도 맡아서 한다.
이근재(대위·33) 본부포대장은 “처음에 간을 못 맞춰 국이 맵고 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김 일병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 지금은 다들 맛있게 식사한다”며 “뭔가 하려는 동참의식도 높고 부대활동도 열심히 하는 모범적인 병사”라고 김 일병을 평가했다.
취사병 생활 8개월째로 접어든 지금, 김 일병은 동기와 선임병의 조리 솜씨 전수에 힘입어 이들과 ‘맞짱’을 뜰 만큼 능력을 갖춘 상태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꿔온 ‘대장금’의 목표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커 가고 있는 중이라고 김 일병은 속내를 드러냈다.
김 일병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닭 매운찜과 깐풍기·탕수육 등이다. 기회가 된다면 훈련 등으로 지친 전우들을 위한 간식으로 라볶기를 만들어 주고 싶단다.
김 일병은 현재 한식과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독학하고 있다. 3명의 취사병이 번갈아 가며 휴가를 가는 입장이지만 휴가에 맞춰 필기와 실기시험을 볼 계획이다.
취사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고된 일이지만 전우들이 “김 일병, 오늘 요리 맛있게 잘 먹었다!”라고 자신의 요리를 칭찬해 줄 때 피로를 잊게 된다는 김 일병.
말수가 적고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 요리를 하면서 밝게 바뀌고 넉살도 늘었다는 게 김 일병을 지켜본 부대 간부와 선임병들의 귀띔이다.
단순히 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식재료를 옮기는 일도 해야 하는 만큼 체력도 중요해 김 일병은 일과 이후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며 몸짱 만들기에도 열심이다.
뜻하지 않은 취사병으로 선택됐지만 군에서 요리도 배우고, 성격도 바꾸고 건강도 다지는 등 입대 전에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져 군 생활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김 일병에게도 꿈이 있다.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고급 일식당 요리사가 되는 것.
김 일병은 “대한민국 최고 요리사가 되는 것이 제 꿈”이라며 “식도락가들이 ‘요리사 김남규’란 이름만 듣고 포항으로 달려 오도록 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입대 당시 솔직히 어이없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취사병으로 분류해준 병역담당관님이 너무 고맙기만 합니다. 군대는 제 인생에 커다란 호기를 준 셈입니다. 군 복무는 제게 이상을 현실로 바꿔준 절호의 기회이자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포항의 대장금, 김남규’를 꼭 기억하시고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