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경화 소령이 GOP에 서 있는 까닭은?
칠성소식

故 정경화 소령이 GOP에 서 있는 까닭은?

정유광(03.10경기) 0 12,516 2010.06.21 18:04

부하들의 정성으로 동상으로나마 정경화 소령님을 백암산 기슭에 다시 모신지가 어언 23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두 번의 강산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 당시를 생각하니 문득 기나긴 세월 속에 가슴 절였던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가슴이 멥니다.



33년 전 맏형 같았던 중대장님을 잃은 당시 부하들은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고 무사히 군생활을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제대하자마자 곧바로 찾은 곳이 동작동 국립묘지였습니다. 사전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냈거나 약속했던 것도 아닌데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 묘지에서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6월 6일엔 모두 모이자’라는 메모를 남기게 되었고 당시 중대의 명칭을 딴 ‘맹호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0명 남짓한 인원이었습니다. 33, 66, 99, 1212. 이것은 6월 6일 현충일을 비롯하여 맹호회원들이 모이는 날짜입니다.




해마다 6월 6일이면 우리 맹호회원들은 동작동 국립묘지 중대장님 앞으로 달려갑니다. 중대장님의 큰누님과 수녀로 계신 작은 누님 외 가족들이 오시고 또 중대장님 재경동기들도 많이 오십니다. 이날을 위해 멀리 삼척에 사시는 큰 누님은 손수 과일주를 담궈 오신지가 벌써 십 수년째입니다. 그 술 한 잔을 마시며 중대장님 생존 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중대장님을 추모 했습니다.




정경화 소령의 가족이라고는 큰형님이 계셨으나 몸이 편찮아 거동을 못하시다가 몇 년 후에 작고 하셨고 누님 두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막내였던 중대장님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순직하실 때까지 미혼이셨습니다. 그래서 직계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보상이나 연금 대상자에도 해당되지 않아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그 무엇을 받은 게 없는 분이십니다.




한해 두해 그렇게 추모의 모임을 갖던 중 술자리에서 “매년 만나서 나누었던 중대장님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도 이제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나마 다 잊혀질테니 그 전에 얼른 책을 내자”라는 말이 오갔고 의견이 모아져 졸지에 내가 총대를 매개된 것입니다.




어찌됐든 중대장님과 함께 한 일화들을 회원들의 자료를 모아 오랜 세월 각고 끝에 『백암산 접동새(그때 그 곳 그 자리에)』로 출간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엔 군과 사회여건상 책 발간이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사전 심의를 받다 보니 애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어찌됐든 우여곡절 속에 책이 출간되고 정경화 소령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각계에서 사실여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책을 보급하여 얻은 수익금으로 정경화 소령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도서 보급에 힘을 써주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회원은 50~100권, 직장인은 20~30권씩 구매하고 그밖에도 회원 가족들까지 솔선하여 판매에 나섰습니다. 중대장님 생가인 삼척 장호에서도 형수님과 큰누님 외 가족들은 해수욕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판매하셨으며 뜻이 통하자 친 인척, 학교 등 여러 곳의 도움의 손길로 이어졌습니다. 또 중대장님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들이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을 하고 각지의 연대장으로 부임 할 때인지라 육사 27기 동기회에서는 도서를 홍보하며 뜻을 같이 하고자 연대장님으로 나가는 동기들께 100부씩을 보내라고 동기회장의 취지서와 군부대 주소를 보내주어 많은 도서를 보급 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훗날 동기들 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 나는 이상한 놈이 되었지만 내 반드시 규명하여 까발리고 억울함을 풀 것입니다. 세상지내며 느낀 것이지만 동기라고 다 같은 편은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각설하고,




이렇게 회원들의 열화와 갖은 성원과 여러 사람들의 뜻과 정성으로 기금을 모아 동상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막상 동상을 세울 장소 선정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칠사단 사령부에 건립하자’ 또는 중대장 생가인 ‘삼척 장호에 건립 하자’는 등 의견이 나왔지만 저와 당시 소대장이었던 박노영(현 고문)님 외 몇몇은 중대장님이 생활하시던 지역에다 세워 그곳에서 생활하는 장병들과 영원히 함께 하며 또한 그곳을 찾는 장병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데 의견이 일치하여 결국 어려운 절차를 걸치는 우여곡절 끝에 당시 2~8이라 명칭하는 중대 cp 옆에 동상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23년 전 당시 북한군의 남한 침투용 땅굴이 발견되어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 상황 속에서 그것도 최전방 DMZ 안에서 민간인이 동상을 건립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공문을 발송하는 등 취지를 전하다보니 마침내 부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의 사건을 다시 면밀히 조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의 도움으로 우리의 취지와 정성이 주위의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동상 건립 승인이 났던 것입니다.




부대의 사단장님께선 정경화 대위가 5연대 3중대의 중대장이었으니 누구보다 중대원들에게 과거 의로운 중대장에 대해 먼저 알려주고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며 3중대 전원이 옛 중대장 동상 건립 공사에 참여토록 하였으며 향후 공원 관리와 추모식을 함께하며 선후배간 전통을 계승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주셨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전임 중대장을 위해 3중대 전원이 나섰습니다. 곡괭이와 삽으로 언 땅을 파고 돌을 쌓아가며 땀 흘린 결과 지금의 ‘경화공원’이 탄생한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로 국회에선 청문회가 소집되는 등 혼란스럽고 시끄러울 때였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오직 우리의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동상 제작 및 설계도에 따라 석재, 시멘트, 철근, 조경수 등 필요한 자재들을 민간차량으로 수차례 운반하였고, 작업에 동원된 3중대원을 위해 우리 회원가족들은 간식거리를 준비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작업이 진행되던 몇 달 동안 이틀이 멀다하고 우리는 현장을 방문하였으며 장병들과 감동반 눈물반으로 고락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사를 마치고 탄생한 것이 현 경화공원올시다.




각계 각층의 내빈들이 참석한 동상제막식에서도 우리 회원들은 현역 3중대원들과 보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후 우리회원들은 동상 건립에 땀 흘린 3중대원들을 격려코자 부대의 승인을 얻어 년말이면 송년식겸 별도 위문을 하였고 훗날 규모를 키워가며 수년 동안 대대위문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현역들과 자연스럽게 선후배의 전우 관계로 발전하였고 서신을 주고 받거나 휴가 또는 제대 시에도 찾아와 교분과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인원들이 지금의 백암산 패밀리의 주축을 이루는 핵심 멤버인 것입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만나 함께하며 전통을 잇고, 제대하면 백암산 가족이 되어 다시금 중대장을 기리며 후배를 찾게 되고 계속 이어지는 역사 속에 오늘날의 백암산 패밀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대에서는 행사를 위한 행사로만 치부하려 하며 처음의 뜻과 달리 취지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전국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부대원들은 아랑곳없이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 높디 높은 양반께서 참석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별의별 사연이 다 생기더라고요.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원래 칠성 전망대는 경화공원이 건립되고 난 후 2, 3년 뒤에 생겼습니다. 92년쯤의 정경화 소령 추도 행사 때 일 것입니다. 막 행사장에 도착하여 행사가 시작했을 때 일입니다. 갑자기 사단 정훈 참모의 지프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전달하는 말이 기가 막힙니다. 높으신 사단장님 모교 재학생들이 칠성 전망대를 방문함으로 빨리 행사를 끝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얘깁니다. 우리가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못 볼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사단장님 모교 학생들의 전망대 방문을 위해 정경화 소령 추도행사를 서둘러 끝내야 한다는 이유가 기가 막혀 내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 학생들이 이 행사에 참석하여 뜻 깊은 광경에 동참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문 하였으나 어디 군대가 내말 듣습니까. 결국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행사를 마쳐야 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게 옛날 군대올시다. 그런데 지금도 별 차이가 있나 싶습니다.




도대체 정훈이 왜 있으며 정신 교육은 무엇을 가지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하들이 자발적으로 세워 놓은 동상 앞에서 생명존중과 희생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보는 것이 바로 정훈이고 정신교육이 아닙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고 군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그 시절 교통도 안 좋고 배도 고픈 시절입니다. 그 당시 부대에서는 백암산패밀리를 최고의 자매결연 단체라고 하였습니다. 부대를 방문하면 장병들과 거리낌 없이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전방 방문은 주로 기관장 내지는 군인 가족들이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의 차림새를 보면 패션쇼를 하는 것 마냥 멋지게 꾸며 입고 방문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장병들은 거리감이 생겨 더 멀리 떨어졌다 합니다.




하지만 백암산 패밀리는 부대의 가족으로 반겨 주었습니다. 백암산 패밀리는 장병 위주로 먹을 것과 그 외 위문품을 준비하곤 하였습니다. 또 부대에서 큰 훈련 시에는 연락이 와 적극 지원한 바도 있으며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했는데 세월이 변했다하여 냉대를 받는다면 기분 더럽습니다.




정경화 소령의 정신과 백암산 패밀리의 노력에 대해 부대 지휘관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휘관이 새로 올 때마다 녹음기를 틀 듯 사전에 부대를 방문해 취지를 설명해왔으며 그래도 한 해 한 해 본연의 뜻에 맞추려 했습니다.




행사 때 마다 많은 인원이 참석하므로 공간이 부족하여 현역 3중대 인원 전원을 참석시킬 수 없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전임 부대장님께 협조를 구한 바 경화 공원 주변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우리의 뜻을 헤아려 주시고 동참하여 주신 전임 부대장님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행사에도 역시 그 앞전 행사 때 소인원이 참석했다는 관례로 일개 분대만 참석시
켰습니다. 경화공원을 확장시켰건만 웃기는 얘깁니다.




몇 해 전부터는 정경화 소령 모교인 강릉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인솔 아래 4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합니다. 이 어린 학생들이 멀리 이곳에 왜 오겠습니까? 선배의 의로운 죽음과 그 정신을 따르고 지키려는 부하들의 정성을 통해 미래 대한민국과 인류를 위한 고귀한 정신과 가치를 일깨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오직 교육의 백년지계를 위해 경비를 써가며 피곤을 무릅쓰고 참석하시는 교장선생님 이하 지도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께 덧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행사 때마다 육군사관학교에도 취지를 설명하며 초대장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사정의 이유로 참석을 회피합니다. 훗날 장교로 육군을 지휘하게 될 간부후보생들께선 대선배의 추모를 떠나서라도 뭔가 도움이 안 되는가 봅니다. 강릉고등학교의 경우와 비교할 때 뭔가 대조적이며 아이러니 할뿐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신념과 의지로 지금까지 정경화 소령 추모제를 지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정경화 중대장님 동기분은 그곳에서 연대장을 하였고 그래서 두 차례 추모식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내용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승승장구하여 육참총장, 국방장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기면 뭐합니까?




그 당시 좀 신경 썼더라면 지금 이지경이 되었겠습니까? 하긴 워낙 바쁘셔서 동기를 떠나서라도 작금의 일어나는 사건들보다 우리의 일들이 가치가 있겠냐마는 아무튼 그때가 그립습니다.




오래전 동상 건립을 위해 우리의 뜻을 수용하여 헌신적으로 도와주신 그분들 하나회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많은 분들이 도중에 하차 내지는 비켜 가셨지만 그래도 내 눈엔 그 분들이야 말로 진정 군인답고 멋있었습니다. 말 한마디면 지휘 계통으로 척척 결과 보고가 들어오며 일들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누누이 볼 수 있었습니다. 진짜 그때가 군의 매력인 다, 나, 까, 군대올시다.




우리는 33년 전 현역 군생활 중 중대장님을 잃은 애도함에 부대원들의 성원으로 2소초에 순직비를 건립하였고 군문을 떠난 11년 뒤엔 그 부하들이 동상건립을 하였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는 사유재산으로 사유지인 것입니다. 더 이상 고 정경화 소령께서 GOP에 계셔야 했던 최초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부지를 선정하여 동상 이전도 불사하겠습니다. 자신 없으면 애당초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백암산 패밀리는 어떠한 이권에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중대장과 중대원인 부하 관계로 33년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군에서 우리에게 월급을 준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누가 보태줘서 한 게 아니라 제각기 힘들게 벌어 가족들과 먹고 살아가면서 오늘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는 아닙니다. 그래도 물질을 위해 부모 형제와 일가 친척을 저버리는 현실에 비해 혈연관계로 구성되진 않았지만 33년간 친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부하의 의리를 지켜온 우리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가족이 없고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에서, 정부에서 외면당한다면 이 소중한 정신과 역사의 맥은 어떻게 이어갈지 답답할 뿐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중대장인 정경화 소령님을 찾는 햇수가 많아질수록 우리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그 일이 닥치기 전에 가족보다 더한 직계부하들이 있음을 세상과 국가에 밝히고 중대장님의 숭고한 정신과 부하들의 전통의 맥을 계승하기 위하여 국가에 헌법소원을 상정 하고자 합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맥아더 장군의 명언입니다.

또 어느 고명하신 학자분이 자주 부르짖는 말이 생각납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하십니다.”, “맞아

죽어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라는 말에 동감입니다.




강원도 양구 21사단 우측 GOP에는 북한군이 침투를 위해 파놓은 제4땅굴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였다가 특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땅굴 진입 입구에 군견의 동상이 광엄하게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땅굴에 진입하기 전 안내장교는 동상의 주인공인 군견에 대하여 장엄하게 브리핑을 하는 것입니다.




4땅굴이 초병에 의해 발굴되자 군은 병력을 투입하여 땅굴을 수색정찰하게 되었답니다. 이 군견은 선두에서 동굴을 역 추격 하다 땅속 1km 군사분계선 지점에서 북한군이 급하게 도망가다 설치한 부비트랩(인계철선)을 건드려 큰 폭발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폭발로 동굴이 무너져 내리고 군견이 희생되었지만 다행히 군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든 코끝이 찡하도록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신체 건강한 개로 태어나 군에 입대하여 훈련 받고 전방에 배치되어 작전에 투입하여 인명을 구하고 의롭게 산화한 자랑스러운 군견이 있었다니 다시금 삼가 명복을 빕니다.




군에서 안내장교가 브리핑하며 자랑 할 만 하다고 생각 들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개(군견)동상은 개 나라에서 세웠을까요? 개 가족이 세웠을까요? 아니면 개 부하들이 세웠을까요? 글쎄요 아닙니다. 바로 그 부대에서 세웠습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세운 정경화 소령님 동상은 어떻습니까? 그 앞을 많은 차량과 인파가 지나 다녀도 어느 누구하나 엄숙하게 참배하거나 안내하는 일 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웃기고 기가 막히는 것은 육군사관학교 역사관에서 ‘영원한 중대장 정경화 소령’이라고 소개하고, 해당부대 역사관에는 ‘부대를 빛낸 영웅’이라고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얘기입니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부하들이 겪었던 우여곡절과 많은 사연들에 대한 설명은 어느 곳 한 줄도 없습니다.




기가 막히는 얘기입니다. 마치 군에서 일어난 영웅을 소개하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자면 그게 맞는 이야기냐 이겁니다.




하마터면 묻혀 버릴 뻔 했던 한 야전 장교의 살신성인의 실상을 그 당시 함께한 부하들이 그것도 군문을 떠난 뒤 어렵게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축소하여 묻어야 했던 것이 바로 군이며 해당부대며 지휘관올시다. 오직 자신의 안일을 위해 사실을 은폐했던 지휘관 바로 그 지휘관이 십 수 년이 지난 뒤에는 모 사단 사단장님이 되셨더라고요. 그러나 역사의 진실 앞에 정경화 소령님의 모든 것은 밝혀져 명예는 회복되어 추서진급이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15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입니다. 그때 지휘관이었던 높으신 사단장님께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한마디로 떠올리기조차 싫습니다. 15년간 묻혀버린 억울함과 명예는 도대체 어데서 보상 해줄까요? 이 부분은 기가 막히다 못해 정말 웃기는 얘기올시다.




세월은 많이 흘렀습니다. 정경화 소령님은 대한민국 현역 장성들과 부사관에게 있어서도 이미 대선배이십니다. 아니 국가를 위해 수호하다 산화하신 애국선열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특히 잘난 후배 여러분! 사병들이 세운 동상이라고, 사병들이 모인 단체라고... 또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성우회, 군인공제회 등 많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조국의 4대 의무인 병력의무를 마친 명예로운 대한 남아이고 대한민국 국민이올시다. 지난해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도 을지부대 상병으로 제대하였고, 우리 아버지 삼촌 친구들도 다 일병 상병 병장으로 전역하였습니다. 그러니 세월이 지나도록 전우들이 나서는 것을 꼴볼견으로 보고 편견으로 대하는 꼴갑은 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 의리란 것이 두동강 났다고 하지만, 중원의 강호나 일본의 야쿠자와 국내의 조폭들도 의리는 이미 먼 옛날이야기라고 합니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이라면 더군다나 군인이라면 최소한 기본적인 의리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없으면 본받기라도 하던가....




우리 국민은 지난해 갑작스런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로 온 국민이 애통하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이 스스로 각지에 빈소를 차려 촛불을 밝히고 그분을 기리며 추모하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바로 같은 맥락에서 중대장님을 향한 일념으로 오늘에 이른 우리 백암산 가족들이야말로 진정 의리를 아는, 의리가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33년 전 참인간, 참군인으로 작전 중 의로운 죽음을 택한 중대장님을 잊지 못해 그를 기리던 당시 중대원들로부터 시작된 백암산 패밀리 가족들은 국립묘지에서의 추모 모임을 시작으로 추모의 글을 모아 책을 발간하였고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의로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배달의 기수’ 등 언론매체의 취재를 지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뒤늦게 순직보고서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진실을 밝히고자 고군분투하여 비록 15년 이 지난 후이기는 하지만 진실을 밝혀 중대장님의 동상 앞에서 추서진급 사실을 고하고 진급식을 갖는 영광스런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경화공원을 조성하여 해마다 추도식을 갖고 장병들을 위문하였으며 귀감이 되는 중대장 像 정립과 부하들의 존경심과 전우애를 전하고자 ‘경화상’을 제정하여 최우수 중대장 2명을 선발, 각 200만 원씩 400만 원의 상금을 제2회까지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백암산 가족들은 해마다 각 부대를 방문하여 도서 외 위문품을 전하며 정경화 소령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전파하는데 주력해왔으며 지난 2009년에는 정경화 소령 32주년 추도식 및 제2회 경화상 시상식 외에도 각지의 6군데 부대를 방문하여 위문하고 도서 외 위문품을 기증한 바 있고, 금년 2010에도 이미 세 차례 부대를 방문 도서를 기증하였습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며 혹 알아달라고, 돈을 벌려고 그러는 것은 더더욱 아니올시다. 오직 오랫동안 변치 않고 행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중대장님에 대한 도리이며 의리요 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역사! 우리 백암산 패밀리의 이 역사 앞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방언으로 더 이상 왜곡되는 일이 없길 소망할 뿐입니다.




국권회복을 위해 이또 히로부미를 격살시켜 민족의 한을 풀어 주셨던 안중근 의사님께서 남기신 글귀가 생각납니다.









“國家安危 勞心焦思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과연 이 시대의 지각 있는 양심과 진정한 영웅은 얼마나 될런지.....

                            

                              2010년 4월 26일

                               

                                백암 정문식

 

 

P.S. 위의 글은 저작권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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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도서]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 정유광(03.10경기) 2010.06.30 8146
211 [6ㆍ25 60주년] 육군종합학교 출신 소위가 겪은 6·25 정유광(03.10경기) 2010.06.30 9213
210 분단의 현장 중동부 전선을 가다 정유광(03.10경기) 2010.06.30 16246
열람중 故 정경화 소령이 GOP에 서 있는 까닭은? 정유광(03.10경기) 2010.06.21 12517
208 故 정경화 소령이 GOP에 서 있는 까닭은? 댓글+3 민경철(88.11충북) 2010.06.21 5985
207 육군 칠성부대 창설 61주년 기념식 댓글+2 민경철(88.11충북) 2010.06.11 11098
206 화천에 동남아관광객 몰린다 손은석(97.05서울) 2010.06.11 7799
205 6.25 참전용사 32명 무공훈장 수여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6.09 7897
204 육군 7사단 DMZ 수색작전 댓글+3 민경철(88.11충북) 2010.05.27 23181
203 [6·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5> 진격 길에 나서다 댓글+3 정유광(03.10경기) 2010.04.20 9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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