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서부전선의 암운 -칠성부대
칠성소식

<6>중서부전선의 암운 -칠성부대

정유광(03.10경기) 2 10,293 2010.04.07 14:38
 

[경기포천 만세교 부근에 남아 있는 벙커]
[6ㆍ25전쟁 당시 국군7사단 전방 벙커 중 유일하게 남아 문화재로 지정됐다
.]







 

북한 전차 120대 중 93대 집중 투입 / 2010.02.11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30분 고도 개성이 함락되면서 서부전선에 위기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동두천과 포천 정면의 중서부전선 상황이 너무도 불안하게 흘러갔던 것이다.

 이미 1949년 12월 육군본부 정보국은 만약 북한이 남침한다면 동두천ㆍ포천∼의정부∼서울로 이어지는 축선이 북한군의 주공 방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 주도로 1950년 5월 작성된 방어계획인 작명 38호도 북한군이 동두천ㆍ포천∼의정부로 연결되는 지역으로 공격을 집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연 1950년 6월 25일 실제 전쟁 상황은 육군본부 정보와 작전부서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북한은 개전 당일 출동시킨 T-34 전차 120대 중 80대를 포천 정면(7사단 방어구역)으로 집중시켰다.

이에 비해 국군1사단이 방어하는 문산에 27대, 동두천 정면에 단 13대에 불과했다. 국군6사단이 방어하는 춘천ㆍ화천과 국군8사단이 방어한 강릉 정면에는 단 1대의 전차도 나타나지 않았다
.

 북한은 핵심 무기인 전차를 포천에 ‘올인’해서 의정부를 거쳐 바로 서울을 점령할 생각이었던 것. 이처럼 전쟁의 큰 흐름은 육군본부의 예측대로 진행됐지만 이 같은 정보 판단과 작전 계획의 성공은 실제 방어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포천ㆍ의정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예상했으면서도 막상 이곳의 방어를 담당하는 국군7사단의 전력을 사전에 강화하는 조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1개 사단은 3개 보병연대를 주축으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포천과 동두천을 방어하는 국군7사단에는 전쟁 당일 단지 2개 연대밖에 없었다.

물론 육군본부는 충남 온양에 주둔하던 25연대를 국군7사단으로 보내 3개 연대를 채울 생각으로 20일까지 부대 이동을 마치라는 명령까지 내린 상태였다. 이에 따라 국군7사단은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일대에 25연대 주둔지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도 25연대는 여전히 온양에 머물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일본의 전사연구가인 사사키 하루다카는 “민간 소유 토지에 대한 보상 문제 등으로 시간이 지체된 것이 문제였다”고 그의 저서에 기록하고 있다. 행정적인 절차가 지연된 탓에 가장 중요한 핵심 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국군7사단의 1개 연대가 전쟁 개시라는 절체절명의 순간 제자리에 없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진 것. 


 여기에 장병 휴가와 외박으로 국군7사단의 실제 병력은 겨우 4500여 명에 불과했다. 전쟁 전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보유 차량의 60%를 후방에 보내 정비를 맡겨 놓은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중화기의 25%도 정비를 명목으로 후방으로 후송시킨 상황이었다.

 이처럼 실제 전력이 거의 연대급에 불과하고 장비마저 빈약했던 국군7사단 앞으로 북한군 3ㆍ4사단과 93대의 T-34 전차를 동원한 105전차여단 모든주력이 공격해 왔다. 흔히 ‘이겨 놓고 싸운다’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이란 이야기를 한다.


국군7사단의 상황은 그 반대였다.

      





7사단의 방어계획


 국군7사단의 방어계획은 기본적으로 지역고수 개념에 기초한 3선 방어 개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제일 전방 38선을 따라서 설치된 것이 경계진지 성격을 가진 제1선 방어진지였다. 그 뒤 감악산∼마차산∼소요산∼가랑산∼천주산 등 동두천과 포천 북방의 주요 산악지대를 연결한 선이 주저항선에 해당하는 제2선 방어진지였다. 예비진지이자 최후방어선에 해당하는 제3선 방어진지는 불국산∼158고지∼축석령으로 연결되는 선에 설정돼 있었다.

 제1선은 38선을 경계하면서 첩자 등의 침투를 방지하고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적의 접근을 조기에 경고한 후 지연전을 펼치다가 철수하는 것이 임무였다. 제2선은 주력부대를 배치해 방어전의 승패를 겨루는 핵심적 요지였다. 만에 하나 제2선이 뚫리더라도 반드시 제3선은 방어해서 후방의 아군 예비대가 추가로 투입될 경우 역습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당시 방어 개념이었다.

 당시 연천과 동두천을 방어하는 국군7사단 1연대의 경우 연대 본부와 1ㆍ3대대는 의정부에 있었고 2대대만이 동두천에 위치했다. 포천을 방어하는 국군7사단 9연대도 연대본부와 1ㆍ3대대는 의정부 동북쪽 4㎞ 지점인 금오리에 위치해 있었고, 38선 경비를 담당한 2대대만 포천에 대대본부를 두고 있었다.

 38선에서부터 제2선 방어진지까지의 거리는 7~8km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군7사단 주력부대 주둔지에서 제2선 방어진지까지의 거리는 무려 20~30km에 달했다. 북한군이 38선 돌파 후 7~8km 남쪽의 제2선 방어진지에 돌입하기 전에, 아군이 의정부에서 20~30km 북쪽에 위치한 제2선 방어진지로 투입해야 작전계획은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7사단 방어계획이 계획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의정부에 포진하고 있는 아군 주력부대를 최대한 신속하게 주저항선인 제2선 방어진지에 투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국운을 건 레이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 4사단은 30분 동안에 걸친 포병 공격준비 사격으로 국군7사단 1연대의 경계진지를 강타했다. 북한 4사단 16연대는 전곡∼동두천 간의 3번 도로를 따라 정면 공격을 해 왔다. 북한군 4사단 5연대는 16연대 서측의 봉암리∼적암을 연하는 선에서 공격을 가했다.

 초성역 방면에는 국군7사단 1연대 2대대 7중대가 배치돼 있었지만 북한군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7중대 병력은 기관총과 박격포 그리고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했지만 북한군 전차들은 유유히 남진하면서 전차포 사격을 퍼부었다. 결국 7중대는 병력의 3분의 2를 상실한 상태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양원리의 6중대 방면의 북한군 공격 속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6중대가 방어하는 경계진지를 돌파하는 데 북한군은 장장 3시간을 소비했다. 7중대는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6중대는 폭 11km에 달하는 방어 정면을 담당하면서도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악착같이 버텼다.

북한군의 사격은 이날 새벽 4시에 시작됐지만 6중대 병력이 제1선 방어진지에서 최종적으로 이탈한 시점은 이날 오전 7시 무렵이었다. 일부 노병들은 철수 시점이 9시였다고 증언하기도 했으니 6중대는 그야말로 선전분투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군의 움직임에도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 당시 참전 노병들은 “아군이 배치된 정면에 북한군이 4열 종대로 행군해 왔다”거나 “북한군이 아군이 별로 배치되지도 않은 지역에 무려 20~40분 동안 포병 준비 사격을 계속해 포탄과 시간을 허비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북한군의 실수와 아군의 분투로 번 소중한 시간 덕분에 주저항선에 아군 병력들이 먼저 배치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축차적으로 철수하는 국군7사단 1연대 2대대 병력도 소요산 진지에서 결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ㆍ3대대의 전방 투입을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됐다. 국군7사단 1연대는 이미 전쟁이 시작되기 전 작전계획대로 병력을 이동시키기에는 차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1연대의 2½톤 트럭은 5~6대에 불과했고, 의정부 일대에서 징발 가능한 차량도 겨우 17대였다. 이런 점을 고려해 1연대는 트럭을 개조해 경원선 철로 위에서 운행할 수 있는 궤도차를 사전에 마련해 뒀다. 1연대는 궤도차량과 트럭을 총동원해 1ㆍ3대대를 전방으로 투입할 준비를 갖췄다.


 국군7사단 주저항선이 붕괴되면 의정부가 함락되고 의정부가 무너지면 서울이 위태로웠다. 그런 중요한 주저항선에 투입되는 병력을 가득 태우고 궤도차량과 트럭들이 전방으로 내달렸다. 대한민국의 국운을 건 ‘레이스’가 시작됐다.  
제1선 전방 38선을 따라서 설치된 경계 진지
제2선 감악산∼마차산∼소요산∼가랑산∼천주산 등
동두천과 포천 북방 주요 산악지대 연결 선
제3선 불국산∼158고지∼축석령 연결 선

김병륜 기자   lyuen@dema.mil.kr

Comments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14:39
집중 공격~!   

실제론.. 3개 군단(6개보병사단) + 전차 + 집중 공격    vs      7사단 2개 연대 ;;;;
양무근(86.10대구) 2010.05.23 14:30
어디가서 이걸 가져오는기고..대단해..
번호 포토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2 문경시 6.25 영웅 김용배 장군 전기 발간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4.20 9988
201 <803>老兵이 걸어온 길-53-압록강을 향하여-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9303
열람중 <6>중서부전선의 암운 -칠성부대 댓글+2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10294
199 `우리 부대 전투력은 내 손안에 달려있다'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17402
198 1950년 12월 유재흥(오른쪽) 준장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11497
197 칠성부대??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10209
196 육군 2군단, 재창설 기념행사 화천서 개최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12125
195 [복거일이 쓰는 6·25의 결정적 전투]<1>38선을 사수한 춘천지구 전투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4.07 7696
194 <756>老兵이 걸어온 길-6- 5연대 창설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3.30 10423
193 <570>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57- 5연대 부연대장 부임 정유광(03.10경기) 2010.03.30 9504
192 <6.25 60년..아! 그곳> 2만8천명 희생 다부동전투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3.29 11287
191 50여년간 파로호에 묻혀진 가슴 아픈 사연 (2008년 6월3일) 정유광(03.10경기) 2010.03.29 9572
190 [도전 신기록] YTN(사이언스TV) - 포병연대 16포대 댓글+2 정유광(03.10경기) 2010.03.29 10902
189 덩굴숲 탈진 70대 할머니 구출한 '현역 사병 사병' 화제 댓글+6 민경철(88.11충북) 2010.03.28 8582
188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허영춘에게 배우십시오 댓글+1 정유광(03.10경기) 2010.03.26 8280
187 [6·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64) 틈새를 노린 북한군의 공격 댓글+2 정유광(03.10경기) 2010.03.26 9562
186 <건군 60년> ④육.해.공군.해병대 名將-1(2008-09-28) 댓글+5 정유광(03.10경기) 2010.03.25 9960
185 [2006년 6월16일]- 훈장 되찾은 노병들, 기백은 스무살 청년 그대로 댓글+4 정유광(03.10경기) 2010.03.25 8843
184 산불방지' 총력 * -2010년 3월12일- 댓글+3 정유광(03.10경기) 2010.03.25 7163
183 [6ㆍ25 60주년][나와 6·25] (12) 포로수용소 탈출 성공한 윤정식씨 정유광(03.10경기) 2010.03.25 9337
182 칠성부대 도하훈련 댓글+3 노대흥(82.03부산) 2010.03.25 8207
181 "죽음의 길' 알면서 참전… 꼭 기억해줘야 댓글+2 정유광(03.10경기) 2010.03.23 10814
180 중서부전선의 붕괴 댓글+3 정유광(03.10경기) 2010.03.23 9776
179 밤낮 없이 전투위치로 민경철(88.11충북) 2010.03.16 13804
178 전투력은 '업' 체력증진은 '덤' 댓글+4 민경철(88.11충북) 2010.03.15 11637
177 '막강 포병' 전통계승 자신 댓글+10 민경철(88.11충북) 2010.03.15 31422
176 [화천 우승자 프로필]황긍하(31·육군 7사단 본부중대장) 댓글+3 정유광(03.10경기) 2010.03.04 13374
175 '국군의 날 기념 사진전' 손민석 - 육군 제7보병사단 댓글+3 정유광(03.10경기) 2010.03.04 8553
174 육군 7사단 장병들 "엄마표 밥맛 최고예요" 댓글+2 손은석(97.05서울) 2010.03.02 7469
173 가슴을 활짝 펴고 병영생활 즐겨 봐 (제7보병사단) 댓글+3 정유광(03.10경기) 2010.02.25 8452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198 명
  • 오늘 방문자 961 명
  • 어제 방문자 1,017 명
  • 최대 방문자 6,359 명
  • 전체 방문자 1,959,929 명
  • 전체 게시물 36,775 개
  • 전체 댓글수 58,568 개
  • 전체 회원수 2,999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광고 / ad
    Previous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