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60주년][나와 6·25] (12) 포로수용소 탈출 성공한 윤정식씨
칠성소식

[6ㆍ25 60주년][나와 6·25] (12) 포로수용소 탈출 성공한 윤정식씨

정유광(03.10경기) 0 9,339 2010.03.25 14:28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 60년간 내 생일은 1년 두번





전쟁이 터지자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긴급 복귀명령이 떨어졌다. 육사 10기생으로 입교한 뒤, 전쟁이 터진 날 휴가 중이었던 나도 곧바로 복귀했다.


교관의 한마디 한마디가 못이 박히듯 뇌리에 꽂혔다. "귀관들은 적의 탱크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는다. 먼저 탱크 15m 안에 접근해라. 그러고 나서 TNT폭탄 30파운드를 탱크를 향해 던짐과 동시에 3바퀴를 구른 후 엎드려 입을 벌려라." 우리는 '자살특공대'가 됐다.


1차 특공대로 편성된 약 40명의 생도가 작전에 투입됐다. 하지만 한강을 건너기도 전에 적에게 발각돼 몰살을 당했다. 우리는 전의가 불탔다. 하지만 육군본부는 "너무 무모한 시도였다"며 작전을 취소했다.


목숨 건졌지만 포로수용소 끌려가

8월 중순 7사단 5연대 1대대 통신장교로 임관, 경북 영천 인근 안강전투에 투입됐다. 전장(戰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머리 날아간 시체, 허리가 잘려 나간 시체….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부대는 평안도로 진격했다.

하지만, 11월 묘향산에서 새까맣게 깔린 중공군한테 포위돼 2개 대대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부하 5명과 함께 눈 내리는 산악지대를 헤맸다.


평남 덕천군 임하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분은 마을 뒷산에 있던 폭 2m, 길이 3m 정도 크기의 토굴에 우리를 숨겨줬다. 1950년의 마지막 날. 그 노인 집에 내려가 고춧가루를 띄운 간장에 옥수수밥을 얻어먹다 불쑥 집에 들어선 북한 자위대원을 쏴 죽였다. 시체를 눈 속에 던져버리고 토굴에 숨었지만 결국 적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들은 우리를 그 영감님에게 데려가 "이 간나들이 우리 동무 죽인 놈들 아니메?"라고 물었다. 그 영감님은 시치미 딱 떼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목숨을 건졌지만 평남 덕천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포로수용소에서 장교 신분 들통나 처형 위기

포로수용소에선 장교 신분이 드러나면 곧바로 처형당했다. 배운 것도 없고 계급은 이등병이라고 속였다. 그곳엔 포로가 300여명 정도가 있었다. 25명씩 좁은 내무반에서 몸을 포개고 잤다. 겨울이었지만 덮을 이불 하나 없었다. 자다 보면 어느새 온기를 쫓아 몸이 뒤엉켜 있었다.

식사는 삶은 옥수수 알갱이를 90~110개씩 아침 저녁으로 두번 배급받는 게 전부였다. 옥수수를 손으로 던지면 옷으로 받아야 했다. 제대로 못 받으면 굶을 수밖에…. 한번은 고양이가 지나가는 것을 누군가 칼로 잡았다.
 
껍질을 벗겨 감시 몰래 불에 구워먹으려 했지만 제대로 구워지지도 않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점을 얻어먹으려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간신히 한입 얻어먹을 수 있었던 나는 본능의 극한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낮에는 도로를 뚫는 작업에 투입됐다. 도로 좌우측의 도랑을 파야 했다. 기온은 영하 20도 안팎. 땅이 얼어붙어 곡괭이를 내려쳐도 퍼런 불꽃이 나며 튕겨나왔다. 밤에는 김일성 사상을 공부하고, '빨치산의 노래' 등 군가를 배웠다.




1951년 4월 초 내무서원이 나를 불렀다. 내가 국군 7사단 5연대 통신장교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미 한 배신자의 밀고로 신분을 숨겼던 장교 6명이 총살을 당했다.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태연하게 거짓말이 나왔다. "나는 남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하다. 지난 3개월간 김일성 장군께 충성을 다했는데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그 내무서원은 "상부에 잘 보고해 줄 테니 일단 가서 쉬라"고 했다.


잠깐 시간만 벌었을 뿐, 결국 죽게 될 처지였다. 의기투합한 5명과 탈출을 결심했다. D―데이는 4월 8일. 집결지는 뒷산 산봉우리. 화장실 뒤 6가닥 철조망을 끊었다. 철조망을 밀고 몸이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온몸의 살이 찢겼지만 그대로 뛰쳐나갔다. 10m를 가자 총소리가 울렸다.

탈출해 집에 와보니 실종통지서가 도착해 있어

5개월간 낮엔 낙엽 깔고 자고 밤엔 산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자꾸 길을 잘못 들었다. 대동강만 3번 건넜다. 누비옷은 갈가리 찢겼고 신발이 없어 끈으로 발을 칭칭 동여맸다. 영락없이 짐승꼴이었다.
9월 16일 강원도 철원에서 미군 3사단 전차 부대를 만나 극적으로 귀환했다. 20일 넘게 샅샅이 조사를 받은 뒤에야 부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휴가를 받아 고향집에 돌아가니 부모님이 놀라서 말을 못했다. 집에는 내 실종통지서가 배달돼 있었다. 부모님은 소·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이후 나는 태어난 생일과 살아 돌아온 9월 16일까지 생일잔치를 두번 열고 있다.




[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0-03-23 03:00 최종수정 2010-03-23 1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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