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서부전선의 붕괴
칠성소식

중서부전선의 붕괴

정유광(03.10경기) 3 9,762 2010.03.23 13:59
 
<7>중서부전선의 붕괴
 / 2010.02.18




  6·25 당시 의정부 일대의 전경. 7사단이 방어하던 동두천과 포천의 함락으로 서울의 관문인 의정부를 향한 길이 적에게
개방됐다.                                                                                                                                    <자료사진>



  6월 25일 국군7사단 예하부대들의 가장 큰 적은 ‘시간’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북한군이 아군 제2선 방어진지를 돌파하기 전에 먼저 신속하게 주력부대를 투입해야만 어떻게든 전체적인 적의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외출·외박에서 복귀한 병력으로 국군7사단 1연대 1대대의 1차 재편성이 끝난 시점은 25일 오전 8시 무렵이었다. 마침 1대대장은 보병학교에 입교 중이어서 부대대장의 지휘하에 300여 명의 병력이 오전 9시 무렵 동두천에 도착했다. 하지만 제2선 방어진지인 양주 마차산에 투입되기에 앞서 잠시 논란이 벌어졌다. 1대대 4중대장 박찬긍(육사7기·중장 전역) 중위는 “마차산 정상에 올라가 봐야 남하하는 북한군을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차라리 도로 주변에 진지를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대대장은 “연대장의 명령이다”라는 말로 건의를 물리치고 마차산으로 올라갔다. 짧은 논쟁이었지만 이것이 국군 1연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차산 8~9부 능선에 1대대 병력이 포진을 끝낸 것은 이날 정오 무렵이었다.

 3대대의 집결은 1대대보다 조금 늦게 이뤄졌다. 참모학교에 입교 대기 중이던 3대대장은 부대로 복귀한 후 9시까지 집결한 병력 200여 명을 이끌고 전방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3대대가 동두천을 경유해 양주 봉암리에 진출한 것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였다.

 1연대 2대대의 선전

 이처럼 1대대와 3대대가 제2선 방어진지로 투입되는 동안 2대대는 일찌감치 제2선 방어진지인 소요산 입구에 포진해 3번 국도를 차단하고 있었다. 2대대 예하 전초 중대들이 25일 개전 초반 제1선 방어진지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2대대 본대는 25일 오전 동안 소요산 입구를 틀어막으며 나름대로 선전을 거듭했다.

 우선 연대 비상대기 중대인 1대대 3중대가 신속하게 2대대를 증원하기 위해 전방으로 투입된 것이 주효했다. 3중대는 새벽 4시30분 연대 작전주임으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고 신속하게 전방으로 이동, 이미 새벽 6시에 동두천을 통과해 말고개에 포진했다.

 국군 1연대는 최대한 전방에 추진시킨 3중대가 적의 예봉을 받아내는 동안 예하 1·2·3대대가 제2선 방어진지를 점령할 시간을 벌려 했다. 3중대는 연대의 의도대로 오전 7시 10분 양주 176고지 북쪽에서 적의 행군 대열 선두에 사격을 하는 등 적의 접근을 방해한 이후 소요산 입구의 2대대와 합류했다.

 2대대가 25일 오전 3번 국도를 차단할 수 있었던 보다 결정적 요인은 국군7사단 포병대대 2포대의 활약 덕분이었다. 김한주 중위가 지휘하는 2포대는 25일 오전 9시 30분 동두천에 도착, 2대대 주진지 남쪽 5㎞ 지점의 보산리 부근 뽕나무 밭에 M3 105mm 곡사포 5문을 방렬한 후 사격을 시작했다. 2포대는 250여 발의 포사격으로 2대대 주진지를 향해 전진하는 북한군 4사단 예하 병력을 강타했다.

 2대대와 2포대의 활약으로 오전 11시까지 소요산 입구를 통과하지 못한 북한군 4사단은 정오 무렵 T-34 전차를 투입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T-34 전차는 동두천 북쪽 2㎞ 지점의 창말고개에서 윤종호 중위가 지휘하는 아군 57mm M1 대전차포 3문의 집중사격에 더 이상 진격할 엄두를 못 내고 또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25일 정오를 전후한 시간, 국군7사단 1연대의 상황은 다소나마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이미 1대대가 마차산, 2대대가 소요산 입구에 포진을 끝낸 상태였고, 3대대도 양주 봉암리에 배치를 끝냈기 때문이다. 특히 2대대가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함에 따라 한때 서울 시내에 아군의 반격설이 나도는 등 잠시나마 동두천 일대 전황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도 나왔다. 

 예상 못한 구멍

 물론 전체 전황의 실상은 아군 일부의 낙관적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양주와 동두천 일대에서 국군7사단 1연대가 분투하는 동안 포천 방면의 9연대는 악전 고투 끝에 거의 전선 붕괴의 지경에 몰리고 있었다. 포천이 예상보다 빨리 오전 11시에 함락됨에 따라 동두천을 방어하고 있는 국군 1연대는 포천 방면의 북한군 움직임까지 예의주시해야만 했다. 포천을 거쳐 의정부까지 조기 점령될 경우 동두천을 방어해 봐야 후방을 차단당할 염려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25일 오후 3시 무렵 포천의 국군 9연대뿐만 아니라 동두천의 국군 1연대의 상황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전혀 생각지도 않게 동두천 서쪽의 양주 안흥리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 결국 동두천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도 북한군에 의해 포위되고 있는 조짐이 뚜렷해졌다.

 바로 국군 1연대 예하 1·3대대의 배치와 간격이 문제였다. 25일 오전 1·3대대가 배치될 때를 즈음해 이미 북한군 4사단 병력이 마차산 서쪽 도로를 통과해 남하해 버렸기 때문이다. 2대대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북한군 4사단의 예봉을 막아내는 동안 북한군 4사단 소속의 또 다른 부대가 1·3대대의 배치 간격 사이로 이미 후방으로 뚫고 들어온 것이다.

 결국 마차산에 포진한 1대대는 박찬긍 중위가 우려했던 것처럼 적과 접촉하지 못하고 유휴 병력이 되어 버렸다. 봉암리에 배치된 3대대도 오후까지 적과 접촉하지 못했다. 가장 결정적 순간에 국군7사단 1연대의 주력 병력이 적과 전투하지도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동두천의 함락

 25일 오후 3시부터 정면과 측면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된 국군 1연대는 점점 전선 유지에 힘겨움을 느꼈다. 1연대는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모아 상황에 대처하려 했다. 외출과 휴가에서 복귀한 병력을 중대 단위로 편성해 계속 전방에 투입하는가 하면 사단 하사관 교육대 등 교육 중인 병력들도 최대한 집결시켜 중대 단위 전선에 투입했다.

 25일 오후 5시 무렵 국군 1연대장 함준호 대령은 더 이상 동두천 방어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느꼈다. 하지만 아군의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는 주간에 철수할 경우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을 우려한 1연대장은 일몰 이후 철수하도록 예하부대에 하달했다.

 이 같은 명령에 따라 국군 1연대 2대대와 3대대는 후방 철수작전을 감행, 이날 밤 자정 이전 후방 덕정국민학교에 집결을 완료했다. 하지만 마차산에 포진한 1대대는 철수 행렬에 동행하지 못했다. 1대대에는 SCR-609 무전기가 있었지만 이날 낮 동안에도 잘 연락되지 않았고 그나마 연락장교나 연락병을 통한 명령 수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 전투에 투입되지 못하고 산꼭대기에서 고립돼 있던 1대대는 후방 철수 명령마저 받지 못해 홀로 후방에 고립됐다. 25일 오전 11시 포천이 함락되고 오후 10시 무렵 동두천도 함락되면서 서울의 관문 의정부를 향한 길이 마침내 적에게 개방됐다. 중서부 전선 붕괴의 대참사가 시작된 것이다.  


 큰 강 없어 방어작전 펼치기 어려워- 7사단 1연대의 분투

국군7사단 1연대가 25일 오전 동안 가장 고민한 문제는 바로 ‘시간’이었다. 하지만 1연대는 시간보다 1대대와 3대대의 부적절한 병력 배치라는 또 다른 변수 때문에 고배를 들어야 했다. 물론 북한군에 상대가 되지 않는 부족한 병력과 장비로 싸웠던 전투인 만큼 25일 국군 1연대 장병들의 처절한 사투는 그것 자체로 충분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2001년 공개된 러시아의 라주바예프 보고서는 당시 1연대가 분투했던 동두천 점령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완강한 저항’이라는 문구 속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군 1연대가 분투했음을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없다.

 “(북한군) 4보병사단은 동두천 지역에서 완강한 저항을 받고 진격을 정지했다. 2시간에 걸쳐 전투를 실시해도 효과가 없어 사단장은 사단 제2제대를 전투에 투입하는 한편, 1개 특화점 공격조를 동두천 동북쪽 2km의 무명 감제고지를 점령하도록 했다. 특화점 공격조는 전투를 벌여 저녁 8시에 무명고지를 점령했다. 밤 9시 20분쯤 (북한군) 사단 주력은 동두천을 점령했다.”


 또한 군사편찬연구소의 남정옥 박사는 “특히 7사단의 방어 지역은 횡으로 가로지르는 큰 강이 없었다는 점에서 1사단이나 6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어에 어려움이 있는 지형이었다”고 평가한다.

7사단의 포천·동두천 함락은 의정부·서울 함락으로 연결돼 6·25 초전 참패의 연쇄고리를 이루지만 개별적인 상황을 따져 보면 ‘불가항력’ 네 글자로 요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던 것이다.

김병륜 기자   lyuen@dema.mil.kr

 

Comments

민경철(88.11충북) 2010.03.23 14:09
그래서 戰史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몰이해가 되다가 알고 보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게 마련입니다.
손은석(97.05서울) 2010.03.23 14:22
저때는 1, 9, 19연대가 배속되어 있었던 상태였고 그나마 1개 연대는 육본인가 국방부 명령에 의해 전선에서 딴데로 빼 놓은 상태였답니다.

그 힘든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서 적을 막았지만 가장 중요한 쪽수에서 밀리니 후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다수 증언들이 "탱크가 무서워서 피한게 아니라 너무 빨리 내려와서 어이 없어 피했다"고 하더군요.
정유광(03.10경기) 2010.03.25 14:36
6.25 전쟁의 수많은 미스테리~

7사단 책임구역이 가장 핵심지역인데....1개 연대의 부대이동..
휴가자등 출타자 증가...
지휘관급들의 만찬 참여...
당시.. 스파이가 수두루룩~~~

미스테리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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