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영천전투 9일간의 현장 발자취
칠성소식

6·25 영천전투 9일간의 현장 발자취

민경철8811충북 3 1,525 2021.09.04 10:19

[특집] 6·25 영천전투 9일간의 현장 발자취

제71주년 6.25 특집

2021-05-28 오전 11:29:14

1. 역전의 계기 영천 전투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까지 9일간에 걸쳐 영천지구 공방전은 한국전쟁의 국운을 바로 잡은 큰 전투였다. 이미 8.15이전부터 전쟁 준비를 시작한 북한 괴뢰집단은 6월 25일 새벽을 기하여 10개 보병여단과 1개 전차사단으로 불법 기습 남침하여 27일 만에 삼팔선에서 220Km나 되는 대전까지 진격하였으며, 9월 5일에는 드디어 영천까지 침입하게 되었다.

 

적 제2군단장 김무정은, 12사단이 안강선을 돌파하고 경주를 점령하였는데 박동무는 무얼하느라고, 영천을 점령하지 못하느냐고 적 15사단장 박성철을 향해 노기 띤 음성으로 힐책하는가 하면 아군 제2군단장 유재홍 준장은 영천이 무너진다면 적은 대구 또는 경주방면으로 진격 할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낙동강 교두보는 자연 허물어질 것이고, 결국 나라를 잃게 될 것이니 나의 지휘소는 전진은 할지라도 후퇴는 할 수 없으며 결코 촌 토의 땅이라도 적에게 내어 줄 수는 없으니 영천은 꼭 사수하라고 예하 사단에 강력히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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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피차간에 강력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격돌한 영천 전투는 그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적이 영천을 점령하게 된다면 그들의 작전대로 적 15사단이 경주방면으로 진격하여 적 12사단과 합세하였더라면, 동부전선의 아군 제1군단은 여지없이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고, 낙동강 교두보를 구축한 대구 북방의 제1사단, 제6사단의 미군 전선도 후미가 찔려 부득이하게 부산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영천 전투는 6‧25 동란의 기로가 될 만큼 대단히 치열하였으며, 다행히 아군이 승리하여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고 적 사살 3,799명, 포로 309명, 전차 7대 노획, 차량 85대 노획, 화포 14문 노획, 소총 2,327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한편 이 전투에 투입된 병력은 피차간에 15,000명(아군 7개 연대, 적군 5개 연대)이었으며, 화력은 아군이 60mm 포 26문과 57mm 대전차포 6문에 비하여 적군은 76mm 포 38문과 12mm 포 12문 그리고 전차 12대뿐이었다.

 

영천 전투 상황을 일자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9월 4일

 

새벽 1시 입암과 영천 사이의 도로를 따라 적은 3개 방면에서 공격해 왔으며, 아군 제16연대는 임고면 평천동 일대로 후퇴하였고, 아군 제3연대는 측면의 노출로 대환동 일대로 후퇴 하기도 하였다.

 

새벽 2시 사단의 좌 일선인 21연대가 3연대 1대대의 철수로 약간 후퇴하다가 적 2개 대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새벽 3시 적 1개 중대가 우측 공간으로 침투하여 21연대 후방을 위협하므로 연대장 김용배 대령은 연대 예비 대대로 있던 제2연대를 투입하여 교전케 하였다.

 

오전 6시 제2대대는 드디어 고지를 탈환하고 계속 교전하였으며, 제5연대는 저지에서 고립되었다. 또 적의 선봉대가 제16연대, 3연대 1대대를 공격하여왔으며, 이에 21연대도 선천동과 대환동 일대로 후퇴 하였다.

 

오전 8시 15분 적 2개 대대가 전차 3대를 앞세우고 임고면 양항동까지 진출하자 아군 16연대 3연대 1대대는 적의 진출을 저지하며 단포, 언하동까지 후퇴하였다.

 

오전 10시 30분 제8사단의 중앙이 돌파되어 작전 지휘가 곤란하게 되자 8사단을 1군단 휘하에서 2군단으로 배속하게 되었다.

 

오후 12시 30분 제5연대가 상리동에서 적 1개 대대와 치열한 교전 끝에 평천동까지 격퇴시켰으며, 제21연대 역시 적 45연대와 접전 끝에 운산동까지 진격하였다.

 

오후 2시 적 1개 대대 병력이 신기동 일대에 침투하여 21연대의 후방을 차단하고자 하므로 1중대와 9중대가 이를 기습하여 섬멸하고 고지를 점령하였다.

 

오후 4시 제21연대의 지휘소를 선천동에서 대천동으로 이동하고 오산방면에 있는 적을 경계하였다.

 

밤 10시 적 제15사단의 주력부대인 50연대와 56연대가 아군 16연대와 3연대 1대대가 점령하고 있는 단포동과 언하동의 방어선을 뚫고서 망정동까지 침투하여왔다.

 

 

9월 5일

 

제2군단으로부터 공중 정찰 요청을 받은 공 T-6 비행부대는 자양, 자천, 신령 남쪽을 연결하는 선에 적의 주력부대가 점령하고 있음을 2군단에 회신하고 진지에 기관총 사격을 하였다.

 

한편 미공군 전투기를 보현산 남방의 적 보병을 지원하는 야포 진지로 유도하여 F 51-전폭기가 로케트와 기관총으로 소사 하여 이를 파괴하였다.

 

 

9월 6일

 

새벽 3시 아군 대전차 공격대대와 제8연대가 16연대를 지원하여 5시간의 치열한 화력전과 백병전으로 적을 조교동까지 후퇴하게 하였다. 다시 적은 수 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계속 공격을 감행하여 아군 16연대, 8연대, 3연대 1대대, 그리고 대전차 공격대대는 금호강을 넘어 철수하였으며, 제8사단 지휘소는 오수동으로 이동하고 본부중대를 금노동 제방에 배치하였다.

 

오전 7시 적은 영천 읍을 점령하고 남하하였던 일부를 철도 선을 따라서 경주로 진격시켰다. 아군 제8사단장인 이성가 준장은 철수한 부대를 북안에 다 배치하고 적과 대치하였다.

 

오전 7시 30분 미군 전차 1개 소대(전차 5대)와 제1사단 11연대의 전차 엄호부대가 오수동에 도착하여 영천역을 지나 도동까지 진격한 공병대와 공격을 지원하게 되었다.

 

오전 8시 제8사단 9공병대대는 2개 중대를 일선에 배치하고 나머지 1개 중대 및 예비대와 본부중대로 하여 영천 읍내로 진군하게 하여 사단사령부를 탈환하고 영천교를 지나 영천역을 공격하니 적은 완산 뒷산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제7사단 3연대 1대대는 미군 전차 소대의 지원을 받아 영천읍의 적을 격파하고 점령하게 되었다.

 

오전 10시 영천역을 점령한 아군은 40대의 차량과 10문의 포를 노획하였다. 이어 완산동 뒷산으로 쫓겨간 적은 다시 공격을 시도하자 공병대는 이것마저 격파하고 130고지를 점령하자 적은 작산동에 집결하여 아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전차 2대와 대전차포, 차량 등을 인근 과수원에 은폐를 하면서 대기하였다. 그러나 미군 전차 소대의 지원을 받은 공병대는 물밀 듯이 이 일대를 점령하였다.

 

이날 정오 제1사단 11연대는 8사단에 배속 명령을 받고, 금호로 이동하여 주력부대를 유봉산 능선에 배치하였다. 한편 11연대에 배속된 17포병 대대 13포대는 신령에서 원제리로 이동하여 57mm 대전차포 6문을 역시 유봉산에 배치하였다.

 

또한, 제6사단 19연대는 신기동 좌우 능선에 배치시켰다.

 

한편 좌 일선에 배치되어 있던 제21연대와 배속된 18연대 2대대는 화북면 신천동 능선과 임고면 신기동에 이르는 능선에서 고립된 채 적 45연대와 교전하였으나, 적 45연대는 아군 21연대의 공격을 103연대와 73독립 연대에 인계하고 남하하였으나 아군 21연대 1대대의 공격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제56연대의 2개 대대는 적 50연대를 계속 추격하였는데 그중 1개 대대는 영천을 점령할 목적으로 영천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안군 19연대와 좌측에 배치되었던 제2대대가 기습공격을 가해 적을 섬멸시켰다.

 

오후 6시 1사단 12연대 3대대는 신녕에 집결하여 교전 중인 각 부대와 협동하여 합동작전을 실시하였으며, 그 일부가 영천읍을 공격하니 적은 도남동 과수원으로 퇴각하였다.

 

밤 9시 날이 어두워 공병대는 과전동에서 부대를 정리하여 자체 경비를 강화하였으며, 제8사단의 우익에 있던 제5연대 1대대 및 2대대는 적의 중앙 돌파로 고립상태에 빠지자 산악지대를 타고 경주로 철수하였으며, 연대장 최창언 대령은 연대본부 요원과 제3대대 및 제16연대의 일부 병력으로 적중을 돌파하여 영천 읍내로 돌입하였다.

 

같은 시각 금호 원제동 일대에서 병력을 수습한 제16연대 1대대와 2대대는 유봉산 좌측 능선으로 배치되었으며, 제3대대 아군 제21연대 후방으로는 침투하는 적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T-6 비행부대가 출격하여 적 보병부대에 기관 소사를 하다가 1대가 추락하였다.

 

 

9월 7일

 

제8사단 21연대 2대대는 적 103연대의 전면 공격을 받아 후퇴하였다. 그러나 양보 중위가 지휘하는 5중대는 약수탕 북쪽 고지를 점령하였다.

 

새벽 5시 5중대는 적 1개 대대 병력으로부터 안개 속에서 공격을 받았으나, 미리 대비 한 바 있어 적 1개 중대를 섬멸시켰다. 적은 2차, 3차로 공격해 왔으나, 계속 섬멸되자 일부는 투항해 오기까지 했으나, 이 전투에서 적 사살 300명, 포로 98명, 박격포 4문, 기관총 4정, 소화기 2대 차량 분을 노획하였다.

 

그리고 제7사단 3연대는 적이 영천 남쪽 과수원 사이로 침입하자 이를 격퇴 시켰으며, 제6사단 19연대 2대대는 1대대와 3대대 진지 정면으로 적 후방부대가 남하하는 것을 발견하고 집중사격을 가해 차량 30대를 파괴하고 2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고 이어 망정동으로 진격하니 적은 단포 방면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오전 8시 제8사단 16연대 1대대는 제19연대 1대대와 협력하여 망정동의 적 진지로 공격하여 적을 단포 방면으로 퇴각시켰다.

 

이날 정오 1사단 휘하의 11연대는 금노동 방방에서 남진하는 적을 기습하기 위해 제17포병대 13포대의 화력을 지원받아 유봉산에서 금호강을 건너 금노동과 작산동 방면으로 진격하였으나, 적 45연대 조교동에서 철도 변을 따라 좌, 우측에서 정신없이 공격해 오는 바람에 아군은 약간 후퇴하여 정비했으나, 적은 다시 야음을 이용해 포위 공격을 가해 왔다.

 

 

9월 8일

 

8사단 21연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대환동 후방 능선에 적 73연대 주력이 공격해 왔으나 강력한 반격으로 퇴각시켰다.

 

오전 6시 적 45연대는 2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포병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영천읍을 향해 대의동으로부터 1개 대대의 병력이 진격해 왔으며, 또한 1개 대대 병력은 아군 1사단 11연대 휘하 2대대와 3대대에 관한 포위망을 압축시켜 왔다.

 

오전 8시 제7사단 5연대는 임포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적 15사단을 섬멸하기 위한 포위망을 더욱 확고히 했으며, 제8사단 16연대는 19연대에 망정동 부근의 진지를 인계하고 유봉산으로 철수하였다.

 

오전 8시 30분 제6사단 19연대 2대대는 영천읍을 향하여 계속 남진 14시에 영천을 침입한 적을 섬멸하고 재차 탈환하였으며, 제1대대는 망정동을 공격하여 적 15사단 전방 지휘소를 기습 점령하고 적은 북쪽으로 퇴각했다. 또한, 2대대의 공격을 받고 대환동 쪽으로 격퇴당한 적은 재차 반격을 가해 왔으나, 1대대와 3대대의 역포위 작전에 말려 섬멸되었다.

 

오후 3시 제2대대는 도남동 일대의 논으로, 제3대대는 도동 능선으로 돌파구를 타개하여 탈출 성공하였으나, 많은 희생자를 발생하게 되었다.

 

오후 6시 30분 아군 5연대에 저지당한 적이 채약산으로 침투하여 아군을 양분하려고 기도 하였고, 또한,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이 대구로 진출 하려고 하자 제7사단 8연대는 대창동으로 진지를 옮기고, 주력부대는 채약산으로 진격하여 적을 퇴각시키는데 성공 했다. 한편 제8사단 10연대는 형산강 선의 병력을 경주를 경유 하여 영천으로 전진하였다.

 

 

9월 9일

 

6사단 19연대는 전날 점령한 망정동 고지에 적이 재차 공격해 오자 이를 격퇴하고 1대대는 야사동까지 진격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며, 2대대는 영천방면에서 퇴각하는 적을 섬멸키 위해 요지마다 잠복하였다.

 

오전 8시 30분 제1사단 11연대는 관정동에서 부대를 재차 수습하고 구암동 일대에 있는 적을 격파하고 오후 1시에는 유하동 서쪽 고지의 적을 격파하였다. 한편, 제17포병 대대 13포대는 6문으로 포로 금노동과 유하동, 채신동 및 송포동을 집중포격하여 적의 대구 진격의 망상을 포기하게 하였다.

 

오전 11시 30분 도계리에 도착한 제8사단 10연대는 제26연대 3대대와 임무를 교대하여 건천 아화 방면으로 전진한 다음 제5연대 좌측에서 영천방면으로 퇴각하는 적의 배후를 공격하며, 퇴각하는 적을 계속 추격하였다.

 

한편, 제7사단 5연대는 1대대와 2대대가 제17, 18포병 대대의 지원과 공군의 지원을 받아 적 보병을 지원 중인 15사단 포병연대를 기습 격멸하였으며, 차량 50대, 야포 10문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또한, 8사단 16연대는 금호강을 건너 작산동을 점거하고, 1중대는 가산동 고지를 공격하다가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딛쳐서 아군 60명이 사망하였다. 이때 적은 기관총 사수의 발목에 쇠고랑을 묶어 후퇴하지 못하도록 만들 만큼 잔인성의 백일하에 드러났다.

 

오후 2시 30분 제7사단 8연대는 11연대와 합세하여 채약산으로 진격 괴연동을 거쳐 유상동으로 진출하여 경주 사이의 도로 남쪽에 침입한 적을 무찌르고 진지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밤 12시 적은 중대 병력으로 재차 공격해 왔으므로 1중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9월 10일

 

제8사단 21연대는 약수탕에서 자천동을 거쳐 대환동에 이르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이때 적의 전차 1대가 북상하므로 10시 30분 김재의 상사가 36인치 로케트 포로 격파하고 5명을 생포하였다. 포로 된 인민군의 호주머니에서 적 15사단장이 적 2군단장에게 보내는 증원부대의 요청문서가 발견되었다.

 

제8사단 10연대는 제5연대의 좌측 방향에서 임포동에 있는 적을 공격하고 새벽 3시 40분에 적 567연대 일부가 영천방면으로 퇴각하자 계속 추격하다가 군단 작전 명령에 따라 대환동으로 이동하였다.

 

제6사단 19연대의 조직적인 반격을 받게 된 적은 고천동과 우항동 일대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한편, 16연대의 끈질긴 추격을 받은 적은 단포동과 조교동에 집결하여 동북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제8사단 16연대는 완산동과 작산동에서 진격 준비를 완료하고 새벽 4시 총 반격전을 개시하여 완산동 뒷산과 대의동까지 진격하였다.

 

제7사단 8연대는 유상동의 고지를 확보하고 제1대대는 내포동 서북쪽까지 점령하고 제2대대는 내포동 북쪽 능선을 점령하였다. 한편, 11연대는 지휘소를 대창에서 임포동으로 이동하고 대의동 3Km까지 진격하였으나 군단 명에 의하여 금호로 이동하고 8연대가 이를 접수하여 제5연대와 긴밀한 연락을 계속 진격하였다.

 

전일 임포동에서 적 포대를 섬멸한 제7사단 5연대는 제10연대와 같이 임포동의 적을 섬멸하고 적 제58연대 본부를 공격하여 전차 2대를 격파하고 5일 동안이나 막혔던 영천과 경주간의 보급로를 개통하였다.

 

  

9월 11일

 

제8사단 21연대는 10연대가 대환동 쪽으로 이동해 오자 진지 일부를 10연대에 일임하고 계속 교전을 벌여 선천동 북쪽 능선에서 월곡동까지 진격하였다.

 

제8사단 10연대는 21연대와 19연대 사이에 배치되어 신기동 일대의 적 잔류병을 공격하고 평천동 선원동을 거쳐 운천동까지 진출하고 일부 병력은 고천동으로 퇴각하는 적을 소탕하였다.

 

제6사단 19연대는 오전 8시 신기동의 적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적을 조교동 부근에서 제5연대 3대대와 협공하여 북으로 퇴각시키고 10연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추곡동으로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여 소탕하였다.

 

제8사단 16연대는 단포동 오른쪽 2km 지점까지 진격하고 제5연대 3대대는 원대로 복귀하여 그 지역과 19연대 정면까지 인수하였다. 또한, 2대대는 조교동 전선에서 적 2개 대대와 용전 분투하였다.

 

제7사단 8연대는 오류동 북방 일대의 적 1개 대대를 격파하고 고경면 삼귀동 일대를 점령하였다.

 

제7사단 15연대는 연대 지휘소를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도계리에서 이동하여 퇴각하는 적을 관산까지 추격하여 이 일대를 탈환하였다.

 

 

9월 12일

 

제8사단 21연대는 퇴각하는 적을 구전동, 자천동 북방까지 추격하여 부대를 정비하고 본격적인 진격 태세를 갖추었다.

 

제8사단 10연대 2대대는 용화동 북쪽 고지에서 적과 백병전을 전개하였으며, 제3대대는 삼매동 서남쪽 고지의 적을 격멸하였다.

 

제6사단 19연대는 영천으로 철수하여 군단 예비로 대기 있다가 용평동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원대 복귀하였다.

 

제7사단 8연대는 동도동과 해선동에 집결한 적 1개 대대가 정면으로 공격해 왔으나, 연대 뒤를 따르던 공격 부대가 적의 측면으로 포위태세를 갖추자 적은 곧 퇴각하였다.

 

제7사단 15연대는 기계와 안강 방면으로 후퇴하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고경면 덕암동에서 2km 지점인 무학산 부근의 적을 섬멸하고 다시 기계방면으로 퇴각하는 적도 압축하여 격파하였다.

 

 

*정리=6·25참전유공자회 영천시지회

         사무국장 유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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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손은석9705서울 2021.09.04 13:09
영천은 대구 동쪽이라 점령당하면 대구가 고립되어 부산도 위험해집니다.
민경철8811충북 2021.09.17 21:55
아! 그렇군요. 아주 중요한 지역이지요
손은석9705서울 2021.09.18 00:21
그때 당시 대구와 부산은 경부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영천이 뚫리면 경산으로 해서 대구가 위태롭게 되고 부산에서 물자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대구지역 유엔군과 국군도 고립되고 진짜로 부산만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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