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자
칠성소식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자

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16)

이서인 시인(여자 정훈장교 1기)
며칠 전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진로지도 특강을 하고 왔다. 진로지도는 졸업생 중에서 전문 직업을 가진 선배를 초청하여 학생들에게 해당 직업을 소개하고 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역 장교로 근무할 때는 군복을 입고서 가끔 특강을 하기도 했는데 제복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는지 그야말로 인기 ‘짱’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 중이라 학생들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강의를 듣다 보니 예전처럼 열띤 환호성도 호응도 기대할 수 없었다.

나도 마스크를 쓴 채 강의를 하다 보니 호흡도 힘들고 마스크도 자꾸 코밑으로 내려가서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경험을 해보니 하루종일 마스크를 쓴 상태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최초로 건립된 ‘여학도병 명비’

나의 모교인 춘천여고 교정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현충시설이 있다. 2016년 7월 7일 제막된 ‘춘천여고 학도병 명비’가 바로 그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춘천여고 13회, 14회생으로 1,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 9명은 학도병을 자원하여 정훈공작대원과 간호, 전투 참전 및 지원 활동을 하며 전장 곳곳을 누볐다.

류홍예, 정기숙 학생은 국군 제7사단 정훈공작대원으로 압록강까지 북진하며 북한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펼쳤다. 함명숙 학생은 6사단에 소속되어 군인들을 간병하는 업무에 투입되었으며, 어성례 학생은 국군 2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적과 싸우는 등 우리 국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춘천여고 학도병의 업적을 기리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6·25전쟁이 발발한지 66년 만에 전국 최초로 여학도병 현충비가 교정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명비에는 위의 4명을 포함하여 김태희, 박유신, 황희숙 등 총 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원순, 유계욱 학생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참으로 자랑스러운 동문 선배들이다.

연순, 기숙이 참전유공자 훈장을 숨긴 이유

이렇게 자랑스러운 동문 선배들의 6·25전쟁 참전사가 뒤늦게서야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6월 6일 현충일 특집으로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연순, 기숙’은 춘천여고 출신 여자의용군과 여학도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할머니는 그동안 국가유공자 훈장과 명패를 장롱 깊숙이 묻어놓고 한평생 자녀에게조차 참전했다는 사실을 숨겨왔다.

송연순 할머니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여군이라고 하면 ‘기가 센’ 여자, ‘발랑 까진’ 여자라는 편견과 더불어 군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거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도 여군이라는 점 때문에 시댁 어른들께 흠이 잡혔는데 이후 누구에게도 여군이었다는 것을 말 안했어요.”

할머니가 찾아 나선 기억 속의 6사단 전우인 고(故) 곽복순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한 달 보름 전에야 참전유공자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자녀들에게 여군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송연순 할머니가 참전 사실에 대해 입을 닫은 이유는 한마디로 여군에 대한 세상의 편견 때문이었다.

6·25전쟁 당시 2400여 명의 여군이 스스로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했고 이후 71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현재 여군의 숫자는 2021년 기준 1만 3000여 명이고 최고위 계급으로는 2019년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에 강선영 소장이 보직된 사례가 있다. 양적인 성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여군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모두 사라졌을까?

군인은 군기와 사기를 먹고산다 
    
국방부는 지난 3월 발생한 공군 여군 부사관 강제 성추행으로 인한 사망사건의 중간 수사결과 공군 창설 이래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47명에 대하여 수사 및 인사조치가 단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뿐 아니라 해군과 육군에서도 2017년, 2013년에 성추행을 당한 여군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모님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수없이 다짐했던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을 포기한 채 이들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2019년 국방부의 군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군 간부 설문 대상자 중 11.4%가 1년간 성희롱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조사 때 8.4%보다 오히려 늘어난 수치이다. 피해 경험을 신고한 비율은 32.7%에 그쳤다. 미신고 응답자들의 44%가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고 미신고 이유에 대해 답했다.

군인은 군기와 사기를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남녀를 불문하고 군대 내의 성폭력 사건은 바로 이러한 군기와 사기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내부의 적인 것이다.

성폭력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첫째, 양성교육 기관에서부터 계급별 보수교육 과정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양성평등 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성고충상담관을 확충해야 한다.

둘째, 성폭력 범죄 발생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상급부대 보고 등 후속 조치를 강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기본적인 처벌 수위를 높이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를 회유·협박하거나 사건을 은폐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성폭력 수사단계에서부터 민간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투명성을 보장하고 피해자 편에서 다양한 법적, 정신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후 언론과 국민의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할 때다.

출처 : 공생공사닷컴(http://www.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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