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위해 순직한 중대장 29년째 추모
칠성소식

부하 위해 순직한 중대장 29년째 추모

(화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백암산 패밀리를 아십니까"

비무장지대(DMZ) 지뢰제거 작전 중 몸을 던져 부대원을 구하고 전사한 중대장을 29년째 추모하는 부하들이 있다.

이들은 강원도 화천군 중부전선 최전방 고지인 백암산 기슭에서 군대생활을 한 전역자들로 지뢰제거 작업을 하다 부하를 대신해 순직한 중대장 정경화(당시 29살) 소령을 기리는 사람들이다.

1977년 6월 21일 오전 백암산 자락에 위치한 부대를 맡고 있었던 정 중대장은 DMZ에서 중대원 22명과 지뢰제거 작업을 벌이던 중 안전핀이 부식돼 폭발하는 지뢰를 자신의 몸으로 덮치며 장렬하게 순직했다.

당시 지뢰작업은 중대원들이 탐지기로 발견하면 대원들을 대피시킨 뒤 중대장이 직접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 데 23번째 지뢰를 제거하던 중 "피하라"는 한마디 말과 함께 사고를 당한 것이다.

훈련장에서는 호랑이처럼 엄했으나 내무반에서는 맏형 같았던 중대장을 잊지 못했던 중대원들은 전역 뒤 국립묘지를 찾으면서 하나, 둘씩 다시 만나 옛 중대의 이름을 따 `맹호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정 중대장이 순직하던 당시 일병으로 근무하던 정문식(52.현 백암산 패밀리 회장)씨가 중대장과의 병영생활 인연을 담은 `백암산 접동새'라는 책을 발간하고 이 판매 대금으로 1988년 12월 18일 중대장이 생활하던 백암산 기슭에 마침내 그의 이름을 딴 경화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우게 됐다.

동상 제막 뒤 회원이 늘어나자 백암산 패밀리로 명칭을 바꾼 이들은 뒤늦게 중대장의 죽음이 `안전 사고사'로 잘못 처리돼 있는 점을 발견하고 국방부 등에 사건의 재조사를 줄기차게 요구, 순국 15년 만인 1992년 `작전 도중 부하를 위한 희생'으로 인정받아 소령으로 일계급 특진(추서 진급)을 시켰다.

백암산 패밀리는 정 중대장의 얼굴마저 모른 채 경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겨울철 언 땅을 팠던 후배 장병 등 이 중대에서 근무했던 전역자들이 회원으로 모여들어 7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국가와 군대 동기마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하고 지내던 정 중대장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부하들에 의해 시작된 추모행사는 2001년부터 칠성부대 주관으로 정례화되기에 이르렀다.

올 현충일에도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중대장을 찾았던 이들은 29살의 나이로 산화한 중대장의 29주기를 맞는 22일 경화공원을 찾아 추도식을 갖고 백암산 장병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정 중대장이 순직한 날은 21일이지만 현지 사정으로 올해 추모식은 하루 연기됐다.

당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박노영(53.강원도교육청)씨는 "중대장의 인품이 남다르지 않았다면 사회생활하기에도 바쁜데 누가 돈을 들여 추모행사를 갖겠느냐"면서 "훈련할 때는 엄했지만 내무반에서는 집안 형님 같았던 중대장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중대장은 부하들에게 맡길 수도 있는 위험한 지뢰 제거작업을 꼭 자신이 직접했다"면서 "군 고위직에 오른 동기마저 관심을 갖지 못했던 상황에서 부하들이 나서 진상조사를 요구, 특진시킨 경우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처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dmz@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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