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중동부전선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GP장으로 근무할 때였어. 아마 초가을 오후였던 것 같아. 산모퉁이를 돌아 순찰하는데 잡초가 우거진 양지바른 곳에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지. 순간 그 이름 모를 무덤이 아마 전쟁 당시 내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
6월의 노래이자 국민 가곡인 ‘비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돌무덤을 보면서 이런 비극이 또다시 생겨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려면 조국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형식과 말만 앞섰지 정말로 그분들을 위해 가슴 깊이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이미시문화서원에서 만난 ‘비목’의 작사가 한명희(73) 선생은 이렇게 말하며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비목’은 전쟁의 비극, 그 때문에 더욱 간절한 향수가 서정적으로 잘 표현돼 있어 우리나라 6월의 대표 노래로 꼽힌다.
최전방 순찰 중 이름 모를 돌무덤을 발견한 청년 장교, 6·25전쟁으로 죽어 간 무덤의 주인을 생각하며 그 기억을 살려 훗날 지은 노랫말, 그리고 노랫말에 곡을 붙인 작곡가 장일남. 이렇게 ‘비목’은 가곡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비목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유는 노래가 좋아서라기보다 노랫말의 배경이 된 6·25전쟁 때문이지. 그 커다란 상처를 살짝 건드려 준거야. 거기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고 유행한 것으로 생각해.”
한 선생은 이 같은 사연을 기리기 위해 1996년부터 10년간 ‘비목’의 발상지인 백암산 가는 길목, 평화의 댐 인근 비목공원에서 현충일 오후 3시에 ‘비목문화제’를 가져왔다. 행사는 한 선생을 주축으로 비목마을 사람들과 화천군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참여해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국내 유일의 호국문화제로 사랑받았지. 이 땅을 위해 산화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 뜻을 기리자는 의미에서 출발했고, 화천에서 열 번을 연 후 지금은 이곳 이미시문화서원에서 참전용사도 초빙하고 시 낭송과 진혼제 등으로 조촐하게 이어오고 있어.”
이곳에선 주민을 대상으로 한 한문·서예·동화구연 등 강좌가 열리는가 하면 문화계 인사들을 초빙해 시 낭송과 음악회도 갖고 있다. 또 선비정신 선양과 풍류문화의 중흥을 좌표로 삼아 전통의 향기와 문화를 공유하며 현대인의 삶을 좀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선생이 유명해진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비목’ 때문이다. 국립국악원 원장·서울시립대 교수·한-중앙아시아문화예술교류회장 등 걸출한 간판을 달고 있었음에도 일반인들에게 이름 석 자를 대면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가곡 ‘비목’ 작사가 하면 모두가 ‘아하, 그분’하고 끄덕인다. 문득 선생의 군대 시절이 궁금해졌다.
“1964~66년까지 DMZ에서 근무했었지. 학군장교 2기로 소위 계급장을 달고 말이야. 올해가 벌써 학군장교 50주년이라니 감회가 새로워. 당시만 해도 곳곳에 전쟁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어. 산비탈에는 수통과 탄피·철모가 나뒹굴었고 화목용 땔감을 구하다 보면 파편투성이였지. 채소를 심으려고 삽질이라도 할라치면 유골이 나오기도 했고. 전쟁은 이렇게 이 땅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지.”
그래서 선생은 문학과 음악·다큐멘터리·사진·편지 등 전쟁 자료들을 한데 모아 6·25 문화단지를 조성해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승화시켜 국민적 발전의 에너지로 확대하고자 하는 마지막 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2005년 강영훈 전 국무총리, 조성태 전 국방부장관, 서경석 예비역 중장(현 주동티모르 대사), 김후란 시인 등 각계 30여 명이 모여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으나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 국민 모두가 6·25 희생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거지. 그러니 이런 종합 문화단지 하나쯤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야. 보은의 의미로 ‘100만 명, 1만 원 모금운동’을 열어 부지라도 확보해 놓는 것이 급선무야. 그래서 모금운동을 시작했고.” 적잖은 연세임에도 선생의 의지는 강해 보였고, 그 비전은 젊은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마지막으로 장병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선생은 “지금은 평균 수명이 늘어 80~90살까지 사는 세상인데 군대 2년은 얼마 안 되는 시간이잖아. 그 시간을 피하려고 하면 안 되지. 전국의 여러 개성이 어울려 공통된 상식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상무정신을 익히고 그것이 모여 국운 상승의 계기를 이룰 수 있는 곳이 군대야. 배우고 익히고 깨달을 수 있는 곳이지. 그러니 군대문화를 선양하고 재정립해서 장점을 많이 부각시켜야 해. 누구나 먼저 군대 가려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