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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위기를 기회로…세계 하늘길 개척한 뚝심의 기업인

한예경,전경운 기자
한예경,전경운 기자
입력 : 
2019-04-08 17:51:55
수정 : 
2019-04-08 23: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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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보국 45년` 하늘로 떠나다

美 유학중 귀국해 軍 자원입대
74년 입사…정비등 두루 경험
외환위기때 항공기 팔아 극복
45년동안 비행기 166대로 늘려

평창올림픽 유치 등 국위선양
`항공계유엔` IATA서 핵심역할
◆ 조양호 회장 별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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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대한항공에 처음 몸담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45년간 선대에 이어 '수송보국'을 실천하며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냈다. 이를 통해 한국 항공산업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진그룹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은 미국 유학 중 귀국해 1970년 8월 군에 자원 입대했다. 당시 강원도 화천에 있는 육군 제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며 철책을 지켰다. 조 회장은 군 복무 중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간 꾸이년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는 1973년 7월 병장 만기 전역까지 36개월을 복무했다. 이후 1975년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조 회장은 1979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에는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항공 실무를 두루 거쳤다. 이후 1992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라 그룹 경영을 책임졌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을 맡는 동안 큰 위기가 수차례 찾아왔지만 조 회장은 위기를 기회의 순간으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자체 소유 항공기를 매각한 후 재임차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1998년 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조 회장은 이라크전쟁, 9·11테러 등 여파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됐던 2003년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구매계약을 맺었다. 이 항공기들은 모두 대한항공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했다. 2000년 들어 세계 항공업계가 무한 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할 때 항공 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해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 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 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LCC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조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해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해 한국 항공 시장 수요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가 166대로 증가했다. 일본 3개 도시에만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조 회장은 한국 항공산업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 왔다.

조 회장은 '항공업계의 유엔'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 역할을 맡으며 한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 왔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 최고 정책심의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2014년부터는 집행위원 31명 가운데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역임해 왔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올해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성과를 이뤘음에도 이를 보지 못하고 영면에 들게 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는 전 세계 항공산업의 중요 정책 결정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조 회장의 IATA에서 위상이 올해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2010년대 들어 미국 항공사와 일본 항공사들이 잇달아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한국 항공사의 환승 경쟁력이 떨어지자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를 추진해 해법을 찾았다. 이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으로 시너지 효과가 나면서 국내 공항의 환승 경쟁력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조 회장은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했다. 조 회장은 한불 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관계 증진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2005년에는 몽골로부터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 회장은 몽골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몽골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주역도 조 회장이었다. 조 회장은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개최의 숨은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이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로 선정된 이후 그룹 차원에서도 국가 올림픽 행사 유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 회장이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을 돌며 64만㎞(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이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10명 중 100명을 만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조 회장은 2012년 1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한 바 있다.

[한예경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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