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심정으로 어깨 수술도 미루고 현역병 입대했던 김사율

-‘포병부대’에서 군생활하며 온몸으로 느낀 야구의 소중함

-“현역병 입대가 곧 커리어 단절을 의미하진 않아. 자기하기 나름이다”

-“군 복무와 야구를 병행할 수 있는 상무, 경찰야구단은 존속했으면”

-“500경기 등판은, 프로야구 인생 20년을 함축한 숫자”

'칠성 부대' 출신 야구선수, KT 위즈 김사율. 그에게 만기 제대는 프로야구에서 이룬 어떤 업적보다도 자랑스러운 기억이다(사진=KT)
'칠성 부대' 출신 야구선수, KT 위즈 김사율. 그에게 만기 제대는 프로야구에서 이룬 어떤 업적보다도 자랑스러운 기억이다(사진=KT)

[엠스플뉴스]

‘병역’은 대한민국 남성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야구선수도 마찬가지다.

물론 야구선수에겐 국군체육부대(상무)나 경찰야구단에서 야구를 지속하면서도 병역을 이행할 기회가 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특례'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야구선수가 군·경 팀에 입단하고, 동메달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건 아니다.

종종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야구선수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KT 위즈 우완 투수 김사율은 현역병으로 입대해 야구계로 돌아온 케이스다. 김사율은 7사단 포병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서 만기 전역했다.

'병역 혜택 논란'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김사율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사율은 여러 번 인터뷰를 고사했다. "후배들이 난처한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야구선수들이 병역혜택만 바라는 무책임한 사람들로 비칠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에 결국 인터뷰에 응했다. 김사율은 "내 얘기는 나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전제하며 담담히 자신의 경험담을 밝혔다.

“어깨 수술로 현역병 제외될 수 있었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현역병 입대 결심”

2004년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던 김사율은 '병풍 사건'에 연루됐다. 김사율은 '속죄의 마음'으로 현역 입대를 결정했다. '병풍 사건'은 여전히 김사율 마음의 큰 짐으로 남아 있다(사진=엠스플뉴스)
2004년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던 김사율은 '병풍 사건'에 연루됐다. 김사율은 '속죄의 마음'으로 현역 입대를 결정했다. '병풍 사건'은 여전히 김사율 마음의 큰 짐으로 남아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현역으로 입대해 ‘병역 의무’를 이행했습니다.

2004년이었죠. 야구계에 '병풍 사건'이 터졌어요. 저도 연루가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당시 전 ‘어깨 수술’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 판정이 예상됐죠. 하지만, 다시 당당하지 못한 행동을 하긴 싫었어요. 그래 속죄의 마음으로 현역병 입대를 결심했습니다.

어깨 수술을 받았으면 다른 선수들처럼 사회복무요원으로 편입됐을 텐데요. 어깨 수술을 받고서 현역병으로 입대한 겁니까.

아예 (어깨) 수술을 받지 않았어요. 수술하면 현역으로 못 가니까.

야구선수로선 쉽지 않은 결정인데요.

정말 눈 '딱' 감고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좋지 않은 어깨를 회복할 '기회'라고 생각했죠. ‘특공대 출신’ 친형이 해준 조언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무슨 조언이었습니까.

현역병으로 가도, 의지만 있으면 다시 야구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조언이었어요. 형은 처음부터 어설프게 현역 안 가고서 시간 보내는 것보다, 군에서 정신무장을 다시 하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형 말 듣고, 결심했습니다. ‘열외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군 복무를 마치자’고요.

훈련소 들어갈 때, 후회하진 않았습니까.

(고갤 저으며) 전혀요. 이등병, 일병 시절엔 야구를 완전히 잊고 살았어요(웃음). 상병 되고서부터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일과 후 하루 3시간씩 몸을 만들고, 공을 던졌어요. 절치부심했죠.

‘우동 한 그릇’보다 짠내나는 이야기, 김사율의 ‘야구공 한 박스’

김사율은 군생활을 통해 '야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사진=KT, 7사단)
김사율은 군생활을 통해 '야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사진=KT, 7사단)

7사단이면 최전방입니다.

맞아요. 그때만 해도 부상, 부진으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했어요. '군에서라도 최전방에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 같은 게 생기더군요(웃음). 7사단에선 포병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최전방엔 7톤 무게를 자랑하는 포가 있어요. 혹시 아시나요?

전 장교로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연히 알지요. 혹시 그 포를 직접 다룬 겁니까.

아니요. 전 그 포를 나르는 5톤 트럭 운전병이었습니다(웃음). 저 나름대론 사명감을 갖고, 진지하게 임무를 수행했어요.

보직 설명을 듣고 보니, 남다른 ‘군생활 에피소드’가 있을 듯합니다.

군생활 에피소드요?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전투가 아닌 야구 관련 이야기에요(웃음).

운전병의 야구 이야기라, 궁금한데요.

상병 계급장 달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할 때에요. ‘ITP’라는 게 있어요. 군대 용어가 아니라, 야구 용어입니다(웃음). 부상당한 투수들이 소화하는 재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죠. 10m 캐치볼부터 80m 롱토스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훈련입니다.

ITP를 잘 진행하려면 공을 받아줄 파트너가 필요했을 텐데요.

맞습니다. 후임으로 들어온 '박재우'란 친구가 있었어요. 제겐 그야말로 ‘은인’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야구선수 출신이 아니거든요. 송구 거리가 50m가 넘어가니, 노바운드 송구를 못하더라고요.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군인' 김사율의 보물 1호는 야구공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군인' 김사율의 보물 1호는 야구공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어떤?

제가 부대에 가져온 야구공이 한 박스(12개)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야구공이 바닥에 튀기면, 금방 낡아버리거든요. 공이 바닥에 긁힐 때마다 제 마음이 긁히는 듯했습니다(웃음). 그래 특단의 조치로 후임병 (박)재우는 공을 받기만 하고, 전 공을 던지기만 했어요. 공 12개를 다 던지면, 제가 재우한테 뛰어가 다시 공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게 3시간 동안 열심히 공을 던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밌는 추억입니다(웃음).

추억도 추억이지만,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 느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야구공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야구공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니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지더군요. 네, 야구선수로서 초심이 싹튼 겁니다.

야구선수로서의 초심이라.

진심으로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에서 보낸 2년은 제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왜 야구를 잘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군대에서 바뀐 마음가짐, 야구 인생을 통째로 바꿨다"

김사율이 '알짜배기 불펜투수'로 거듭난 비결 중 하나는 '군생활'이었다. 2018년 9월 10일 기준 김사율의 통산 성적(사진=KT)
김사율이 '알짜배기 불펜투수'로 거듭난 비결 중 하나는 '군생활'이었다. 2018년 9월 10일 기준 김사율의 통산 성적(사진=KT)


2007년 ‘포병 김사율’이 ‘투수 김사율’로 돌아왔습니다. 포를 나르던 군인이 상대 타선의 대포를 막는 투수로 변신한 건데요.

군에 다녀온 뒤 마운드에 오르는 마음가짐이 확실히 달라졌어요. 입대 전만 해도 전 늘 수세에 몰리던 투수였습니다. 한 마디로 타자와의 승부를 피하는 스타일이었죠.

군에 다녀와선 변했습니까.

군생활 하면서, 침상에 누워 수천 번 같은 생각을 했어요. 야구를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공격적으로 승부하자고요. 그 마음가짐 하나가 제 야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놨습니다. 군생활이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음.

유니폼을 계속 입고 있었으면, '마음을 달리 먹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시즌을 치를 땐 혼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군에서 배웠습니다.

그야말로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이었군요.

정신 건강뿐인가요(웃음).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입대 전에 아팠던 어깨가 전역 뒤엔 한 번도 고장나지 않았어요. 여전히 제 어깨는 쌩쌩합니다.

"내게 현역병의 추억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 500경기 등판에 도전하는 마음도 군에서 배운 자신감이 바탕. 상무, 경찰야구단이 존속해 후배들은 군 복무와 야구를 병행했으면"

김사율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 김사율은 오늘도 달린다(사진=KT)
김사율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 김사율은 오늘도 달린다(사진=KT)

경찰야구단이 폐지 수순을 밟는 가운데, 상무야구단 역시 선수 선발 인원을 감축하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김사율처럼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야구선수가 더 많아질 걸로 봅니다. 현역으로 입대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현역으로 입대하면, 운동을 못한다, 실전 감각이 떨어진다. 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모두 자기하기에 달렸습니다. 오히려 군대에선 자신을 되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그렇군요.

KBO리그에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선수가 적지 않습니다. LG 트윈스 김용의, 채은성이 대표적이죠. 롯데 자이언츠 박시영도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역 입대가 곧 커리어 단절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봐요. 다만, 군 복무와 야구를 병행할 수 있는 상무와 경찰야구단이 계속 존속했으면 해요. 상무, 경찰야구단 소속 선수들 보면 군생활 열심히 하면서 야구도 정말 열심히 합니다.

마지막 질문하겠습니다. 김사율에게 '군대'란(웃음)?

‘위기를 극복하는 힘’입니다. 어느덧 전역한 뒤 12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어요. 야구가 잘 풀리지 않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군에 있던 시간을 떠올리죠. 그리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칩니다(웃음).

2년의 군생활이 선수 생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당연합니다. 제겐 정말 소중했던 2년이었어요. 아직도 해마다 복무했던 부대 앞을 찾아갑니다.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죠. 그 마음가짐,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9월 10일 기준 개인 통산 491경기에 등판했습니다. 이제 9경기만 더 등판하면 통산 500경기 등판을 달성하게 됩니다. 올 시즌 이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500경기 등판이 다른 선수들에겐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겐 정말 큰 의미가 있어요. 1999년 프로 1군 무대를 밟고서 2018년까지 2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그 20년의 프로야구 인생을 함축하는 숫자가 제겐 '500'입니다. 군에서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바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팀에 기여하면서 500경기 등판 기록을 달성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동섭 기자 dinoegg509@mbcplus.com

오늘의 기사 : [엠스플 기획] 신인 2차 지명 예상 최종판, ‘국외파-야수 강세’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29&aid=0000026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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