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비호산지구 전투
칠성은

개천-비호산지구 전투

칠성관리자 0 12,805 2007.05.01 11:46

● 전투시기 : 1950.11.1-11.7
● 전투지역 : 평남 개천, 비호산
● 주요지휘관 : 신상철 준장, 이기건 대령, 박준호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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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천-비호산지구 전투의 개요

서부전선에서 진격하던 아군은 중공군에 의해 진격이 막히면서 침공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아군 7사단(사단장 준장 신상철)은 개천-비호산지구에서 수적으로 압도적인 중공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 끝에 공격과 방어, 후퇴를 반복하였으며, 방어에 성공한 아군은 공격 진로를 바꾼 적에 맞서 일전을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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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천-비호산지구 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제 2군단장 소장 유재흥
제 7사단장 준장 신상철
제 3연대장 대령 이기건
제 1대대장 소령 박준호
제 2대대장 소령 이재기
제 3대대장 소령 최창환(11월 2일까지)
소령 임춘발(11월 3일부터)
제 5연대장 대령 박승일
제 1대대장 소령 정육지
제 2대대장 소령 신건선
제 3대대장 소령 김상봉
제 8연대장 대령 김용주
제 1대대장 소령 양인석
제 2대대장 소령 고한조
제 3대대장 소령 박관영
배속부대
포병 제 18대대장 중령 박정호
병력 : 약 10,000명
장비 : 사단 T/E에 약 90%

*적군
중공 제 38군장 송상근
제 112사단장 강옹휘
제 113 사단장 당청산
제 114사단장 적중유
병력 : 각 사단 약 10,000명
장비 : 125mm 및 160mm 곡사포,
82mm 및 120mm 박격포,
기관총, 소총

3. 개천-비호산지구 전투의 진행과정

가. 전투 전의 개황

당시 서부전선의 전황을 살펴보면 제 2군단은 그 예하에 초산에 돌진한 제 6사단(사단장 준장 김종갑)이 철수하여 온정리에서, 그 우측에 희천간을 제 8사단(사단장 준장 이성가)이 각각 담당하고 침공한 적과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이때에 적은 온정리지역을 돌파코자 전력을 다하였으므로 희천을 방어하던 제 8사단의 일부 병력마저 10월 28일에 이곳으로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 제 1군단(군단장 소장 프랜크 밀번(Frank W. Milburn))은 구성-선천지역에서 전투를 하고 있으니 서부전선은 희천-온정리-구성-선천을 연한 선으로 형성되었으나 희천지역에 공백지대가 생겨서 적의 진로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전황이 급변되어 미 제 8군의 동측방이 적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미 제 8군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희천에서 침공하는 적에 대처하여 제 7사단을 개천-희천간의 도로를 경계토록 지시한 다음 제 2군단의 전력을 강화하여 전선을 보강토록 동 사단을 미 제 1군단에서 한국군 제 2군단으로 배속을 변경하였다. 따라서 사단은 10월 29일 영변지역에서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제 3, 제 8연대는 구장동으로 전진한 다음 제 3연대는 신흥리(구장동 동북쪽 8km)를, 제 8연대(-)는 용등동(구장동 남동쪽 3km)을 각각 점령하였으며(제 8연대의 1대대는 평상시 경계 중), 제 5연대는 개천으로 이동하였고, 포병 제 18대대 및 사단 사령부는 개천에 있었다. 그 뒤에 제 2군단의 작전지휘를 받게 됨에 따라 사단은 10월 31일 도로경계임무를 미 제 2사단에 인계하고 차기 작전을 대기 중이었다.

나. 작전계획

제 2군단(군단장 소장 유재흥)은 당면한 임무를 수행할 작전계획으로서 첫째로, 적의 압력과 전황을 고려할 때 군단의 주저항선을 덕천-구장동-운산을 연한 선으로 하여 이 선에서 침공하는 적을 포착, 격멸한 다음에 반격작전을 실시한다는 것, 둘째로 이 선을 방어하는 데는 희천에서 구장동-개천으로 흐르는 청천강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을 제 8사단이, 남쪽을 제 7사단이 각각 담당한다는 것, 셋째로 온정리에서 싸우는 제 6사단은 집요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하는데 많은 시간을 얻도록 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군단작전방침에 따라 보병제 7사단은 임무를 분석한 결과 적정은 불명하나 부여된 임무가 덕천-구장동간의 전투정면이 약 30km에 달하는 정면이므로 3개 연대를 전부 배치키로 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의 유리한 지형과 지세를 이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희천에서 청천강 연안 및 험준한 묘향산맥을 따라 침공하는 적을 저지, 격멸한 다음에 반격할 목적으로 사단장 신상철 준장은 요지 다음과 같은 구두명령을 하달하였다.

●작전명령

『① 사단은 11월 1일 08:00에 행동을 개시하여 덕천-구장동 간을 점령하고 이 선에서 침공하는 적을 저지 격멸한 다음 반격하려 한다.
② 제 3연대는 구장동 지역을 점령하라.
③ 제 5연대는 덕천을 목표로 진격하여 그곳을 점령하라.
④ 제 8연대는 용문산을 점령하고 특히 묘향산맥을 따라 침공하는 적을 격멸하라.
⑤ 포병 제 18대대는 의명 구장동 또는 덕천으로 진격하여 지원할 준비를 하라.』
다. 개천-비호산지구의 전투

11월 1일
사단은 이날 08:00에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덕천-구장동 간을 점령코자 하였으나 희천지역에 도사리고 있던 중공군의 선봉부대가 이미 이 지역에 침투하였으므로 이 적과 대치하는 한편 급편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격전을 반복하였는바 그들은 압도적인 대병력으로 파상공격을 계속하므로 말미암아 역부족하여 본래의 작전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제 3연대(연대장 대령 이기건)는 신흥리일대의 유리한 지형인 백령천을 이용하여 진지를 점령하였는데 제 1대대는 청천강을 좌측에 끼고 백령천을 주저항선으로 하여 논골지역을, 제 2대대는 대동의 385고지를 각각 중심으로 하여 급편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며, 제 3대대는 경계부대로서 백령천 전방인 신흥리일대의 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런데 이에 앞서 연대수색중대는 이날 07:00에 604고지(신흥리 동쪽 3km)에서 우측방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하다가 적을 발견하였는데 이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중공군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접전을 시작하여 이들 척후병을 격퇴시키고 전투준비를 서둘렀던 것이다. 이리하여 17:00에 이르자 중공군은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으로 침공함으로써 비로소 피아간에 교전이 시작되었는데 적은 더욱 병력이 증가되고 있어서 전투가 격화되었다.
제 8연대(연대장 대령 김용주)는 08:00에 제 2대대를 우일선으로 제 3대대를 좌일선으로 전개한 연대는 용문산(1190고지)을 목표로 진격하였는데 이때 용문산에는 이미 적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이 점령하고 저항하였는바 즉각 이를 격파하고 여기를 점령한 다음 제 3대대는 용문산 북쪽 능선을, 제 2대대는 남쪽과 968고지 간을 각각 점령하고 적과 대치하였다. 야암이 되자 전면 1032고지에서 적 1개 대대 규모가 공격하는 것을 무난히 격퇴하였으나 20:00에 적은 1개 연대 규모로 증강되어 삼면에서 재차 침공하였으므로 이 적과 1시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연대의 방수 일각이 무너졌으며 제 2대대가 점령한 진지에서 적을 저지하고 전투를 계속하다가 사단장 명령으로 23:00에 지연작전을 벌이면서 원리로 철수하였다.

11월 3일
전날부터 방어전투를 시작케 된 사단은 이날 03:00에 침공하는 적 1개 사단 규모와 격돌한 결과 이 적을 격멸하여 그 전력을 크게 강화시켰는데 이날은 사단이 북진한 이래 처음으로 치열한 격전을 치러 전승으로 이끈 바 승리의 날이기도 하였다.
사단 의 우일선을 담당한 제 5연대(연대장 대령 박승일)는 이날 03:00에 1개 대대 규모의 적과 교전한 끝에 전방 경계부대였던 제 1대대가 점령한 760고지의 방수가 위태로웠으나 대대장 정육지 소령은 예비중대를 투입하여 이 적을 격퇴하고 말았다. 또한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신건선)는 전방 인흥리에서 침공하는 적을, 제 3대대(대대장 소령 김상봉)는 운흥리에서 침공하는 적을 각각 용전 끝에 물리쳤다. 한편 좌일선을 담당한 제 3연대는 전날 밤 늦게부터 전투가 격화되었는데 당면의 적은 연대간의 전투지대인 구룡참 지역으로 침공하여 비호산을 장악코자 03:00에 2개 연대 규모의 병력으로 증강하여 포격과 더불어 공격을 감행하였으므로 피아간에 포화와 총탄이 뇌정과도 같이 작열하였다. 이때에 전방 경계부대로 봉천리 지역을 점령한 제 2대대(대대장 대위 이재기)는 주저항선과 다름없는 치열한 격전을 전개한 결과 드디어 대대가 포위상태에 놓이게 되자 축차로 지연작전을 펴면서 송림참-간참 간으로 철수하였다.

11월 4일
제 3연대는 10:00에 사단작전계획에 따라 전투임무를 제 8연대에 인계하고 개천에 있는 조양국민학교에 집결하여 병기검사를 실시하였고, 11:00에는 사단장의 안내로 연대를 방문한 군단장 유재흥 소장이 전날에 용감히 싸워 한국군의 전투력을 UN군으로 하여금 재평가토록 할 만큼 용맹한 참모습을 드러내어 혁혁한 전투공로를 세운 각 대대장 세 사람(박준호 대위와 이재기 대위, 그리고 임춘발 대위)을 소령으로, 또 제 2대대 통신장교 성흥기 소위를 중위로 각각 일계급 특진 시키는 동시에 사병 20명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며 백절부굴의 제 3연대 장병을 높이 치하하였다.
제 8연대는 새로이 전투임무를 인수받은 다음 비호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청천강 남안까지 점령한 진지를 더욱 보강하면서 만반의 전투준비를 끝마쳤는데 제 1대대(대대장 소령 양인석)는 용연리를, 제 2대대(대대장 소령 고한조)는 비호산을, 그리고 제 3대대(대대장 소령 박관영)는 문참-송림참 간을 점령토록 하였다. 이리하여 23:00에 이르러 수색전을 전개한 1개 중대 규모의 적과 교전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제 5연대는 비호산 남쪽에서 묘향산맥의 줄기인 535고지-760간을 점령한 진지를 더욱 굳게 구축하고 적과 대치하였는데 22:00에 이르러 적은 2개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위력탐색이 목적인 듯이 판단되는 공세를 취하였으나 이를 즉각 격퇴하고 말았다. 그 뒤에 23:00에 이르러 적은 1개 대대 규모로 증강한 병력으로 재차 침공하였으므로 1시간 동안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또다시 격퇴하였다.

11월 5일
사단은 이날 제 5연대의 방수가 무너지면서 비호산의 일각마저 적에게 피침당하여 봉명리-중참-간참-영연리-원리를 연한 선으로 전선을 형성하게 되어 개천의 방수가 위험한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는데 예비대인 제 3연대가 개천까지 침공하려던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 비호산을 탈환할 진공작전을 서둘렀다.

11월 6일
사단은 이날 적의 침공을 계속 저지하는 한편 일부병력으로써 공세로 전이하여 전날에 거기한 비호산을 다시 탈환함으로써 위협에 직면하였던 개천지역을 방수하는데 공헌하였다.
제 5연대는 사단작명 제 43호(50.11.6)에 의하여 이날 08:00에 포병의 화력지원을 받아 공격을 전개한 다음 저항하는 적 2개 중대 규모를 물리치고 535고지에 이어 비호산의 우단을 다시 탈환하였는데 제 2대대는 우일선 대대로 동변리에서 공격하여 신성리지역을 점령하였으며, 제 3대대는 좌일선 대대로 중참에서 공격하여 535고지를 점령한 다음 계속 비호산 우단까지 진격하였고, 제 1대대는 예비대로 동변리 지역을 점령하고 덕천-개천 간의 주작전로를 차단하였다.
한편 제 8연대는 간참 지역에서 적을 저지하던 제 3대대로 하여금 비호산을 공격하여 저항하던 적 1개 대대 규모를 격파하고 이 산을 점령함으로써 좌우에서 협공을 받은 적은 봉천리쪽으로 퇴각하고 최초 이 방면을 담당한 제 2대대는 예비대가 되어 간참-송림참 간으로 이동하여 진지를 점령하였다. 이때에 제 1대대는 용연리 진지에서 제 3대대의 공격을 지원하는 한편 일부병력으로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던 중 454고지에서 저항하는 적 1개 소대 규모를 즉각 공격하여 그곳을 점령함으로써 적은 구장동 쪽으로 계속 궤주하고 추격하던 병력은 17:00에 복귀하였다.

11월 7일
사단은 이날 소진상태의 전선을 유지하면서 방어전투의 보강책으로 전방지역을 수색하는 한편 경계부대를 배치하여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였다.
제 5연대는 공방양면작전에 있어서 묘향산맥의 교두보역할을 하는 전방 760고지를 점령하였는데 이 고지를 공격한 연대 수색중대는 적의 경미한 저항을 격퇴하고 여기에 진지를 구축하여 전투전초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제 1대대는 동변리, 제 2대대는 신성리, 제 3대대는 535고지에서 각각 진지를 보강하여 전투력을 강화하였다.
제 8연대는 전선의 진지를 더욱 굳게 하며 예비대인 제 2대대에서 1개 중대를 차출케 하여 전방 454고지-봉천리 지역을 수색토록 하였으나 별다른 첩보를 얻지 못한 채 여기를 점령하고 경계부대로서 적의 침공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를 저지와해하고 주진지를 기만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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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천-비호산지구 전투의 결과

서부전선은 비호산에서 북쪽에 있는 원리-영변-박천-청천강을 연한 선에서 소진상태의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개천지역을 노리던 적은 공격방향을 전환하여 덕천에서 북창쪽으로 남진하고 있으므로 이를 예의주시하던 사단은 이 적을 격멸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그 뒤 사단은 군단작전계획에 따라 11월 14일 공격을 전개하여 제 3연대는 북창에서 덕천으로, 제 5, 제 8연대는 개천에서 월봉산(덕천 서쪽 16km)-덕천으로 각각 진공하여 19일에 여기를 점령한 연후에 이곳에서 다음 작전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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