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지구 전투
칠성은

덕천지구 전투

칠성관리자 0 14,054 2007.05.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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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시기 : 1950.11.22-.11.26
● 전투지역 : 평남 덕천
● 주요지휘관 : 신상철 준장, 정 진 중령, 박준호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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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덕천지구 전투 개요

한국군 및 UN군이 전체 전선을 정리하여 50년 11월 24일에 일제히 현 경계선을 돌파하고 한.만 국경선을 목표로 진공할 계획이었으나, 덕천전투에서 패배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전선 후방으로 후퇴하였다.

2. 참가부대 및 주요지휘관

*아군
제 2군단장 소장 유전흥
제 7사단장 준장 신상철
제3연대장(대리) 중령 정진
제1대대장 소령 박준호
제2대대장 소령 이재기
제3대대장 소령 이영고
제5연대장 소령 박승일
제1대대장 중령 윤천봉
제2대대장 소령 신진선
제3대대장 소령 김상봉
제8연대장 대령 김용주
제1대대장 소령 양인석
제2대대장 소령 고한조
제3대대장 소령 박관영
포병 제18대대장 중령 박정호
병력 : 약 10,000명

*적군
중앙군 제38군장 송상한
제112사단장 강옹휘
제113사단장 당정산
제114사단장 적중유
제42군장 오서림
제124사단장 소극지
중앙군 제125사단장 왕배연
병력: 각 사단 약 10,000명
장비: 152㎜ 및 160㎜ 곡사포, 82㎜ 및
120㎜ 박격포, 기관총, 소총

3. 덕천지구 전투 진행과정

가. 작전 전 상황

서부전전의 우익을 담당한 제2군단은 영원-덕천지역의 전선을 정비하고 있었는데 제8사단(장, 이성규 준장)이 우익부대로 영원지역을 제7사단이 좌익부대로 덕천지역을 각각 확보하고 있었으며, 제6사단(장, 장도영준장)은 예비사단으로서 군단사령부와 같이 북창에 있었다.
덕천지역을 점령한 제7사단의 전투정면은 우측에는 영원좌단 대동강안(상류)으로부터 좌측에는 용문산(구장동 동남쪽 10㎞) 우단인 약 35㎞에 달하는 넓은 지역이었는데 이 때에 제8연대가 우일선으로 풍전리(영원 서북쪽 4㎞)-546고지-신덕리(덕천 북동쪽 7㎞)를 그 좌측에 제3연대가 연결하여 안상리(덕천 북쪽 7㎞)-장하리를 연결한 지역을 각각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5연대는 서창(덕천 서쪽 10㎞)에 있었으며, 포병 제18대대는 덕천에서 전방연대를 지원하였고, 사단사령부도 덕천에 있었다.

나. 작전계획

이 작전은 육본훈령 제119호(참조 부록훈령 제59호)에 의하여 한국군 및 UN군이 전체 전선을 정리하여 50년 11월 24일에 일제히 현 경계선을 돌파하고 한.만 국경선을 목표로 진공할 계획이었다.
제2군단은 당면한 전선을 정비할 작전계획을 세웠는데 그 취지의 대요는 첫째로 전면의 경미한 적 정세를 고려할 때 적을 격퇴하고 군단이 공격개시할 때 식별이 용이한 전방지역으로 추진하는 것인데 이 선을 영원 10㎞ 북쪽에 가로놓인 대동강 상류선에서 삼월강거리(영원 북쪽 7km)-신흥리로 통하는 도로 및 백령천으로 한다는 것.
둘째로 이 선으로 진격하는데 삼원강거리를 협조점으로 하여 동쪽에서 제8사단이 대동강 상류선까지, 남쪽에서 제7사단이 백영천까지 각각 진격한다는 것, 셋째로 공격개시선까지 진격하는 즉시로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진격에 대비하면서 다음날의 공격준비를 하여 희천지역으로 진격한다는 것이었다.

나. 작전실시

11월 22일
사단은 이날 08.00에 사단작명 제50호 (50.11.21)로 제8연대 우일선에, 제3연대를 좌일선으로 전개하여 일제히 풍전리-신덕리-장하리 선을 돌파한 다음 저항하는 1개 대대 규모의 적을 격퇴하고 군단에서 지정한 공격개시선까지 진출하였다.

11월 23일
사단은 다음 날에 실시한 공격을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전방에 대한 수색정찰을 강행하는 한편 적의 역습에 대한 대비책으로 전선의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진지를 구축하였다.
1. 제8연대(장, 김용주대령)-사단계획에 따라 적 정세 탐색을 겸한 선발대을 보내는 한편 진지를 구축하였는데 연대 수색중대는 수색 정찰 임무를 받고 전면에 있는 709고지를 거쳐 신평에 진격할 무렵 좌측의 1098고지에 있는 1개 소대 규모의 적을 발견하자 즉각 공격하여 격퇴시킨 다음 이 산을 점령하였다. 그런데 이 산은 가마봉(1304고지)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남단인 고지로서 다음날의 공격을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에 연대에는 중대를 선견부대로써 확보케 하였다. 한편 전선을 담당한 제2대대는 다음날의 공격을 위하여 하령곡산 지역의 병력을 768고지-936고지 간으로 집중시켜 진지를 구축하였으며, 제3대대는 사항산-976고지 간에서, 제1대대는 예비대로 후방 현곡산에서 각각 진지를 구축하면서 다음날의 공격을 준비하였다.
2. 제3연대(장, 정 진 중령)는 각 대대의 수색대로 다음날에 공격할 지역인 전선에서 3㎞전방인 적진에 있는 683고지-886고지를 수색하였다. 양 대대의 주력은 다음날의 공격준비를 하면서 점령한 진지를 보강하였는데 이 때에 제1대대는 우현동의 785고지- 491고지 사이에서, 제2대대는 491고지의 좌단에서부터 333고지 사이에서 각기 진지를 구축하면서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제3대대는 예비대로 967고지에서 공격준비를 하면서 연대의 후방을 경계하였다.

11월 24일
이날 육본 훈령 제119호(50.11.19)에 의하여 한국군 및 UN군은 한.만 국경선까지 진격할 목적으로 전 전선에 걸쳐 접촉선을 일제히 돌파하고 총반격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미 제5공군의 전투기 편대는 지상군의 진격을 엄호하였고 포병부대는 일시에 포문을 열어 적진를 강타하였다.
1. 사단은 이날 군단 작전계획에 따라 사단 작명 제51호 (50.11.24)에 의하여 08.00에 공격을 전개하였는데 최초 목표인 가마봉(1304고지)-묘향산(1203고지)를 연한 전선을 점령한 다음 계속 진격하여 중간 목표인 강선봉(1612고지)-향로봉(1600고지)의 준령을 돌파하고 군단의 목표인 희천지역으로 진격하려 하였다. 그런데 적도 또한 공세를 취함으로서 좌측연대만 약간 진출한 상태에서 격전을 전개하였다.
2. 제8연대(장, 김용주대령)는 가마봉(1304고지)-1307고지를 목표로 하여 우일선의 제2대대를 1307고지로 좌일선의 제3대대를 가마봉을 각각 점령토록 공격을 준비하였는데, 이때에 선격대로 1098고지를 점령한 연대수색중대가 적과 격전 끝에 철수함에 따라 연대는 침공하는 적을 우선 저지 격멸한 다음에 공격키로 하였다. 이 당시 수색중대는 이른 아침에 침공한 적 1개 대대 규모와 1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역부족하여 지연전을 펴면서 항곡산으로 철수하였는데 중대의 후미를 따라 공격한 적은 사현산-976고지 간을 점령한 제 3대대 (장, 박관영 소령)에 의하여 격퇴를 당했다. 또한 제2대대(장, 고한조 소령)는 818고지-709고지에서 침공하는 1개 대대 규모의 적을 768고지-936고지 간을 점령한 진지에서 격퇴하였으며. 예비대인 제1대대(장, 양인석 소령)는 항곡산에서 상황을 주목하면서 만반의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3. 예비대인 제5연대(장, 박승일 대령)는 덕천에서 하령곡산쪽으로 진격하다가 신덕리까지 진출하여 다음 작전을 대기하였으며, 사단 수색중대는 하령곡산 우단에서 침공하는 적 1개소대 규모를 즉각 물리쳤다.

11월 25일
사단는 이날 2개연대 규모의 적이 사단의 좌 우측방과 미 제38연대 정면을 침공 하였는데 사단장 신상철 준장은 이 적을 조속히 격멸한 다음에 계획대로 공격하기 위하여 예비대인 제5연대를 투입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사단의 3개연대가 전력으로 격전을 반복하였다.
1. 우일선인 제8연대(장, 김용주 대령)는 침공하는 2개 대대 규모의 적과 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제2대대(장, 고한조 소령)는 이날 주간에 1개의 경계분대를 전방 709고지에 배치하였으나 적은 1개 대대 규모로 이 산을 포위하면서 침공하므로 대대장은 경계부대를 철수토록 하면서 포격을 퍼붓고 대대의 768고지-936고지 진지 앞에서 이 적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적은 야음을 이용하여 침공할 기도로서 전선 전후방으로 병력을 집결하는듯 하였다. 또 제3대대(장, 박관영 소령)는 사항산-976고지의 진지에서 증강된 적 1개 대대 규모와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적은 병력을 더욱 증강하여 침공한 탓으로 북사면의 610고지를 빼앗기고 주진지에서 치열한 격전이 더욱 가열화되었으며 예비대인 제1대대(장, 양인석 소령)는 돌파예상지역에 대한 역습계획을 준비하였다.
2. 이와 같은 제 8연대의 상황을 파악하게 된 사단장은 전날에 제3연대가 진격함에 따라 연대간의 전투지대인 우현동 지역과 광정면의 특징을 고려하여 전선의 보강책으로 제5연대 (장, 박승일 대령)에게 연대 주력으로 우현동 지역을 점령확보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을 받은 제5연대는 즉각 신덕리에서 진격하여 제1대대(장, 윤천봉 중령)가 우현동의 785고지-667고지 간을 점령한 다음 전투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22.00에 이르러 적의 정찰대로 예측되는 2개 중대 규모와 1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또한 제2대대(장, 신진선 소령)는 후방인 586고지-400고지 간을 점령하였으며, 제3대대(장, 김상봉 소령)는 사단의 예비대로서 후방 중심지역인 신덕리에서 다음작전을 대기하였다.

11월 26일
사단은 이날 전날부터 침공한 적이 그 병력을 2개 사단이상의 대병력으로 증강하여 02.00에 포격과 더불어 사단의 우측방을 강습하였는데 2시간에 걸친 치열한 격전 끝에 고수하던 방어진이 무너지므로 부득이 지연작전을 전개하면서 철수를 단행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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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덕천지구 전투 결과

이 전투가 끝난 사단은 순천에서 부대를 정비하고 덕천지역에 침공한 적을 격멸코자 하였으나 적은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침공 하면서 위력을 가하기 때문에 아군의 전세는 불리한 상태에 놓이므로 말미암아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차적인 지연작전을 전개하면서2월 2일에는 승호리에 집결하였다. 또한 미 제2사단에 임시로 배속된 제3연대는 계속 미 제38연대와 합동으로 11월 28일부터 구장동에서 지연작전을 펴면서 개천-순천-평양-승호리로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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