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탈환 작전
칠성은

평양 탈환 작전

칠성관리자 1 16,395 2007.03.23 07:48


● 전투시기 : 1950.10.18-10.20
● 전투지역 : 평양
● 주요지휘관 : 김동빈 대령, 김소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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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양 탈환 작전의 개요

평양을 목표로 경쟁을 벌이던 한·미 각 사단은 동평양에 한국군 제1사단의 제12연대, 제11연대와 미 제1기병사단의 제5기병연대가, 서평양에 제1사단의 제15연대와 한국군 제7사단의 제8연대가 각 각 앞을 다투어 돌입하고 제1사단이 대부분의 요소를 점령함으로써 적도 평양은 탈환되었다.

2. 평양 탈환 작전의 주요 지휘관

*아군
미 제 1군단장 소장 프랭크 밀번(Frank W. Milburn)
제 1사단장 준장 백선엽
제 11연대장 대령 김동빈
제 1대대장 소령 김소
제 2대대장 중령 차갑준
제 3대대 장 소령 정영홍
제 12연대장 중령 김점곤
제 1대대장 소령 한순화
제 2대대장 소령 조성래
제 3대대장 소령 김기용
제 15연대장 중령 조재미
제 1대대장 소령 유재성
제 2대대장 소령 김진위
제 3대대장 소령 안병건
미 제 1기병사단장 소장 허버트 게이(Hobart R. Gay)
미 제 5기병연대장 대령 마르셀 크롬퀘즈(Marcel B. Cromqez)
제 1대대장
제 2대대장 중령 폴 클리포드(Paul Clifford)
제 3대대장
미 제 7기병연대장 대령 윌리엄 해리스(William a. Harris)
(10월 17일 임시교대 대령 제임스 울너프(James K. Woolnough))
제1대대장 중령 피터 클레이노스(Peter D. Clainos)
제 3대대장 중령 제임스 린치(James H. Lynch)
미 제 8기병연대장 대령 레이먼드 팔머(Raymond D. Palmer)
사단 포병사령관 준장 찰스 팔머(Charles D. Palmer)
제 2군단장 소장 유재흥
제 7사단장 준장 신상철
제 8연대장 중령 김용주
제 1대대장 소령 양인석
제 2대대장 대위 고한조
제 3대대장 소령 박관영
배속부대
(제1사단)포병 제 17대대
(제 7사단)포병 제 18대대장 중령 박연호
(미 제 1기병사단)미 제 8야전공병대대
지원부대
(제 1사단)미 제 10고사포단장 대령 윌리엄 헨닉(William H. Hennig)
미 제 6전차대대장 중령 존 그로우든(John S. Growden)
C.D 중대
(미 제 1기병사단)
미 제 70전차대대
미 제 89전차대대
병력 제 1사단 10,250명
미 제 1기병사단 약 15,000명
제 7사단 8연대 약 3,000명
총 약 28,250명

*적군
제 19사단
제 27사단
제 43사단
제 239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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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양 탈환 작전의 진행과정

가. 전투전의 개황

38도선을 돌파한 이래, 평양을 향한 진격경쟁을 벌이고 있던 미 제 1군단 예하 한국군 제 1사단, 미 제 1기병사단, 미 제 24사단 등 각 사단은 10월 17일 현재 평양외곽지대를 서남으로 가로 지른 언진·마식령산맥의 남단과 멸악산맥 등 산악지대에서 저항하는 적을 격파하고, 한국군 제 1사단이 율리 일대에 미 제 1기병사단이 황주에 각각 진출함으로써 평양까지 40km내외로 포위망을 압박하였다. 즉 군단우익으로서 평양 동남방으로 진격한 제 1사단(사단장 준장 백선엽)은 제 12연대(연대장 중령 김점곤)가 상원 율리 일대에, 제 11연대(연대장 대령 김동빈)가 초귀동-상원 일대에 진출함으로써 적의 평양 최후방어선을 향한 공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 15연대(연대장 중령 조재미)는 조공으로서 율리로부터 평양동북방을 우회공격하게 되어, 율리에서 삼등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다음, 군단 중앙의 미 제 1기병사단(사단장 소장 게이(Hobart R. Gay))과 좌익의 미 제 24사단(사단장 소장 처치(John H. Church))간의 진격경쟁은, 『사리원에 먼저 진출하는 사단으로 하여금 평양공격의 선두에 서도록 한다.』라는 군단장 밀번(Milburn) 소장의 포고에 따라 우선 사리원으로의 진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병사단에 배속된 영 제 27여단(여단장 준장 코드(Basil A. Coad))이 17일에 사리원을 탈환함으로써 미 제 24사단은 재령으로부터 사리원을 향하였던 진격이 정지되고, 미 제 1기병사단이 평양공격에 앞장서게 되었다. 같은 날 밤, 기병사단의 제 7기병연대(연대장 대령 해리스(William A. Harris))는 서흥지방 으로부터 진격하여 황주를 탈환하였으니, 이로써 기병사단은 평양남방 40여km에서 진격을 서두르게 되었다.

나. 작전계획

아군이 38도선을 돌파할 무렵에 맥아더 UN군 총사령관과 워커 미 제 8군사령관은 승리의 상징이 되는 평양탈환의 계획을 구상하였다. 즉 미 제 1군단에 주공을 담당시키고 원산에 상륙할 미 제 7사단으로 하여금 서진하여 평양동북방을 공격케 하려는 대전략구상이었다. 여기에서 주공의 임무를 부여받은 Milburn 미 제 1군단장은 38도선으로부터의 북진에 있어서 기동력이 좋은 미 제 1기병사단으로 하여금 중앙에서 선두로 진격케 하고, 제 1사단은 그 우익을 진격시켜 평양에 육박케 하고 있었다.
이때 적은 멸악산맥일대의 외곽방어선이 돌파되고 붕괴상태에 빠졌으나, 평양방어사령부(사령관 소장 최인)를 설치하고, 대동강 남북안 및 동평양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한 다음, 완강한 저항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 저항은 그들의 각 기관이 철수함에 있어서 시간적 여유를 얻음과 아울러 패적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하여 아군의 전진을 지체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즉 미 제 8군 G-2의 판단은, 적이 차기작전에 대비하여 주공이 청천강 이북으로 철수하는 동안 각목상의 방어를 기도하리라는 것이었다. 또한 지형 상으로도 대동강은 적에게 천연적인 방어선으로 이용될 수 있으나, 그 유역인 평양주변에 전개된 평야는 열세한 화력과 기동력으로 방어전을 계속하기에는 불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미 산악지대를 돌파한 제 1사단(사단장 준장 백선엽)과 미 제 1기병사단(사단장 소장 허버트 게이(Hobart R. Gay))은 각기 전차를 선두로 낙랑평야의 동단을 관통하여 평양에 돌입할 것을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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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평양 탈환 작전

10월 18일
사단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진격을 시작하였는데, 정면에서는 완강한 적의 저항으로 진격이 부진하였으며, 우회공격 중의 제 15연대는 미약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신속하게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즉 주공인 제 12연대(연대장 중령 김점곤)는 제 1· 3중대가 엄호하는 미 제 6전차대대의 전차군을 선두로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조성래)를 우익공격제대로, 제 3대대(대대장 소령 김기용)를 좌익공격제대로 하여 대동리를 목표로 진격하였는데, 대동리 남쪽 도로좌우에 솟아 있는 반용산과 관음산의 기성진지에서 저항하는 2개 대대규모의 적을 일거에 격파한 다음, 10:00까지는 이미 대동리를 탈환하였으며, 연대는 계속 패적을 추격하였던 바, 대동리 북쪽 1km 지점에서 다시 1개 연대규모의 적과 교전케 되었다. 이때 적은 대동강지류인 남강으로부터 다시 갈라진 상원강반을 방어선으로 삼아 그 서북안의 능선일대로부터 6대의 전차와 7문의 곡사포 및 16문의 직사포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4~5선의 중첩배치로서 최후 복곽적인 다선 저항을 기도하였다. 특히 적 제 1선의 저항은 완강하여 아군의 치열 무비한 공격에도 뚫리지 않고 있었으며, 아군의 진격로에는 많은 적의 지뢰가 매설되어 도처에서 폭발하는 전황이었다. 그리하여 연대는 이 완강한 적의 저항을 끝내 돌파 분단한 다음, 날이 저문 뒤에야 강변에 진출하였으니, 대동리로부터 1km정도의 전진에 8시간이나 소요된 셈이었다. 한편 동북방을 우회 공격케 된 제 15연대(연대장 중령 조재미)는 이미 전날에 율리로부터 북진을 시작하였거니와, 미약한 일부 패적의 저항을 격파하면서 삼등에서 송가리 쪽으로 서진하여 신장리일대를 거쳐 삼청동-광청리-승호리 일대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즉 제 1대대(대대장 소령 유재성)는 삼등을 거쳐 신장리 부근에 진출하였을 즈음, 4대의 적 전차 엄호 하에 저항하는 2개 중대규모의 적을 공격하여 이를 단숨에 격파한 다음, 전차1대의 엄호를 받으며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광청리 부근가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제 2대대(대대장 소령 김진위)는 삼등-덕산탄광-송가리로 진격하여 이날 11:00에 제 7중대가 화천리에 진출함으로써 전 대대가 한곳에 합세한 다음, 저항하는 2개 중대규모의 적을 격퇴하는 즉시로 이 패적을 운학동서북방 2km 부근까지 쉴 새 없이 추격하였다.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안병건)도 삼등을 거쳐 서진하였는데, 도중에 일부 패적의 저항을 격파하면서 광청리부근으로 진출하였다. 또 직할대(대장 소령 석종섭)는 이날 새벽에 일부 패적의 지연행동이 약간 있었으나 이를 물리치면서 무난히 대동강의 남강 지류를 건넜으며, 화천리부근에서 1개 중대규모의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게 되자 곧 이를 격퇴한 다음, 17:00에 승호리 일대에 진출하여 군화속의 물을 털었다.

10월 19일
전날에 시작된 제 12연대(연대장 중령 김점곤)의 상원강일대 적 방어선에 대한 공격은 차가운 가을비를 무릅쓰고 밤새 계속되어 날이 밝기 전에 거점편성의 적 방어진지를 완전히 탈취함으로써 끝이 났다. 그런데 연대는 어느 부대보다도 완강한 적의 저항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진격로에도 가장 많은 대인·대전차 지뢰가 매설되어, 전진 도중 사단참모장 석주암 대령이 탑승한 지프차가 지뢰접촉으로 참모장이 다리를 부상당한 바도 있거니와, 백선엽 사단장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보병자신들까지도 지뢰제거에 솔선종사토록 지시하여야 했었다. 그러나 이제 적의 평양방어선은 와해되었으며, 연대는 전차를 선두로 제 1·2·3대대의 행군대열이 줄을 지어 평양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10:00에 교외에 진출하였을 무렵 다시 도로좌우에서 저항하는 2개 대대규모의 적과 부딪쳤으나 미 제 6전차대대 C중대 전차의 활동과 후방 각종 포병화력, 지원사격 및 우천을 무릅쓰고 출격한 항공기의 폭격으로 두 시간 내에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조성래), 제 3대대(대대장 소령 김기용)가 이를 격파하였다. 그 동안에도 연대는 진출을 서둘러 11:00에 제 1대대(대대장 소령 한순화)로부터 동평양에 선착으로 돌입한 다음, 각 대대가 선교리일대에 진출하여 12:30~12:45까지는 대동교 남북방의 대동강남안에 부대를 배치하였으니, 잃었던 고도를 되찾는, 실로 5년만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각에 미 제 5기병연대의 선두부대도 남평양에 돌입하였는데, 감격에 젖어있던 백선엽 사단장은 대동교 남쪽 교차로에서 미 제 5기병연대를 따라 온 밀번(Milburn) 군단장과 게이(Gay) 미 제 1기병사단장에게 상황을 보고 하였다.
이때 제 11연대(연대장 대령 김동빈)는 사단 우익공격제대로 전진하여, 선발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정영홍)가 12:25에 평양비행장을 탈환하였다. 즉 제 11중대장 김봉건 대위는 진격 도중에 노획한 적의 군마로 1명의 기마대를 편성하였는데, 이를 지휘하여 선두로 10:30~11:00에 비행장에 돌입한 다음, 잔류한 수 명의 적을 사살, 또는 사로잡았으며, 이를 대대장에게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약1시간 반 뒤에는 대대주력이 비행장에 진출하였던 것이다.
전날 밤 늦게 마산리에서 대동강의 북강을 건너기 시작한 우익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안병건)가 이날 05:00에 이르러 도하를 완료하였으며, 제 1대대(대대장 소령 유재흥)가 10.30에 삼산동에서, 새벽에 이천리로 진격한 좌익의 제 2대대(대대장 소령 김진위)는 08:30에 하수리로 각각 대동강의 북강을 건너 모단봉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즉 제 3대대는 대안에서 사격을 가하는 1개 중대규모의 적에 대하여 1개 중대로써 응사케 하여 도하를 엄호시키고 주력은 하류로 넘어 대안에 건너가 적을 격퇴한 다음, 도중에 저항하는 일부 패적을 포로로 잡으면서 북사리를 지나 동북방으로부터 모단봉을 공격하였다. 또 제 1대대도 북사리를 거쳐 14:00에 평양에 돌입하여 제 3대대 우측에서 모단봉부근을 공격하였으며, 제 2대대는 전날 설학동 북쪽에서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147고지-101고지를 탈취한 다음, 제 6·7중대를 진격시켜 제 3대대의 좌측에서 모단봉일대를 공격하였다. 당시 이 일대에는 연대규모의 적이 수많은 인공호와 천연 동굴에 잠복하여 끝가지 저항하였으나, 아군의 끈질긴 공격에 마침내 전의를 잃게 되고 15:00까지에는 모두 격파되었다. 더욱 용약하게 된 연대는 즉시 시내를 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안병건)는 먼저 김일성대학 안으로 약진하여 15:30 저항하는 1개 대대의 적을 마침내 격퇴한 다음, 이곳에 대대관측소를 설치하였으며, 중화기중대가 그 부근에 배치되어 적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패적을 소사하였다. 제 2대대(대대장 소령 김진위)는 제 6중대를 서쪽으로 우회하여 시내에 돌진케 하고 제 7중대는 대동강기슭을 따라 약진시켜 북괴의 내각본부를 점령케 하였던 바, 거의 같은 시각에 그곳에 진출한 제 11중대와 선후를 가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제 7중대가 먼저 태극기를 그 건물 높이 게양하였으며, 태극기를 미처 가져오지 못하였든 제 11중대는 이에 뒤질세라 북괴의 인민위원회의 안으로 돌진하여 그곳에 태극기를 게양하게 되었다.
한편 이날 직할대(대장 소령 석종섭)도 동평양비행장을 점령한 다음, 대동강을 건너 연대 주력과 합류하였으니, 17:30까지 연대는 평양시내의 중요건물을 거의 모두 다 수중에 넣게 되어 적들도 차츰 멀리 사라지는 것이었다.

10월 20일
감격의 하룻밤이 샌 이날, 가을비는 아직도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으며, 사단은 제 11·12연대도 본평양에 돌입하여 일부의 잔적을 척결한 다음, 방어시설이 튼튼하게 되어있는 적의 각 기관을 비롯하여 전 시가를 10:00까지 완전히 점령하였다. 그리고 제 7사단 8연대는 서북방을 평정하였으며, 미군은 여러 가지의 수습대책을 백선엽 사단장에게 문의하거나 통고한 다음에 비로소 행하였다.
한편 아침에 시청을 수색하던 제 15연대 9중대의 박종순 소위는 방공호에 수십 명의 애국시민을 가두어 놓고 휘발유로 방화한 학살현장을 발견하였다. 또 한편 평양상업학교 출신인 동 연대 제 11중대의 한 소위는 피난 간 부모의 소식을 듣고 대타령으로 찾아 가 만날 수 있었으니, 민족의 비극과 개인의 요행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사단은 평양을 가장 먼저 탈환한 공세에 따라 여러 가지 상훈을 받게 되었거니와 우선 전 사병 특별진급으로 698명의 사병이 1계급 진급하였으며, 각 대대장들도 중령으로, 김점곤 중령과 제 15연대장 조재미 중령도 이날부로 대령으로 각각 진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선엽 사단장은 밀번 군단장으로부터 미국의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각 연대본부와 사단사령부는 모두 평양에 진출하였으며, 군민의 환호성은 종일종야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 이날 맥아더 원수는 미 제 8군사령관 워커 중장에게『한국군을 조속히 국경에 도달케 하라』고 명령하였으며, 미 제 187공수연대는 적의 퇴로차단과 미군포로구출을 목적으로 평양 동북방 37km의 순천에 강하하였다.


4. 평양 탈환 작전의 결과

이제 UN군사령부는 평양에 군정을 실시할 준비를 하였으며, 21일에 맥아더 원수는 평양비행장에 비래하여 미군 중 제 1착을 한 제 5기병연대의 F중대 등 미군을 사열하였다. 미 제 1군단(군단장 소장 밀번(Frank W. Milburn))은 신의주-수풍댐 지역으로 계속 북진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제1사단(사단장 준장 백선엽)은 수풍댐을 목표로, 미 제 24사단(사단장 소장 처치(John H. Church))은 선천으로 진격케 되었다. 그리고 새로 군단에 편입된 제 7사단(사단장 준장 신상철)은 예비대로, 미 제 1기병사단(사단장 소장 게이(Hobart R. Gay))은 평양 경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Comments

칠성관리자 2007.03.23 07:53
  평양 선봉 입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선봉 입성 지시를 전진에 내렸었고 그래서 주공으로 선봉입성한 것 같고 칠성은 조공이었으나 측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들어갔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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