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리지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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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리지구 전투

칠성관리자 0 15,489 2007.03.07 09:35
남대리지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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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시기 : 1951.1.14-1.19
● 전투지역 : 경북 영주
● 주요지휘관 : 최석 준장, 장춘권 중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1. 남대리지구 전투의 개요

제 3사단의 남대리 부근 전투는 황우선의 뒷면에 침투한 적 제 2군단 주력부대에 대한 섬멸작전이었다.
마구령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남대리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그리고 충청북도의 분기점이기도 하거니와 이 지역에는 태백산(1561고지)-구경산(1341고지)-마구령(792고지)-형제봉(1178고지)-죽령 등 고산준령을 연결하는 소백산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있다. 따라서 그간 도로망은 발달되지 못하여 영천-안동-영주-풍기-제천-원주 간의 중앙선과 연결하는 삼척-장성-춘양-내성-영주 간의 35번 도로상에서 춘양-서벽리-녹전-영월 간의 998번 도로와 내성에서 남대리 남쪽을 우회하는 915번 도로가 있으나 노면이 협소하고 굴곡이 많아 매우 불량한 상태였다. 그런데다가 이 무렵의 기온은 영하 12도~20도를 오르내렸으며 강설 또한 결빙하여 피아간의 기동상 많은 고난을 불면케 하였다. 그러나 적의 이곳으로의 침투는 기동력이 약점을 역이용하려는 심산과 경우에 따라 탈출구를 태백산맥으로 찾으려는 데는 입지적인 좋은 여건을 갖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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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대리지구 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제 3군단장 소장 유재흥
제 3사단장 준장 최 석
제 18연대장(대리) 중령 장춘권
제 1대대장 소령 이병형
제 2대대장 소령 정승화
제 3대대장 소령 안민일
제 22연대장 중령 이소동
제 1대대장 대위 김상균
제 2대대장 소령 오정록
제 3대대장 소령 정순민
제 23연대장 대령 김종순
제 1대대장 소령 김우영
제 2대대장 소령 문태준
제 3대대장 소령 최상준
배속부대
제 11포병대대장 소령 송찬호
제 3야전공병대대장 대위 김재식

*적군
북한군 제 2군단 중장 최 인
제 9사단
제 27사단
제 31사단
제 5유격여단


3. 남대리지구 전투의 진행과정

1월 14일
사단의 각 연대는 이날 작전명령 제 5호에 의거하여 전투담당지역을 목표로 기동을 시작하였다.
제 18연대장 장춘권 중령은 출동에 앞서 『연대는 사단의 좌일선을 담당하여 남대리 좌우고지를 점령한 다음 적을 진전으로 유인 섬멸한다.』는 연대작명 제 6호를 하달한 다음 출동준비가 완료되자 장동을 출발, 사단 및 자대의 전 차량을 동원한 차량기동으로 이날 밤 물야면에 집결 중에 있었다.
다음 제 22연대(연대장 중령 이호동)는 서벽리-주실령 부근의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제 1대대(대대장 대위 김상균)의 주력과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오정록)의 일부 병력이 출동하였으며, 제 23연대(연대장 대령 김종순)는 법전을 출발, 녹전으로 이동하였다.
곧 제 23연대의 지휘소는 법전에 위치하고 OP 및 주력부대는 07:00 차랑기동으로 법전을 출발, 12:30 내덕리에 집결하면서 제 7사단장 김형일 준장의 지휘를 받게 되었거니와 이날 제 2대대(대대장 소령 문태준)는 제 7사단 사령부의 방호임무를 맡는 반면 연대 OP와 제 1, 3대대는 다시 내덕리를 출발 15:00 녹전리에 도착한 다음 제 7사단 작전명령 제 37호에 의거하여 전방지휘소를 녹전에 두고, 제 1대대(대대장 소령 김우영)는 19:30 미사리 어구에서 명생동 간의 선에,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최상준)는 명생동에서 어래산(1064고지) 간의 선상에 각각 배치하였다.

1월 15일
이날의 서전은 제 22연대(연대장 중령 이소동)의 주실령 공격전이었다.
연대는 공격에 앞서 주실령의 적을 삼면으로 협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전술적 전개를 단행하였다.
곧 제 1대대의 제 1, 3중대로서 주실령의 적을 정면 공격케 하고 이와 병행하여 제 2대대 5중대로 하여금 좌측 옥석산을 점령케 하는 한편 연대 수색대를 주실령 서쪽 5km의 조제리에서 남하케 하는 동시에 제 3대대의 제 9중대로 하여금 적의 퇴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문수령의 적 400명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시간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자 적은 수가 방면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였는데 수가에서 제 9중대와 격돌하게 되자 당황한 적은 다시 북쪽의 박달령을 향하여 탈출을 기도하였으나 연대 수색대가 오제리에서 남하 중에 즉시 공격함으로써 적은 괴멸적인 타격을 받고 그 서북쪽을 향하여 분산 도주하였다.
이날 제 2대대(대대장 중령 안순민)는 연대본부가 법전에서 내성(삼계리)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제 1대대는 연대의 우익부대로서 물야면 오록리를 출발한 다음(954고지)를 점령하고 계속 전진 중, 이날 13:20에 이르러 선달산에서 적 1개 대대와 격돌하여 화력전과 백병전을 전개하였으나ㅑ 일몰 이후부터 전투가 교착상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8:00에 적이 야음을 틈타고 기습함으로써 이를 맞아 무려 4시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22:00에 이를 격퇴하였다.

1월 16일
남대리 동남 3km 지점을 점령한 제 18연대 1대대(대대장 소령 이병형)는 전일 22:00에 선달산으로부터 내습한 적을 격퇴하였으나 일차 물러갔던 적은 24:00에 다시 제 2중대의 진지로 공습하였으므로 이에 제 2중대는 전일 제 1대대에 배속된 제 11중대와 함께 4시간여에 걸쳐 치열한 수류탄전을 전개한 끝에 이날 04:00에 비로소 이 적을 완전히 격퇴하고야 말았다.
대대는 이어서 06:00부터 반격을 단행하여 11:30에는 우일선인 제 3중대가 선달산(1236고지)을 점령함으로써 대대는 그 북쪽 기슭에 진출하였는데 이날 야음을 타고 적은 제 2중대 전면으로 삼차에 걸친 야습을 감행하였으나 즉시 응전 격멸하고 진출선상에서 고수태세를 강화하였다.
이때, 죄측에서 1051고지-마구령-1097고지를 연한 선을 점령중인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정승화)도 08:00에 행동을 개시하여 우일선 제 1대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적 일부의 저항을 받았으나 대대 우일선을 서북으로 전진시켜 남대리의 적을 서남방에서 압박하였다.
곧 제 5, 9중대를 공격제대로 하여 18:00에 전골 북쪽 921고지를 확보하고 제 6중대는 예비대로서 마구령을 점령토록 하였다.
그리고 제 3대대(대대장 중령 안민일)는 오록리 일대를 점령하여 후방 경계에 임하는 한편 제 1대대에 작전배속 되었던 11중대를 원대복귀 시켰다.
이와같이 제 18연대가 남대리를 향하여 정면으로 북진하는 한편 그 동측방에서 적을 압박한 부대는 제 22여대(연대장 중령 이소동)였는데 전일 주실령상의 적 400명을 격멸한 동 연대 제 1대대(대대장 대위 김상균)의 제 1, 3중대는 주실령 서측 준선에 진지를 구축한 다음 수색대를 남대리 동쪽에 있는 선달산 남쪽까지 진출시켜 제 18연대 1, 2대대와 연락을 유지하였으며, 대대 좌측 옥석산을 점령한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오정록)의 제 5중대는 이날 진지를 계속 강화하였고, 연대 수색대가 진출한 조제리에는 이날 제 6중대가 제 1대대 후측방 도역령에는 제 7중대가 각기 이동 배치되었다.
한편 제 23연대(연대장 대령 김종순)의 제 1대대(대대장 소령 김우영)는 계속 미사리어구-명생동 간의 진지에서 방어 중에 있으나 좌측 명상동-어래산(남대리 북쪽 4km) 간의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최상준)는 전날 22:00에 공습한 적 제 244연대와의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대대는 병력부족과 탄약보급의 두절로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1월 17일
제 18연대(연대장 중령 장춘권)의 주력부대는 포병과 항공기의 지원을 받으며 06:30에 공격을 개시하여 적 제 31사단의 거점인 남대리 일대를 13:00에 완전 점령하였다.
곧 제 1대대(대대장 소령 이병형)의 제 3중대가 선달산 능선을 타고 남대리 전방으로 진출하여 남대리 우측 능선에 배치함과 동시에 제 1중대는 좌측 능선을 따라 13:00에 남대리에돌입하여 잔적을 격멸하고 이를 완전히 점령한 뒤 의풍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2km를 추격하여 송내의 서남쪽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제 2, 4중대는 남대리로 전진하여 그 후방 능선에 각각 배치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제 18연대의 주력부대가 남대리를 점령하고 있을 무렵 연대 제 1대대의 좌측인 칠룡동을 점령한 제 22연대 3대대(대대장 소령 정순민)는 남대리 부근의 적 좌측방을 내려다 보면서 진지를 더욱 강화였고, 주실령의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오정록)를 비롯하여 잔여병력은 전날과 같이 후방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1월 18일
전날 제 18연대가 남대리 일대를 완전히 확보하고 공세를 의풍리로 지향하게 되자 그 서북방 미사리어구-명생동-어래산 간을 점령한 제 23연대(연대장 대령 김종순)는 이날 일부 진지를 변경하여 적 주력부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14일 이래 미라시어구-명생동 간에서 적 제 9사단의 주력부대와 격돌한 이래로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연대의 제 1대대는 이날에 공격한 적 1개 대대 병력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15:00에 제 3대대의 증원과 포병대대의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강타를 가함으로써 적은 곡구 방면으로 퇴각하기에 이르렀다.

1월19일
제 18연대(연대장 중령 장춘권)느 지난 14일부터 6일간에 걸쳐 남대리의 적 제 31사단을 격파하고 의풍리까지 진격한 다음 이날 작전 임무를 제 23연대(연대장 대령 김종순)와 제 5사단(사단장 준장 민기식)의 제 27연대(연대장 대령 이상철)에 인계하고 주력을 후방으로 이동하였다.
곧 제 1대대(대대장 소령 이병형)는 의풍리 우측고지의 진지를 제 23연대에 인계하고 20:00에 도보 행군으로 현지를 떠나 15km 후방의 오록리로 이동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제 2대대(대대장 소령 정승화)도 06:00에 의풍리 좌측 고지의 진지를 제 5사단 27연대에 인계하고 도보행군으로 대율동으로 이동하였다. 또 제 3대대(대대장 소령 안민일)도 05:00에 탑평리를 출발하여 17:00에 오록리에 집결한 다음 연대의 예비대가 되었다. 그리고 제 22연대(연대장 중령 이소동)는 변동사항 없이 주력으로써 주실령-박달령을 점령하고 그 일부 병력으로 춘양-서벽리-내덕리-녹전 간에서 998번 도로의 경비와 군단 후방경계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아군 제 7사단(사단장 준장 김형일)에 작전 배속되어 있는 제 23연대(연대장 대령 김종순) 1대대(대대장 소령 김우영)의 옥동리(남대리 북쪽 12km) 전투는 치열함을 극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비로소 적 제 9사단의 거점이 분쇄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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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대리지구 전투의 결과

아군의 황우선 전진작전의 개시일인 1월 6일 이후 남대리 전투가 전개된 1월 14일까지에 걸쳐 아군 제 3군단의 후방으로 침투한 적 제 9, 31사단 등 도합 1,000여명의 적에 대한 치열한 결전의 결과로 마침내 적 1,462명을 사살하고 67명을 사로잡는 등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으며 전후 소요일수는 만 6일 이었다.
그중 특히 결정적인 전투는 17일의 남대리 전투와 19일의 옥동리 전투거니와 이 양 전투에서 적은 거의 섬멸적인 타격을 받고 그 주력은 영원-제천 간의 제 7사단과 미 제 7사단의 간극을 통하여 평창-원주선을 목표로 서북으로 간신히 퇴거하였고 그 일부는 남대리에서 서쪽 미 제 10군단 전투지경 내의 아군 제 5사단 전방인 형제봉 일대로 분산 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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