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북령 고개에서
칠성은

함북령 고개에서

민경철(88.11충북) 9 10,148 2009.11.20 17:59
1986년 1월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을 한 후 7사단에서 약 6개월 동안 부사단장 근무를 했었던 적이 있다. 7사단이 위치한 지역은 지형이 험하기로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지역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부사단장으로 재임하는 6개월 동안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 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전방 부대를 방문하면서 예하부대의 실정을 파악하고 그 부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었다. 나는 방문 때마다 예하부대 장교들과 되도록 많은 대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였었다.그 시절 예하부대 방문을 위해 지프차에 오르면 무조건 책을 읽는 습관이 있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차가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책을 잘 읽는 재주가 있었다. 그날도 전방부대 방문을 위해 북쪽으로 험한 지형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그날도 책에 몰두해서 앞을 제대로 안보고 있었는데 함북령 고개 정상에 올랐을 즈음에 운전병이 브레이크 안전점검을 하는 것 같았다. 운전병들은 어느 고개든지 그 고개의 정상에 오르면 안전운행을 위해서 브레이크 페달을 수차례 반복해서 밟으며 안전점검을 하는 것이 필수적인 사항인데 내가 탄 차의 운전병이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놓고 또 밟았다가 놓고 하는 것도 일상적인 안전점검인가 보다 하고는 그냥 책 읽는데 몰두해 있었다. 그곳 함북령은 과거 여러 차례 브레이크 파열로 인한 대형사고가 있엇다는 보고를 들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지역 이었는데 갑자기 우리가 탄 차에서 덜컹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책을 덮으며 "야, 뭐야?" 하니까 운전병은 몹시 당황을 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부사단장님, 브레이크! 브레이크!" 하며외마디 소리르 내지르며 계속 덜컹 덜컹 브레이크 헛 페달만 밟는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때는 차가 가속도가 붙기 전이었다. 전방 우측으로는 산이었지만 좌측은 지옥의 심연같이 아득한 낭떠러지가 골짜기가 밑으로 펼쳐져 있었다. 나는 본눙적으로 우선 이 죽음의 장소에서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차의 문고리를 위로 치며 우측발을 턱에 올리고 뛰어내리려고 문짝을 열고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내 뇌리를 스쳐가는 강한 명령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야! 최승우 명색잉 동기생 중에서 제 일차로 장군이 되었다는 놈이 자기부하는 낭떠러지로 밀어 넣어 죽여 버리고 비겁하게 혼자 살았다는 꼬리표를 일생동안 붙이고 살아볼래?" 그 소리가 내 뇌리를 스쳐가는 순간 나는 발을 내릭 열었던 문을 닫으며 고리를 돌려 문을 잠가버렸다. 그러고는 앞쪽을 바라보니까 차는 가속도가 붙어 내리쏘듯이 내달리고 있었고 나는 두 손으로 정면에 있는 고리를 꽉 틀켜쥐고 운전병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우측으로 박어! 박어!" 그래도 차는 S자형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커브에서 전복된다 싶으면 기울어졌던 차가 다시 일어서고 이제는 분명히 구른다 싶으면 다시 일어서고 하면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전복될 듯 전복될 듯 그러한 위태한 상황을 두 세 차례나 반복하며 달리는데 나는 그 순간 놀란 토끼 눈처럼 똥그랗게 눈을 뜨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체념어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 앞에는 꼬불 꼬불하게 굽은 저 밑으로 다리 하나가 보였는데 커브 끝자락 즈음에 붙어있는 다리까지는 운 좋게 내려간다 해도 다리 교각에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그대로 다리 밑 수십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살았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는 입도 얼어 붙었는지 한마디도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형편이니 운전병에게 뭐라고 지시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저 무의식중에 내지른 말이 "야! 잘해" 라고 했던 것만 기억이 확실하다. 그렇게 내리 쏘듯이 정신 못 차리게 굴러가던 차가 교각을 살짝 비키면서 부딪치지 않고 다리 난간 쪽에 부딪쳐도 십 수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인데 20여 미터의  다리를 기적같이 무사히 지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리를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자마자 우리가 탄 차는 낙석 장애물 받침 콘크리트에 계속 운전석 좌측이 부딪치면서 착 멈추었는데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직경1미터 가량은 됨직한 바위덩어리들이 굴러 내려서는 아슬아슬하게 뒤쪽으로 떨어지고 차는 충돌로 인해 운전석 좌측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고 어떻게 정신을 차렸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운전병과 나는 완전히 혼이 빠진 사람들처럼 아무말도 없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은 어디가 아픈 줄도 몰랐다. 그저 살아나서 숨 쉰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말없이 서로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 나니 그때야 정신이 좀 들어서 입을 열어 운전병에게 말을 건넸다. "야! 김병장! 어떠냐?""어떠냐?" 라는 말은 무의식적으로 운전병의 상태를 물어본 말이었는데 그런데 전혀 에기치 못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예! 부사단장님이 옆에 계시니까 그렇게도 든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처음에는 우선 살기위해 비겁하게 뛰어 내리려고 했었고 다시 마음 고쳐먹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겁에 질려 손잡이만 잔뜩 움켜잡고 앉아 의미 없는 말만 외쳤던 일 밖에는 한 일이 없었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창피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 생각을 해보니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에 내가 운전병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운전병에게는 큰 의지가 되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라는 존재의 중요성과 당시에 뛰어내리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만족스럽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일은 위기를 만난 한 사람에게 정신적인 지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에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고 부딪쳐서 생긴 상처에 대해서는 전혀 아픈 줄도 몰랐다. 운전병에게 담배한대 건네 주고는 인근 포병 부대에 연락하여 구조반이 도착해서 부대에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그 날 삶과 죽음의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명예의 길을 택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이는 육사에서 배웠던 군인 정신과 평소에 자기성찰과 가치관 정립을 위해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결과였다고 생각을 한다. 이는 무의식 속에 내재 되어 있었던 가치관이 위기의 순간에 의식적인 행도으로 연결 되었던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이 모두는 하나님과 부모님 내게 내려주신 은혜였다는 사시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만약 있다면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며 정시만은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가봐야' 하겠지.

출처 : 최승우 장군을 사랑하는 모임

Comments

김철민(85.03경북) 2009.11.20 18:56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시지요?
 다음이야기가 또 궁금해지네요? 민후배 애 달케 하지 말고 빨리 올리소!
민경철(88.11충북) 2009.11.20 19:57
최승우 예비역소장으로 지금은 충남 예산군수로 계십니다. 부사단장이후 17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지금은 지역민을 위해 동분서주 하시지만.......
이주석(82.02강원) 2009.11.21 08:38
아 !
그렇군요 ...
김철민(85.03경북) 2009.11.21 11:44
아~ 드디어 인물이 밝혀지고 뒷 얘기가 올라왔군요~
보세요 최숭우 장군님의 이러한 이야기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결론적으로 나오잖아요~ 선후배님들  예수 믿으십니다.
민경철(88.11충북) 2009.11.23 12:32
참고로 저위의 미군 장성은 지금 중동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미국 중부군 사령관인 패트레이어스대장(당시 소장) 이라네요.
장석완(96.11부산) 2009.11.27 01:05
단결!!
지창훈(79.02서울) 2009.11.27 06:30
아~~그렇군요
우리 수색전우회 회원이 예산군에서 면장으로 근무중인디...
이주석(82.02강원) 2011.09.14 13:06
군수님은 안계신가요 ?
정유광(03.10경기) 2009.12.02 16:59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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