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선배 전우 : 3연대 9중대장 이순호 대위
칠성은

자랑스런 선배 전우 : 3연대 9중대장 이순호 대위

저 분이 많은 걸 올리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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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과 적군은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 문제를 쌍방 간의 합의에 의해 가조인한 후 1개월 간의 유보기간을 두고 다른 의제에 대한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던 1951년 11월 하순. 당시 강원도 양구군 어은산 일대에 포진해 있던 중공군 제204사단은 백석산 북쪽에 돌출되어 있는 국군 7사단 지역 1090고지 앞 무명고지에 대해 공격을 감행해왔다.

1951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산야는 백설로 뒤덮여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전선에 가득했다. 그러나 적은 이를 이용, 기습적인 공격을 가해와 백설의 고지는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다. 국군 7사단은 이날부터 28일까지 4일간 용전에 용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고지를 사수했다. 그리고 이름 없던 이 무명고지는 크리스마스고지로 불리게 됐다.

이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고지를 중심으로한 전투는 53년 6월까지 이후 3차례가 더 벌어졌다. 2차는 52년 2월11일부터 13일까지, 3차는 52년 10월6일부터 14일까지, 4차는 53년 6월14일부터 18일까지 전개됐다. 크리스마스고지는 국군 7사단이 담당한 전선 가운데 가장 북단에 위치한 고지로서 적의 주저항선인 어은산에 이르는 통로상의 요지였고, 사단이 방어하는 지역의 전초 역할을 하는 요충이었던 만큼 그 중요성이 높았던 것이다.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50년 7월27일 육군소위로 임관해 그동안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이순호 대위는 52년 10월 3연대 9중대장으로서 10중대가 담당한 1090고지 주봉 앞에 위치한 이 크리스마스고지를 점령,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952년 10월6일 중공군은 크리스마스고지를 공격 타깃으로 삼았다. 먼저 300여 발의 포탄을 집중한 뒤 제604연대가 꽹과리 소리를 울리며 공격해 들어왔다. 중대는 이날 사단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혼신을 다해 방어했으나 새까맣게 밀려오는 적군에 밀려 고지를 포기하고 크리스마스고지 남쪽으로 철수, 새로운 진지를 긴급히 편성했다.

중공군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9중대의 새 진지를 계속 압박해 온 것이다. 800여 발의 각종 포탄을 퍼부어 삽시간에 진지를 날려버릴 듯 하더니 화약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좌우와 중앙, 3면으로 포위해 들어왔다. 이대위는 신속히 방어 위치를 조정한 후 소대장들에게 “사주방어태세로 끝까지 고지를 사수하라”고 명령하고 자신도 결전태세를 갖추었다.

무수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적은 아군을 질리게 만들곤 했다. 더욱이 꽹과리 ·징 소리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대위를 비롯한 중대원들은 조금도 동요치 않고 적이 가까워 오자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적은 잠시 주춤거렸으나 수적인 절대 우세를 앞세워 다시금 파상 공격을 계속하면서 특히 중대 정면인 3소대 지역으로 집중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3소대원은 전력을 다해 분투, 중대 정면을 튼튼히 지켜내자 적은 병력을 증원하는 등 인해(人海)라는 무기를 앞세우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무수한 사상자를 내면서도 밀려오는 적에게 3소대는 소대장이 부상을 입는 가운데 중앙을 내주고 말았다. 이어 중대 후미도 적에게 점령당해 퇴로마저 차단당한 격이 되어버렸다.
위기였다. 이순호 대위는 흩어진 3소대를 수습하기 위해 화기소대장을 보내는 한편 중대본부 요원과 화기소대 일부 병사를 데리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이대위는 수류탄을 던지는 등 중대원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여 나갔지만 이 혈전 속에 이대위는 그만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피가 철철 흐르는 다리를 끌고 이대위는 적과 사투를 계속했다. 살아 있으니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수류탄을 3상자나 던졌다. 연락병은 수류탄을 포장한 테이프를 입으로 뜯어주다가 앞니가 2개나 빠졌다. 중대장은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태. 부하들은 후송을 서둘렀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죽어도 이 고지에서 죽겠다는 의지. 이것은 한 군인으로서 무서운 투지요, 지휘관의 모범이었다.

이 무렵 대대장은 11중대로 하여금 고립에 빠진 9중대를 도와 진지를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잠시 멈칫했던 적의 공세도 이어졌다. 9중대에는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에 휩싸였다. 9중대원 모두 수류탄을 던지고 총검을 휘두르며 조금도 물러섬 없이 투혼을 불사르던 중 적의 흉탄은 야속하게도 이대위의 흉부를 관통하고 말았다. 2시간 30여분간의 혈투 끝에 숨을 거둔 것이다.
죽으면서도 고지를 사수하려 했던 이순호 대위에게는 1952년 12월30일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 칠성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8-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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