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선배 전우 : 김옥상 일등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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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선배 전우 : 김옥상 일등병

칠성관리자 0 10,250 2006.11.20 19:34

● 한문 : 金玉祥
● 생몰연대 : 1928.7.15-1050.11.7
● 출신지역 : 경북 대구
● 최종계급 : 육군 일등병
● 상훈내용 : 태극무공훈장
● 참고문헌 :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약력

*생년월일: 1928. 7. 15
*본적: 경북 대구시 봉덕동 1구 1019번지
*소속L 보병 제 7사단 5연대
*직책: 소총수
*군번: 0120358
*계급: 일등병
*주요전투: 개천 비호산고지전투
*상훈내용: 태극무공훈장(1954. 6. 25)

1. 생애

1928년 7월 15일 대구시 봉덕동에서 출생한 김옥상(金玉祥) 일등병은 북한군의 8월 공세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24일 국군에 입대하여 0120358의 군번을 부여받고 제7사단 5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신병교육을 마치고 1950년 9월 4일부터 13일까지 전개된 영천전투에 참가한 후 총반격에 나서 안동-청주-양평-포천-양문리로 이동하였으며,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돌입하였다.
그는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하고 김화-평강-강동-평양-순천선을 따라 북진을 계속하여 10월 22일 구장동으로 진출하였으나 11월 1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개천으로 철수, 비호산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11월 1일부터 7일까지 벌어진 비호산전투에 참전한 김옥상 일등병은 결사적인 육박전을 전개하여 다수의 적을 살상하고 자신은 장렬히 최후를 마치는 살신보국의 예를 보여줌으로써 1954년 6월 25일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그의 유해는 1960년 5월 22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사병묘역 30-26326에 안장되었다.

2. 공적

김옥상 육군일등병은 1950년 8월 24일 입대하여 6.25전쟁 당시 제7사단 5연대 소속으로 1950년 11월 1일부터 7일까지 개천-비호산(飛虎山) 부근 전투에 참전,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사적인 육박전을 전개하여 다수의 적을 살상하고 자신은 장렬히 최후를 마치는 살신보국의 예를 보여줌으로써 1954년 6월 25일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174호)을 수여받았다.
개천 비호산전투는 중공군이 한국에 침입하여 온정리와 운산에서 초전에 승리한 후 청천강 부근까지 침공하였을 때, 군우리로 집결한 제7사단이 군우리 동측방의 비호산에서 중공 제38군의 공격을 격퇴하여 중공군의 기세를 꺾어 놓은 방어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제7사단은 미 제1군단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3일간의 격전을 치른 끝에 중공군 2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며, 특히 진내전까지 벌이면서도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여 미 제8군의 동측방을 방호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제7사단은 유엔군이 청천강 북안에서 중공군의 침공을 저지하고 청천강교두보를 확보하는데 기여하게 되었으며, 미 제8군의 공세 이전을 위한 다음 단계의 작전준비가 가능하게 되었다.
미 제1군단의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운산 일대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제7사단은 군단예비로서 영변 일대에 집결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군 제2군단이 6개 연대 중 4개 연대 병력은 분산되고 남은 2개 연대 병력으로 겨우 군우리 정면을 유지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자 10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어 군우리로 이동하였다.
제2군단장은 제7사단에 구장동-덕천간의 저지진지를 점령하여 군 및 군단의 동측방으로 진출을 기도하는 중공군을 저지하도록 명령하였다. 11월 1일 제7사단은 좌전방 제3연대는 북쪽의 백령천을, 중앙의 제8연대는 용문산(1190)을, 좌전방 제5연대는 덕천을 목표로 3개 연대 병진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중공군의 야간기습으로 영변과 원리로 철수하였다.
구장동-덕천지역을 점령하는데 실패하자 군단장은 군우리 북쪽의 비호산(622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을 저지하도록 제7사단에 지시, 좌전방 제3연대는 비호산 일대에, 우전방 제5연대는 비호산 동쪽의 760고지에 각각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사단이 방어진지를 구축한 표고 622m의 비호산은 청천강 하류지역에 형성된 평야지대에서 제일 높은 감제고지였다. 따라서 군우리로 연결되는 도로와 철로를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술적 요충인 군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히 확보해야 할 중요한 고지이므로 미 제8군도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단은 이러한 중요성 외에도 실추된 군단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기필코 이 고지를 사수하고자 방어진지를 강화하였다.
11 월 3일 03시경 중공군 제38군은 1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좌전방의 제3연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또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는 우전방의 제5연대를 공격하였다. 제5연대는 조공인 적을 30분만에 격퇴시켰으나 주공을 맞이한 제3연대는 연대 화력과 사단 포병화력으로 적의 밀집지대를 집중적으로 포격하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적의 파상공격은 중단되지 않았다.
쌍방은 비호산 정상에서 3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처절한 근접전을 전개하였다. 세 번째로 고지를 피탈당한 제3연대는 새벽에 결사대를 조직하여 육탄공격을 전개, 적을 격퇴하고 고지를 탈환한 후 제8연대에 인계하였다.
11 월 5일 03시 중공군 제38군은 작전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을 재개하였다. 적은 장기인 산악기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능선을 따라 제5연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이에 맞서 제5연대도 사력을 다해 격전을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부득이 철수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여파로 비호산의 제8연대도 새벽에 철수함으로써 비호산 정상이 다시 적에 넘어가게 되었다.
제7사단장 신상철(申尙澈) 준장은 즉시 제3연대를 비호산 남쪽의 운동(雲洞)-중참(中站)으로 진출시켜 제5연대의 철수를 엄호하고, 군우리 일대에 배치된 전 포병화력으로 비호산을 집중 포격한 후 역습명령을 하달하였다. 제3연대의 공격이 완강한 적의 저항으로 돈좌되자 11월 6일 08시를 기해 제5연대는 비호산 서쪽에서, 제8연대는 남쪽에서 포위 공격을 개시, 3시간의 혈전 끝에 적을 격퇴하고 고지를 탈환하였다. 이후 중공군 제38군은 전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제39군과 제40군도 비호산 공격을 중지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이 전투의 승리는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첫 승리라는 의미 외에도 중공군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던 국군 및 유엔군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술적으로도 청천강에서 미 제8군이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11월 6일 사단은 적의 침공을 계속 저지하는 한편 일부 병력으로 공세로 이전하여 전날에 포기한 비호산을 다시 탈환함으로써 위기에 직면했던 개천지역을 방어하는데 공헌하였다.
박승일 대령이 지휘하는 제5연대는 사단 작전명령 제43호에 의해 08시에 포병의 지원을 받아 공격을 전개한 다음 저항하는 2개 중대규모의 적을 물리치고 535고지에 이어 비호산의 우단을 다시 탈환하였다. 이때 제2대대는 우일선 대대로 동변리에서 공격하여 신성리 지역을 점령하였고, 제3대대는 좌일선 대대로 중참에서 공격하여 535고지를 점령한 다음 계속 비호산 우단까지 진격하였으며, 제1대대는 예비대로 동변리지역을 점령하고 덕천-개천간의 주 작전로를 차단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5연대 소속의 김옥상 일등병은 비호산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적의 전초진지에 접근하여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돌연 1개 소대의 적 병력이 출현하자 단신으로 결사적인 육박전을 전개, 다수의 적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리고 장렬히 최후를 마쳤다.


* 참고문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2003
국방부,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제1집, 1955
육군본부, 한국의 전쟁영웅들, 1992
이원복, 호국용사100선, 명성출판사, 1976
국방부, 호국의 별 제3집, 1979
포병학교, 포병의 발자취, 1963
병학사, 내 젊음 조국에, 1987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38도선 초기전투: 중동부전선 편, 1982
국방일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2002. 11. 9
국방부, 한국전쟁사 제8집, 1975
공군본부, 공군사 제1집
육탄 10용사 현충회, 육탄 10용사, 도서출판 法政, 1986
국방부, 호국의 별, 제6집, 국방부 정훈국, 1982
국방일보, 한국의 전쟁영웅들 (1) 육탄 10용사, 1992. 6. 4
국방부, 호국전몰용사공훈록 제3집, 1997

0123.jpg

(사진은 내용과 관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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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전쟁기념관 사이트에서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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