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 미스테리...]
칠성소식

[ 6.25 전쟁 미스테리...]

정유광(03.10경기) 1 15,343 2010.02.24 17:52
 

[ 6.25 전쟁 미스테리... ] 

* 여러글 보면.. 칠성부대가 6.25전쟁때.. 초기에 너무 빠른 시간에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라고합니다.

* 아래 내용을 읽어보시면.. 그 당시 상황에서는 절대로 ~
  그 어떤 특수부대가 방어했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력으로 감당이 되질 않았던 거죠.. 







 * 6.25 전쟁은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시작이 되었죠 *



  

 * 6.25전쟁 역사 내용을 읽어보시면....
    미스테리인 부분이 꽤나  있습니다.


 * 그  중 하나!   정말 궁금한 부분 *  가장 요충지를 칠성부대가 담당하였죠 *
 * 6.25 전쟁 발발전  1개연대의 부대 이동?   참모급들의 연회? 이해할수 없던
    미스테리!
    그  궁금증을 하나씩 아래 자료를 보면서 선후배님들이..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6.25 전쟁 초기  전략 요충지역이였던 ,7사단 지역(포천-동두천-의정부)에
   가해진 중공군의 공격 규모에 대해서도 그동안 막연히 3~4개 사단 규모로 추정했었다.

 * 최근 다시 밝혀진 아래 자료를 보면..중공군  20군과 27군 소속의  6개 사단이  7사단 2개연대 방어지역(전략적 가장요충지)을  집중 공격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육군본부 작명 제38호 별지 부록 제4호를 보면

6.25중  제7보병사단의 미스테리에 대해 몇가지를 추가합니다.

 

6.25 초기전투를 분석할때, 간첩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전사연구"가 아니라 "마녀사냥"으로

전락할 염려가 분명 있겠지요. 하지만, 한국전 초기전투는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의심이 가는 요소가 한두개가 아닙니다.

무사안일, 무책임, 경험부족의 결과일수도 있겠지만, 몇몇 사건들은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미묘합니다.

이형근 장군 같은 한국전 참전 군 원로 뿐 아니라

안용현, 유관종씨 처럼 수십년동안 육본 군사연구실, 전편위에서 전사를 연구한

문연구가들의 최종 결론이 결국 간첩을 의심하는 쪽으로 흘러갔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아래 제가 거론한 7사단 문제도 그렇습니다.

단기 4283년 3월25일 (1950년 3월)육본에 의해 각 사단에 하달된

육본 작명 제38호는 바로 한국 육군의 기본 방어 계획입니다.

이 작명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문체가 50년대 것이라 약간 고졸하지만, 가급적 그대로 옮깁니다)


<<육본 작명 제38호 별지 부록 제4호>>

육군방어계획

-제1 방침
군은 투명도 제1도와 같이 중점을 "의정부" 정면에 보지하고 진전에서 적을 섬멸하려 함.

-제2작전 지도 요령
(중략)

제3각 부대의 임무
1. 제1,제7사단
배비의 중점을 "의정부"방면에 보지하며, 적의 전차를 수반하는 "주공"을 보,포의 저항으로서

소모시키며 이를 진전에서 섬멸시킴. 특히 경계선 전투에 있어서는 점차로 주요도로 및 교량을 파괴하면서

주 저항선까지 전진함


2. 제6.8사단
주 작전 정면이 제1및 제7사단의 전투가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용하여

반유격, 반방어전을 전개하여 적 주력에 대한 동부 측면을 위협 견제함 (중략)


4. 군 예비 (제2,3,5사단)
군 예비는 신속히 서울에 집결하여 서울 주변 지구에 축성하여 적의 침투를

적극 방지하고 공세 이전을 준비함. (중략)

특별 부대는 군 예비대로서 전투간 주로 제1및 제7사단을 지원하며 일부로서 제6 및 제8사단을 지원함
(이하 하략)

이 작명에서 복잡하게 지시하고 있지만, 결국 결론은 7사단 지역이 38선 방어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상 보는 바와 같이 제1사단(개성~문산), 제7사단(포천~동두천~의정부)의 작전은 의정부 방면-

다시말해, 제7사단의 방어작전에 우선 순위가 주어지도록 작명에서는 지시하고 있습니다.

 

제6,8사단의 작전도 제1및 제7사단을 지원하는 임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예비대인 (제2,3,5사단)의 작전도 전투간 주로 제1및 7사단을 지원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1,7사단의 작전 중에는 7사단에 우선 순위가 주어진다고 사전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 작명은 모두 7사단 지역의 방어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한국전쟁전 한국 육군 방어계획상 최우선 순위는 바로 의정부 방면입니다.


육본 작명이 기본적으로 7사단 지역 방어에 중점을 두고 있고,

육본 정보국의 보고(49년 12월, 유사시 적 주공은 의정부 방면이 확실)도 사전에 있었으므로,

7사단의 전력은 다른 사단보다 더 강해야 정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발발 수개월전부터 7사단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집니다.

애당초 1950년 초만해도 7사단은 3개 연대로 구성된 완편 사단이었습다.

그런데, 전쟁 발발 열흘전인 1950년 6월15일 7사단 2연대를 수도사단으로

배속시켰다가, 다시 6사단 지역으로 보내버립니다.

결국 정예부대로 명성이 자자하던 2연대는 군장도 제대로 못챙긴 상황에서

의정부~서울~춘천을 헤매다가 전쟁을 맞게 됩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7사단에서 1개 연대를 차출했으니, 대신 1개 연대를 채워주기는 합니다.

온양에 있던 25연대(당시로서는 신설부대로 2연대에 비해 전력이 극도로 떨어졌음)를

50년 6월20일에 7사단으로 배속변경시켰죠.

그런데 어쩐 이유에선지 이 부대는 결국 7사단으로  이동하지 않고, 개전 당일까지 그대로 온양에 주둔합니다.

결과적으로 7사단은 2개 연대로 전투를 치루게 된거죠. 7사단 지역의 방어 축성에 대해서도

경무대 모 비서관의 방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아래 글에서 지적했습니다.

결국 제7사단은 1대 7대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전투를 치루게 되고,

( 7사단 2개 연대 vs 중공군 2개 군단 + 집중적으로 공격됨 )

나아가 2,5사단의 연쇄붕괴로 연결되어 한국전 초전 대참패를 부르는 전주곡이 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초기전투에서 "너무나도 재수없는 머피의 법칙"과 "귀신도 울고갈  우연의 일치"를

수도 없이 봅니다. 7사단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단순히 "통탄할만한 무능"과 "경멸할만큼

역겨운 무사안일"이 조합된 우연한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첩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개연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당시 육본에 근무했던 관계자 작전국장 G모씨,후임 작전국장 J모씨는 이런 방어작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상당수 원로급 장군들은 한국전쟁 전에 이런 작명이 있었다고 확인한 바 있고,

1982년에 육본 군사연구실에서 마침내 이 작명의 원본을 발견하여 이 작명이 존재함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태영 총참모장의 명을 받아 이 작명을 직접 작성했던 G모씨가

이 작명의 존재를 부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분의 그 이후 행적(특무대장 K씨 암살에 관련)과 관련하여 좀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채병덕 참모총장이 한국전쟁 중에서 전사했고, 김백일 참모부장도 전사했기 때문에, 개전 직전에 육본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이상한 조치들에 대해 직접적인 증언을 해줄 사람이 부족합니다.

모두 참모총장에게 책임을 미루면, 진실이 밝혀질 수 없는 상황이죠.

당시 육본 고위급 참모 중에 생존자 (인사국장 강모씨를 비롯 몇명이 생존하고 있음)들의

직접적 증언이 아쉬워 집니다.

 


























 

 

 

 

 

 

 

 

 

 

 

 

 

 

 

 

육군군사硏, 6·25전쟁 시리즈 ‘현리-한계전투’

[ 2009.06.23 김병륜기자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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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군사연구소가 강군 육성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6·25전쟁 전투사 시리즈’의 일환으로 현리전투와 한계전투를 연계해 분석한 중공군 공세 의지를 꺾은 ‘현리-한계전투’를 펴냈다.

 

이번에 발간된 ‘현리-한계전투’는 2007년 이후 수요자 중심의 전사 연구를 강조하고 있는 군사연구소가 펴낸 6·25전쟁 전투사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전투의 실상을 복원하고 분석하는 점에 있어서도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육군군사연구소 관계관은 “군사연구실을 군사연구소로 개편한 이후 연구소는 전쟁사·전투사 연구의 결과물이 육군 야전부대와 학교기관에서 시행하는 교육훈련에 기여할 수 있도록 수요자 중심의 전사연구를 강조해 왔다”며 “이번 6·25전쟁사 1권은 전쟁사 연구·학습을 통한 전쟁 간접체험으로 전투감각을 고양하고 부대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전투사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6·25전쟁의 원인이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한 연구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비교적 충실하게 진행돼 왔지만 개별 전투를 전술적·작전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하고 그에 따른 전훈을 재확인하는 작업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한 영역이었다.

 

이번에 육군 군사연구소가 펴낸 ‘현리-한계전투’는 그간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전투사 연구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싸울 것인가’라는 실용적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연구로 주목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육군 군사연구소는 편찬과정에서 아군과 적의 전술교리에 입각해서 작전적·전술적 측면에서 총체적 분석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 순서로 사실을 나열하는 서술 방식 대신 전투의 흐름을 좌우한 주요 국면을 중점적이고 입체적으로 연구한 것이 특징이다.

 

시리즈 차원의 특성을 떠나 순수하게 이번에 출간된 ‘현리-한계전투’ 자체도 주목할 점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현리-한계전투의 상대방인 중국 측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그 어떤 전사보다도 적 측 의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시간대별 적군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복원해낸 것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편찬 담당자들은 중국의 군단급 전사까지 수집해서 그 내용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미8군 역사편찬담당관이나 중국 대사관의 국방무관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참전 당사자들의 견해까지 반영하는 등 다양한 시각을 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쳤다. 원색지도와 도표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등 시각적 측면에서도 높은 편집 수준을 유지한 것도 장점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현리-한계전투란 중공군이 제5차 2단계 공세로 1951년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중동부전선에서 감행한 대규모 공세작전에 국군과 유엔군이 맞서 싸운 전투를 의미한다. 그동안 아군이 패전한 현리전투, 아군이 승리한 한계전투라는 전통적인 전투 구별 관점에서 벗어나 이처럼 현리전투와 한계전투를 하나의 연속적인 전투로 연계해서 이해한 것도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투 국면의 주요 상황에 대해서도 새로운 주장이나 해석을 가한 점이 많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그동안 현리전투에서 아군이 어려움을 겪은 원인 중의 하나로 미8군의 오판이 꼽혀 왔다. 중공군이 중동부전선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미군이 서부전선에 중공군의 주공이 가해질 것이라고 잘못 판단,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최초 단계에서는 이 같은 전통적 해석을 긍정하면서도 미군이 7일 이후 계속되는 첩보수집으로 중공군의 주공이 중동부전선이란 점을 인식했으나 대응시간 부족으로 실질적인 조치가 미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군 7사단 지역에 가해진 중공군의 공격 규모에 대해서도 그동안 막연히 3~4개 사단 규모로 추정한 것과 달리 20군과 27군 소속 6개 사단이 공격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현리전투에서 아군에 치명적인 비극을 초래한 출발점인 오마치 고개 점령과 관련, 중국 측 자료를 토대로 적군 규모와 단대호를 명시한 것도 눈길을 끈다. ‘현리-한계전투’는 오마치 고개를 점령한 중공군 부대는 60사단 178연대 2대대이고, 이후 오마치 고개를 차단한 병력은 최종적으로 중공군 60·81사단 등 2개 사단 규모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 6.25 전쟁 남침의 증거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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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거 6.25남침 1주일 전에 작성되어 소련에 보고된 정찰명령서 1호.jpg


    20100221064812_1.jpg
  증거 6.25남침 1주일 전에 작성되어 소련에 보고된 정찰명령서 1호 내부 시달용 해석본.jpg


    20100221064813.jpg
  증거 6월 22일까지 전투준비를 완료할 것을 지시한 전투명령서 1호.jpg


    20100221064813.gif
  증거 모택동의 참전을 독려하고 있는 김일성 박헌영의 편지.gif


    20100221064813_1.jpg
  증거 소련에 사전 보고된 작전명령서.jpg









* 전쟁이 조작이라는 그런 내용의 글도 많이 있지만.. 정확한 근거자료가 없어서..
 올리진   않았습니다.

Comments

손은석(97.05서울) 2010.02.24 18:04
한국전쟁 초기에 7사단에는 3, 5, 8이 있지 않았지요. 초반부에 맥없이 무너진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글링 러시 들어오는데 마린이 아무리 잘 싸운다 한들 시즈 탱크가 없는데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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