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방어선 고수하고 반격 개시
칠성소식

낙동강 방어선 고수하고 반격 개시

6·25전쟁 70주년 치열했던 경북지역 전투현장 ① 영천·신녕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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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지구 전투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북위 38도선이남 대한민국을 불법 남침했다.


3일 만에 우리 수도 서울이 점령당했다. 이후 3년 동안 이 땅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곳곳에 처참한 상흔을 남겼다.

1953년 7월 27일 0시를 기해 휴전협정이 발효됐다.

3년 1개월 동안 사망한 사람은 137만4천195명에 이른다. 국군이 전쟁 중 13만7천899명이 전사했으며, 경찰은 3천131명이 사망했다. 북한군 사망자는 52만 명에 달한다. 유엔군 사망자 수는 3만7천902명이다. 이중 3만3천668명이 미군에서 발생했다. 중공군은 14만8천600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피해도 적지 않았다. 남한에서 24만4천663명이 사망했고, 북한에서는 28만2천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군과 유엔군의 부상자는 55만 명에 달하고, 4만 명이 실종되거나 포로로 잡혔다.

남한에서는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됐다.

우리 국군은 북한의 앞선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했다. 경북지역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경북지역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아군이 반격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당시 치열했던 경북지역 전투현장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북한군 15사단 격퇴한 영천전투

수세에서 공세로 바뀌는 전환점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신녕전투

영천을 점령한 북한군 고립 격파

“잇단 후퇴 속 첫 돌격 이끈 전투

총알과 포탄이 비오듯 쏟아져”



□ 영천지구 전투

영천지역 전투는 국군 제2군단 예하 제7사단과 제8사단이 북한의 9월 공세로 보현산 방어선까지 진출해 영천 점령을 기도한 북한군 제15사단을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까지의 공방전을 통해 격퇴하고 영천을 확보한 전투이다.

북한군은 8월 공세에서 다부동 및 대구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자 제15사단을 의성을 거쳐 영천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영천을 점령한 후 대구 또는 경주로 진격한다는 의도였다.



영천에서의 전투는 주로 영천 북쪽과 남쪽에서 이뤄졌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적이 영천을 점령해 대구로 진출할 경우 다부동 일대의 국군과 미군이 위험에 처해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수 있고, 경주로 진출할 경우에는 부산교두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9월 5일 북한군 제15사단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3개 방면에서 공격을 해왔다. 이에 따라 국군은 방어선이 취약해 분산 철수를 단행했다. 육군본부는 제8사단의 방어선이 돌파됨에 따라 제8사단의 배속을 제1군단에서 제2군단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영천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제1사단과 제6사단에서 각각 1개 연대씩을 차출해 병력을 운용했다. 2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국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영천∼경주간 도로를 확보한 국군 제2군단은 영천 방면의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해 9월 10일 반격작전을 전개했다. 제8사단과 제7사단을 작전계획에 따라 배치해 남, 서, 북쪽의 3개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이 작전으로 국군은 적 제15사단의 전차 및 화포 대부분을 파괴하고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결국 3개 연대를 투입해 영천을 점령하고 경주 방면으로 진출을 꾀하던 적 제2군단에 맞서 국군은 제8사단과 제7사단 및 추가 연대를 투입해 방어조치를 취하는 등 영천전투를 통해 낙동강 방어선을 고수할 수 있었다.

국군이 수세에서 공세로 이전하는 전환점이 된 영천지구 전투는 북한의 제15사단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군이 총공세를 단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의미 있는 전투였다.

아군은 이 전투에서 3천799명의 적을 사살하고 309명을 포로로 잡았다.전차 5대와 장갑차 2대, 각종 화포 14문 및 소화기 2천327정, 차량 85대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뒀다. 반면에 아군 29명이 전사했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다. 48명은 실종됐다.



□ 신녕지구 전투

영천 신녕지구 전투는 1950년 9월 6일부터 9월 15일까지 경북도 영천시 신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국군 제6사단이 영천 지역으로 진출하려던 북한군 제8사단의 공격을 저지시켰다. 이 전투는 대구 점령을 목표로 하던 북한군을 격퇴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1950년 8월 초 북한군 중동부 전선 담당 제2군단은 공세의 주목표를 대구 점령으로 정하고, 4개 사단과 예하 제8사단을 대구 전선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그러나 적 제8사단은 8월 7일 의성지구 전투에서 국군 제8사단에게 1개 대대 이상의 병력을 잃는 피해를 입어 전선의 축을 의흥~신녕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다부동~효령 일대 돌파 계획이 좌절되자, 제8사단에 전차부대를 증원시켜 신녕~하양을 목표로 침투작전을 전개했다.국군의 지상공격과 유엔군의 공중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도 북한군 제8사단은 8월 말 조림산~화산 전선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국군 제6사단은 후퇴해 558고지~637고지~화산을 연결하는 전선에 방어 진지를 형성하고 북한군 저지 작전을 수립했다. 9월 초 북한군 제15사단의 영천 점령으로 고무된 제8사단은 영천을 돌파하기 위해 화산 일대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국군 제6사단의 집중 포격으로 북한군 대열을 분산시켰고, 유엔군의 공중 폭격에 힘입어 북한의 총공격은 실패하고 말았다.국군 제6사단의 공세적인 방어 작전으로 전투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북한군 제8사단은 조림산~화수동 일대로 물러나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신녕 전투는 영천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 제15사단을 고립시켜 격파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낙동강 방어선에서 아군이 반격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신녕 전투 전공자와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성환산 공원 내에 신녕지구 전승비를 건립했고, 2001년 국립영천호국원을 조성해 호국정신 고취 및 안보의식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 김점칠 옹(90·8사단 21연대 6중대 2소대 하사)은 “태백산지구에서 공비 토벌에 참전한 뒤 6·25전쟁이 일어나 주문진에서부터 북한군과 전투를 했으나 탱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며 “강릉, 대관령, 제천, 단양, 소백산, 풍기, 영주, 영천까지 제대로 저항을 하지 못하고 후퇴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옹은 이어 “영천전투에서 돌격이라는 것을 처음 해봤고, 10일간 연속 전투한 것도 처음이었다. 무서웠다. 이래도 죽고 고지를 점령 못하면 총살당하니 이판사판이 되어버렸다. 총알과 포탄이 비오듯 쏟아졌다. 13일을 버티니 북한군이 후퇴 했다. 많은 전우들이 전사했다”며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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