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년] 정전 이틀전 전사한 남편 기다리는 구순의 아내

[6.25전쟁 70년] 정전 이틀전 전사한 남편 기다리는 구순의 아내

6·25 전쟁 최후의 전투 영웅과 전쟁미망인
사진설명6·25 전쟁 최후의 전투 영웅과 전쟁미망인



[※편집자 주 = 올해로 6·25 전쟁 70주년을 맞습니다. 오랜 세월의 무게 만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전투, 이름 모를 희생자들, 피란민의 잊혀진 이야기 등 주목받지 못한 사연도 많습니다. 전장에서 애틋한 편지를 받고 아직도 남편을 기다리는 구순의 아내부터 최대 격전지 백마고지 전투 생존자의 증언, 유엔군의 첫 전투지 증언, 전장에 나간 여군의 활약상, 학살 현장에서 인권교육장으로 변신한 노근리, 이베이에서 발견된 당시 전황 사진까지 생생한 전쟁의 증거를 비롯해 6·25에 얽힌 체험담과 후일담, 그리고 통제된 70년을 딛고 새롭게 조명하는 비무장지대(DMZ) 등을 취재해 14일부터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그리운 금원씨. 이제 날이 밝으면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이 밤 고향을 생각하며 당신 꿈을 꾸리다.

"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고지 전투가 벌어진 강원 중동부 전선에서 고향의 아내에게 전해진 애틋한 편지는 67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어도 심금을 울린다.

편지의 주인공은 정금원(92) 할머니. 전선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웅장한 필체로 편지를 보낸 이는 이규학 소령(추서 계급·당시 대위·1928년∼1953년)이다.

정 할머니의 남편인 이 소령은 정전협정을 불과 이틀 앞둔 1953년 7월 25일 6·25 전쟁 최후의 전투인 화천 406고지에서 전사했다.
 

전선에서 온 67년 전 애틋한 편지
사진설명전선에서 온 67년 전 애틋한 편지



서울시 동작구에서 홀로 사는 정 할머니는 빛바랜 사진과 함께 편지를 꺼내 보며 남편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67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편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전사 통지서만 받았지 남편 유해를 보지 못했으니 어딘가에 꼭 살아 있을 것만 같아서…"라며 정 할머니는 끝내 말을 잊지 못했다.

◇ "한뼘의 땅이라도 더" 영화 '고지전'보다 치열했던 406고지 전투

군사분계선(MDL) 안에 위치한 406고지는 화천군 상서면 칠성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하다.

정 할머니는 해마다 육군 7사단의 초청으로 칠성전망대를 찾았다. 남편이 잠든 406고지를 바라만 보다 힘없이 발길을 돌리기 일쑤지만 몇 해 전부터는 기력이 쇠해 이제는 406고지 방향의 먼 하늘만 바라본다.
 


사진설명"내 남편이 잠든 곳" 비무장지대 내 406고지



충북 단양 출신인 이규학 소령은 1948년 10월 15일 소위 때 제천 출신의 정 할머니와 결혼했다. 신혼의 단꿈은 1950년 6·25전쟁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정 할머니는 전장에 나선 남편을 대신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등 시댁 식구와 함께 단양에서 안동, 영천을 거쳐 부산으로 끝없는 피란길에 올랐다. 고단한 피란 생활 탓에 두 살배기 아들마저 잃었다.

당시 강릉에 주둔한 육군 8사단 소대장으로 참전한 이 소령은 수세에 몰리던 국군에 공세의 전환점이 된 영천 전투에서 수류탄 파편에 다리 관통상을 당해 부산 560병원에서 후송 치료를 받았다.

이후 1952년 육군 7사단 교육대 시범중대장을 거쳐 전방부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그는 1953년 6월 정부로부터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그해 7월. 이 소령은 육군 7사단 3연대 2대대 6중대장으로 중동부 전선에 배치됐다.
 

비무장지대(DMZ) 내 425고지(왼쪽)와 406고지(오른쪽)
사진설명비무장지대(DMZ) 내 425고지(왼쪽)와 406고지(오른쪽)



당시 중공군 135사단과 180사단은 정전 협정을 앞두고 화천 7사단 3연대가 방어 중이던 425고지와 406고지에 공세를 가했다.

금성천을 넘어 전진기지 확보 및 진지 방어 명령을 받은 이 소령의 6중대는 7월 23일 오후 10시 10분부터 이튿날인 24일 오전 5시 30분까지 밤사이 방어와 후퇴, 재탈환 등 뺏기고 빼앗으며 참혹한 고지 전투를 치렀다.

암흑 속 아비규환의 백병전이 끝나고 날이 밝자 박격포와 직사화기의 포성이 지축을 뒤흔들고서야 406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소령은 정전협정을 불과 이틀 앞둔 이 전투에서 중공군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7사단은 6·25 전쟁 최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규학 소령을 기리고자 3연대 2대대를 '이규학 대대'로 명명했다.
 

육군 7사단 이규학 대대에 보관된 기록물
사진설명육군 7사단 이규학 대대에 보관된 기록물



◇ 마지막 임무를 앞두고 전장에서 보낸 애틋한 편지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나는 적과 싸워 이기오리다. 그대도 우리 가문의 빛과 거울이 되어 주시오. 이 전쟁이 끝나는 날 꼭 다시 만나요."

'그리운 금원씨'로 시작되는 10여통의 편지는 1953년 1월 이 소령이 고향 집에 왔다가 다시 전선으로 돌아간 뒤 아내인 정 할머니에게 보낸 것이다.

전선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고향의 아내를 염려한 애틋함이 절로 느껴진다.

정 할머니는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는 나흘 뒤 나도 따라서 죽으려고 했어요. 두 살배기 아들을 먼저 잃고 남편도 전사하고 나니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약을 먹었는데 죽지 않고 지금껏 살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죽을힘을 다해 살기로 결심하고서 일간지 광고를 봤는데 육군에서 여군을 뽑는다기에 무작정 지원했지요. 육군본부에서 행정 부사관으로 복무한 뒤 전역 후엔 군무원으로도 일했어요. 남편이 못다 한 일을 한 거죠"라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67년 전 전선에서 온 남편의 편지를 읽는 정금원 할머니
사진설명67년 전 전선에서 온 남편의 편지를 읽는 정금원 할머니



67년이라는 세월을 홀로 쓸쓸하게 지낸 정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꿈에도 그리던 남편을 유해로나마 만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DMZ)에는 6·25 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1만여 명, 미군 전사자 2천여 명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 할머니는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 이은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이행한 철원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소식을 접했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철원에 이어 화천 406고지에서도 남북 공동 유해발굴이 이뤄지면 남편의 유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 측이 남북 간 연락 채널을 차단하고 나서면서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질 것 같아 가슴마저 저며온다.

정 할머니는 "6·25전쟁 미망인 30만 명 중 상당수가 유명을 달리했다"며 "더는 나 같은 전쟁미망인이 없어야 하고, 수많은 전쟁미망인의 남편이 묻힌 DMZ 내 유해발굴이 중단없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빛바랜 사진
사진설명빛바랜 사진
 

Comments

손은석9705서울 06.16 17:30
하아. 진짜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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