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碑木의 고장」 화천의 常勝 칠성부대 탐방기-趙 南 俊 月刊朝鮮 편집위원
칠성소식

「碑木의 고장」 화천의 常勝 칠성부대 탐방기-趙 南 俊 月刊朝鮮 편집위원

칠성관리자 0 15,313 2006.05.08 12:39
       
북에서 떠내려온 시체들 / 깎아지른 능선, 거쁜거쁜 평지걷듯

살벌할 듯한 철책선의 밤은 의외로 아름다웠다.

구름이 두텁게 끼어 더 캄캄하게 느껴지는 5월의 한밤. 바로 눈앞에 적을 두고 있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수상리.

휴전선 155마일 가운데, 가장 험준한 지형을 맡고 있는 중동부전선의 칠성부대(부대장 金洪榮소장) 예하 상승부대 1대대 小哨(소초)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북한강으로 떨어질 듯 날카로운 40도 경사의 직벽을 따라 철책선이 세워져 있고, 5~10m 간격으로 이어진 分哨(분초)마다 2명의 경계병이 24시간 敵情(적정)을 살피고 있다.

直前方(직전방)으로는 敵地(적지)의 어은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좌우전방으로는 백암산(해발 1175m), 수리봉(해발 1057m)이 불쑥 솟아 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첩첩산중이다.

부대 오른쪽 낭떠러지 아래로 북한강 상류가 흘러 이 부대와 인접 부대의 접경을 이룬다.

북한강은 평소 강폭이 300m 내외지만, 요즘은 훨씬 더 넓어졌다. 비가 오지 않아서 물이 줄었기 때문이다.

인접 부대를 이어 주는 다리 밑은 굵은 철사로 촘촘한 망을 만들어 적의 침투에 대비하고 있다.

강물이 말라서 수위가 크게 줄어든 이 스크린 주위에는 각종 물고기가 우글거린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황쏘가리가 팔뚝만하게 보인다. 잉어와 붕어는 손으로 떠담으면 떠담길 것 같다.

낚시는 물론이고 일체 천렵이 금지돼 있어 각종 어류들이 자랄 대로 자랐다. 물고기들에게는 바로 이곳이 천국인 셈이다.

전남 담양이 집이라는 분초장 金周英(김주영·21) 상병에 따르면 물이 가득 차는 여름이면 북쪽에서 매년 평균 2~3명의 시체가 떠내려와 이 스크린에 걸린다고 한다.

못 먹어서 그런지 대개 몸매가 형편없이 마른 편이라고 한다.


깎아지른 능선, 거쁜거쁜 평지걷듯

북한강 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경사도 40도 내외의 능선은 필자 같은 50代는 손으로 허벅지를 짚지 않고는 한걸음도 오를 수 없을 만큼 가파르다.

불과 몇m 올라가고 쉬고 올라가고 쉬기를 거듭한 끝에 겨우 목적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우리 장병들은 거쁜거쁜 잘도 오른다.

설사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능선을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내리는 근무를 하다 보면 저절로 건강해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다.

지휘관 李鍵(이건·27·외국어大 졸) 대위도 수긍한다. 정말 그렇다는 것이다.

이 부대에 전입해 오는 병사들은 모두 튼튼한 청년으로 환골탈태해서 나간다고 말한다.

이 소초의 병력은 중대규모가 안되지만, 유사時에는 북한강 건너편 다른 부대 예하의 分哨까지 작전통제를 하도록 돼 있어 지휘관은 중대장급인 대위다.

일반병사들은 실제로 李대위를 『중대장님』이라고 부른다.

20여 평 남짓한 공터에서 對전차무기인 90mm 무반동총 사격술을 연습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비무장지대 수색정찰을 다녀오는 1개 분대 규모의 병력을 만났다.

이 병력은 사단 직할 수색대대 작전중대 소속이었다. 수색과 매복이 이들의 임무. 수색과 매복 중에서 매복이 더 힘들다고 한다.
일정 시간 동안 일절 소리를 못 내고 움직임조차 멈춰야 하기 때문이란다. 보통 비무장지대 수색정찰을 나가면 약 ○시간 걸린다고 한다.
얼굴에 검정 칠을 한 수색조장 姜正薰(강정훈·25) 중사는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수색로가 정해져 있어서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姜중사에 따르면 비무장지대 안에 야생동물들이 너무 많아 가끔 긴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특히 멧돼지는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작전중대 병사들과 헤어져 능선 아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소초 영구막사로 돌아와 李대위와 마주 앉았다.
숙소 앞 문에는 「GOP 행동수칙」이 쓰여져 있었다.

◈ 항상 웃으면서 아끼고 사랑하며 즐겁게 생활한다」

◈ 우리의 지상 임무는 GOP 경계이므로 나의 책임지역은 내가 반드시 지킨다」

◈ 어떠한 경우에도 3인조 행동을 한다」

◈ 총기, 탄약 관리규정을 준수한다」

◈ 길이 아닌 곳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 떳떳하고 당당하게 양심 있는 행동을 한다」

◈ 열린 병영 분위기 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한다」

◈ 「나는 이곳 환경보전의 파수꾼이다」



『전화요금이 얼마가 나와도 병사들의 사기 꺾지 마라』 /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신세대 장병

신세대 장병들을 지휘하는 데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李대위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신세대들인 만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금방 알아듣고 따라 주기 때문이란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됐다는 李廷吉(이연길·21) 이병의 『할 말은 하고 삽니다』라는 말은 30년 전에 일선 보병중대에서 고참들 눈칫밥 먹으며 졸병생활을 한 필자를 놀라게 만든다.
「이등병 주제에 어디서 감히 할 말을 하고 사나」 이것은 필자의 케케묵은 前근대적 사고방식이고, 신세대 장병들은 구김살 없이 할 말을 하고 사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런지 짐작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전화요금이다.
중대장 숙소에서 문 하나만 열면 상황실이고, 이 상황실 안에 외부와 통하는 일반전화가 가설돼 있다.
이 전화는 24시간 내내 개방돼 있는데, 병사들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집에, 애인에게,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한달 전화요금은 물경 40만원선. 李대위는 『아무리 요금이 많이 나와도 병사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하라』는 연대장의 특별지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군대는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그 연대장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았지만, 군대 지휘의 핵심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부대 밖에서 식사를 하자는 정훈장교의 호의를 물리치고 일부러 GOP의 소초 식당에서 병사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군대 밥은 필자의 관심사였다. 자식을 곧 군대에 보내야 하는 애비의 마음에서였다.
한 세대 전에 군대생활을 해 본 필자는 항상 배를 곯았고, 식단도 형편없었다는 기억이 새롭다.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겠나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허나 그런 것은 모두 기우였다. 잡곡이 약간 섞인 쌀밥에 副食(부식) 또한 풍성했다.
필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불고기가 배식되는 것을 보았다.
마침 대대장 洪鳳基(홍봉기·39) 중령이 순시차 들렀다. 그는 대뜸 사병 한 사람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의미를 묻는 필자에게 洪중령은 설명한다.

『우리는 맞장부대다. 적과는 맞장을 뜨고, 전우들끼리는 「자신 있다」, 「이상 없다」는 무언의 대화다.
이 하이 파이브는 계급과 직책을 초월한다. 대대장, 연대장도 예외는 아니다』 연대장과 이등병도 손바닥을 마주쳐 맞장을 뜬다는 얘기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신세대 장병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항상 걱정스럽다. 먹는 것은 충분한가. 혹시, 얻어맞지나 않나. 기합이나 심하게 받는 것은 아닌가.
특히 아들이 전방, 철책선에서 근무를 한다면 그 불안감은 더욱 더 클 것이다.
혹시 적군과 遭遇(조우)하다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그쪽은 지뢰도 많다는데, 우리 자식은 안전한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마련이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보았다.
병사들의 기가 펄펄 살아 있다는 것.
李廷吉 이병의 말대로 「할 말 하고, 살 맛 나는 부대」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분명히 말하겠다.
후방의 부모님들이여, 너무 걱정 마시라.

다음날 아침, 사단사령부에서 후방으로 15km 떨어져 있는 화천읍 풍산리의 신병교육대를 찾았다.
옛날과 제도가 달라져서 이제는 장정들이 춘천의 102보충대를 거쳐 막바로 사단에 입대한단다.
한 주에 들어오는 병력이 200명 내외. 年間 6000여 명의 신병이 이곳에서 6주 간의 훈련을 마치고 自隊에 배치된다.
신병들의 학력은 상상 이상으로 높다.
한 기에 2~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학 재학 이상이라는 것이 신병교육대장 崔禹錫(최우석·41) 중령의 말이다. 체격도 좋다.
키 180cm에 이르는 병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다만 체력은 문제가 있다고 崔중령은 수긍한다. 입대하자마자, 체력검정을 실시하는데, 20% 내외만이 기준에 합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능력에 맞게 점진적인 체력향상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신세대는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해서 본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금방 따라온다고 한다.
웬만큼 군기가 들어 있는 自隊 병사들과 달리, 이제 막 군문에 들어오는 신병들은 정신자세에서부터 아직 민간인 티를 벗지 못한 상태일 것은 不問可知(불문가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나약한 신세대들을 군인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나 의외로 다루기 쉬운 면이 있다고 이 부대 최고참 徐忠根(서충근·53) 원사는 필자의 걱정을 떨쳐 준다.
비결은, 해서는 안 될 일을 금지하는 네거티브 방식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다」는 적극적 방식의 교육에 달려 있다.
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면 자발적으로 따라온다고 한다.
어려운 일도 윽박지르면 효과가 없고, 신병들이 따라오도록 조교들이 솔선수범하면 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신병교육 끝나면 主敵개념도 잘 압니다』 / 「초연이 쓸고간…」 가곡 노랫말 이곳에서 탄생

「할 말은 하는 분위기」는 신세대의 공통점인가 보다.
대대장 崔禹錫 중령은 신병들인 데도 불구하고 부대운영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다』고 서슴 없이 지적해서 무섭다며,
이곳의 첫 인상이 신병들의 軍생활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으므로 이 부대의 조교, 교관들은 사단 최우수 엘리트를 뽑아온다고 설명했다.
필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물었다.
신병들이 主敵(주적)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崔중령의 대답은 『염려 말라』였다.
처음에 들어온 신병들은 主敵개념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이 끝날 때쯤은 95% 이상이 主敵개념에 대해 확고히 인식하고, 自隊에 배치되면 100% 이상 체득한다고 말한다.
부산대 1학년 다니다 입대했다는 5주차 훈련병 尹棟胡(윤동호·21) 이병을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만났다.
벌써 사격도 여러 번 해봤단다. 처음 사격할 때의 기분에 대해 물었더니, 『처음엔 긴장되고 무서웠으나, 한발한발 명중할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군인은 사격을 잘해야 되는 법. 아직 신병 교육을 마치지 못한 상태였으나, 사격하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그는 벌써 훌륭한 한 사람의 군인이었다.
1949년 창설된 칠성부대 명칭은 북두칠성의 칠성에서 유래됐다.
푸른색 바탕에 흰색 별 7개가 그려져 있는 칠성부대 깃발도 현재 창덕궁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조선시대 장수의 지휘용 깃발 招搖旗(초요기)를 본 뜬 것이라고 한다.

칠성부대는 「常勝(상승)부대」라는 별칭이 말해 주듯, 6·25 전쟁중 혁혁한 전과를 올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특히 6·25戰史(전사)에 빛나는 「영천대회전」(1950년 9월5일~9월13일) 때 敵 2개 사단을 섬멸한 기록과, 1950년 10월18일, 국군 가운데 가장 먼저 敵都(적도) 평양에 입성한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워 한다.
6·25 戰史에는 白善燁(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 15연대가 최초 입성부대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는 『미군보다 한국군이 먼저 敵都를 점령해야 한다』는 李承晩 대통령의 특명과 丁一權 육참총장→劉載興 2군단장→申尙澈 7사단장→金龍周 8연대장→박관영 3대대장의 작전계통을 따라 金好圭 9중대장에게 작전명령이 떨어져 1950년 10월18일, 本평양에 입성, 인민군총사령부가 있던 김일성 대학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평양입성 50주년 기념 하루 전인, 2000년 10월17일 사단사령부에 6·25 당시 사단장인 申尙澈 장군, 당시 7사단 3연대 중대장 배병노 장군(제26代 7사단장 역임), 당시 평양에 최초로 입성한 7사단 8연대 3대대 9중대장 金好圭 예비역 중령(목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 전쟁기념사업단 관계자 등이 모여 6·25 당시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듣는 세미나를 열고, 그 결과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平壤奪還戰鬪 再照明(평양탈환전투 재조명)」이란 책자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확인하여, 증언이 옳다면 전사를 고쳐 써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대 지휘관의 면모를 보면 부대의 戰力(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대는 창설 이래 52년 간 초대 이준식 대령부터 劉載興(前 1군사령관, 국방부 장관), 민기식(前 육군참모총장), 申尙澈(前 체신부 장관), 金炯一(前 군단장, 국회의원), 金容培(前 육군참모총장), 李成佳, 任忠植(前 국방부 장관), 金益烈, 朴正熙(前 대통령), 하갑청, 孫熙善(前 육본인사참모부장, 비상기회위 부위원장), 盧載鉉(前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高光道(前 육군참모차장, 석탄공사 사장), 鄭昇和(前 육군참모총장), 鄭鳳旭, 백남태, 李在田(前 경호실 차장, 전쟁기념관장), 車圭憲(前 육군참모차장, 교통부 장관), 金容今(前 국방부 정보국장, 에너지관리공단이사장), 河小坤(前 육본작전참모부장), 김해창, 盧武植(前 육본작전참모부장, 수자원공사 사장), 배병노, 閔泰求(前 국방부기획관리실장, 충남지사, 국회의원), 丁萬吉, 閔炳宣, 金鎭渲(前 2군사령관), 정연우, 임종섭, 李南信(現 군사령관), 김종환(現 국방부 정책보좌관) 권영기, 박흥렬(現 육본참모부장), 現 金洪榮 부대장에 이르기 35명의 장군(金容培, 李成佳 장군이 두 번씩 재임)들이 지휘해 왔다.
朴正熙 前 대통령을 비롯,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등 大將까지 지낸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초연이 쓸고간…」 가곡 노랫말 이곳에서 탄생

칠성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碑木의 고장」 화천은 서울에서 불과 1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버스로 3시간 이상 걸리는 오지다.
의암호, 춘천호, 파로호 등을 따라 九折羊腸(구절양장)처럼 꾸불꾸불한 길을 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천은 한 치의 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값비싼 代價를 치러야 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국군은 1951년 6월, 중공군 제10, 25, 27 등 3개 軍을 화천저수지에 수장시켰다.
이 전공을 기려 李承晩 대통령은 「중공군을 격파했다」는 뜻으로 이 저수지의 이름을 破虜湖(파로호)로 명명했다.
휴전을 며칠 앞두고 화천발전소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국군 제2군단과 15개사단을 투입한 중공군이 혈전을 벌여 피아 6만6000명의 전사상자가 생겨난 6·25의 마지막 격전지(7·13전투)도 바로 이곳이다.
화천을 「碑木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곡 碑木의 노랫말이 만들어진 곳이 바로 화천 백암산 기슭이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1964년, 이곳에서 ROTC 장교로 복무한 韓明熙(한명희·62) 서울시립대 교수가 한 무명용사의 무덤에 세워진 비목을 보고 불연듯 지어낸 것이 유명한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되는 노랫말이라는 것이다.
1996년부터 韓明熙 교수 등이 주동이 되어 매년 현충일을 전후하여 화천에서 양구 쪽으로 22km 떨어진 평화의 댐 공연장에서 순국영령을 추모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비목문화제를 열고 있다.
칠성부대는 1991년, 부대의 평양입성 기념일에 맞춰 549 고지에 7·13전투 격전장, 북한군의 GP와 농장 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칠성부대는 강원도의 도움을 받아 전망대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길을 포장해놓고 있다.

1주일 전에 부대와 협의하면 일반인의 단체관광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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