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서 많은 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전우들의 격려 덕분입니다. 제 재능인 그림으로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육군7사단 포병연대 을지포병대대 이지구(21) 일병은 취사병이다. 요리라곤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던 이 일병은 군에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익힌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취사 업무를 하고 있다. 그는 주로 간부나 영외 손님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차린다. 조리뿐만 아니라 부식 수령과 손질, 식사 전 재료 손질, 설거지 등도 도맡다시피 한다.
이 일병이 그린 호국이 캐리커처.
부대 외벽에 이 일병이 직접 그린 GOP 경계 모습.
이지구 일병이 부대 도서관에서 대적·안보관 핵심 9개 과제를 표현하는 만화를 그리다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부대제공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식단을 만드는 데 갖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서투른 음식솜씨지만 새로운 요리 배우기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런 이 일병에게는 숨겨진 소질이 있다. 바로 만화 그리기. 올해 3월 8일 입대한 그는 사실 입대 전부터 만화를 그렸다. 인덕대학 만화영상 애니메이션학(1학년 휴학)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시절 만화부문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이 일병은 아침·점심·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외에 작품을 구상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얼마 전 그는 높이 2m, 가로 15m 길이 부대 외벽에 부대 마크와 푸른 하늘, 야자수 등을 아우른 벽화를 그렸다.
40개 폐탄박스를 버리지 않고 부대 장병들의 얼굴을 유머스럽게 캐릭터로 그려 예쁜 화분으로 만드는가 하면, 칙칙한 창고 건물 내부를 밝은 그림으로 순화하는 등 부대 분위기 자체를 활력 넘치게 바꿔놨다.
그는 “낮에는 선후임병과 취사업무를 열심히 하고, 야간과 주말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군대에서 재능을 살리고 있어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만만치 않은 취사업무에 그림까지 그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자신의 재능을 전우와 부대를 위해 발휘하고 인정을 받는 데 보람이 더 크다.
그림 그리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부대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훈련병을 위한 ‘심신치료 만화’를 제작해 호평을 받았다.
부대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도 그의 만화 작품은 대단히 효과가 있다는 간부들의 평가다.
이 일병은 “가끔 선후임병이 커플 사진을 보여주며 캐리커처를 부탁하기도 한다”면서 “나의 재능이 전우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준다는 데 뿌듯함을 느껴 피곤한 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일병은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큰 작업에 들어갔다. 대적ㆍ안보관 확립 핵심 9개 과제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만화로 만드는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것. 군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이 같은 주제를 만화로 표현하는 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어서 연대 정훈과장에게 내용을 들어가면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분량은 포켓용 크기에 70쪽 정도인 것을 1개 과제당 5~7장으로 글과 그림을 넣어 제작 중이다.
“주제 자체가 딱딱해 지금까지 그린 그림보다 까다롭고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숙지해야 될 내용인 만큼 일종의 사명감으로 보다 쉽고 편하며 자연스럽게 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년 1월 완성을 목표로 하는 이 작업은 현재 6개 과제를 마친 상태다.
이종민(대위) 연대 정훈과장은 “ 만화책이 다 만들어지면 연대 전 장병에게 배포할 계획”이라며 “부대 전 장병들의 정신전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훈과장은 “쉽지 않은 작업인데도 같은 병사 눈높이에서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며 “이 일병은 복덩이로 우리 부대의 자랑”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일병은 자신의 능력을 다양한 수상으로 입증했다. 올해 연대 자체에서 주관한 에너지 절약 표어 부문에서 포스터 1등(5월 30일), 2011 전반기 보안 표어 부문 포스터 경연대회 최우수(6월 17일), 2011 전반기 대적·안보관 표어 부문 포스터 경연대회 우수(7월 22일)를 수상했다.
더불어 육군본부가 지난달 6일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호국미술대전 디자인 부문에서 ‘호국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이란 제목으로 입선해 17일까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그림이 전시됐다. 입선 후 대대장 포상 휴가를 받아 부모님과 함께 전쟁기념관을 찾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군대 가서 적응하는 것도 보기 좋은데 꿈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 나가는 것 같아 너무 대견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제 스펙에 날개를 달아준 수상작이죠.”
다른 병사들이 캐리커처나 관물대에 부착할 그림을 그려 달라고 요청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이 일병. 8개월이라는 군 생활을 통해 “처음엔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환경으로 말수가 적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선후임병들과 친해져 군생활이 즐겁다”면서 “부대 간부님과 전우들이 격려해 주고 부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박진희(중령) 대대장은 “이 일병이 부대 전입 왔을 때 체격도 작고 몸이 약해 보여 적응할지 걱정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며 “이 일병이 재능을 더 발전시키고 부대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벌써부터 부대에 남길 선물을 계획하고 있다.
“대대 을지역사관에 그동안의 대대 업적을 담은 그림을 그려 남길 계획입니다. 부대 발자취를 담은 사진이 많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모아 멋진 작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 일병이 평소 그림을 그리며 습작한 양은 A4 용지로 500~600장 정도. 전역 후 그릴 만화 초안과 부대 역사그림 등이다.
앞으로 판타지 만화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이 일병.
“독자들의 손때가 가장 많이 남는 만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 더 나아가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문화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취사병으로서 요리에 대해 다양한 식견도 넓히고 싶다는 그는 “군대에서 준 많은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대 홍보는 물론 저의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며 1년여 남은 군 생활을 충실히 해낼 것을 굳게 다짐했다.